'가짜대학생 알고보니 큰도둑'
메트로를 보니 대학교를 무대로 지갑 등을 훔쳐온 가짜대학생이 붙잡혔단다. 그는 3년 6개월 동안 무려 20여개 대학에서 3억원 이상의 금품을 털었다는데, 그렇다면 연수입이 7,8천만원 수준, 마음은 불편했어도 경제적으로는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을 듯 싶다. 그의 말이다. "대학 졸업 후에도 취직이 잘 안됐고 생활비가 필요해 계속 절도를 하게 됐다" 가난은 이처럼 평범한 젊은이를 도둑으로 만든다.

내가 처음으로 도둑을 만난 것은 초등학교 때다. 내가 애지중지하던 백설공주 시계를 비롯해 돈이 자꾸 없어졌는데, 범인은 알고보니 우리집에 자주 드나들던 남동생 친구였다. 그때 알았다. 도둑이 무섭게 생긴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보는 이웃일 수 있다는 것을.

고교 1학년 때, 내가 다니던 독서실에는 도둑이 창궐했다. 잠깐 화장실만 다녀오면 돈이 싸그리 없어졌다. 한번은 하도 화가 나서 동전지갑에 2천원 쯤을 넣어두고 가방 깊숙히 숨겨둔 뒤 "이것도 한번 가져가 보시지!"라는 쪽지를 같이 넣었는데, 화장실에 다녀와보니 쪽지만 있다. 주위에서 공부를 하던 모든 사람이 다 의심이 갔다. 결국 난 보따리를 싸서 다른 독서실로 옮겼다.

대학에 다닐 때, 수술장 실습을 했다. 옷을 갈아입고 라커에 넣어 두었는데, 나와보니 주머니에 있던 돈 7천원이 몽땅 없어졌다. 나는 양호한 편이고 다른 친구는 책값 몇만원을 잃어버렸고, 또다른 친구도 몇만원을... 역시나 세상은 못믿을 존재였다. 우리 학교에 놀러왔던 친구 하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찾는 동안 아파트 관리비 17만원이 든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그녀는 내게 "장난치지 말고 빨리 줘!"라고 거듭 말을 해 날 안타깝게 했다. 이것 외에 도서관 가방보관함에 있던 가방이 송두리째 없어지는 일은 그리 드문 게 아니었다.

조교 때 경험한 도둑도 기억이 난다. 키도 크고 미인이었던 도둑이 실습실 실장에 의해 잡혔다. 그녀는 본과 1학년 행세를 하면서 각종 물건들을 챙겼고, 라커에 훔친 물건들을 넣어놓고, 옷도 비치해 뒀다가 갈아입는 등 1년이 넘도록 도둑질을 했다. 그녀가 잡힌 이유는 훔친 옷을 입고 실습실 근처에서 얼쩡거린 때문. 가디건을 도둑맞고 속이 상했던 실습실 실장은 그와 똑같은 가디건을 사서 입고 다녔는데, 그 가디건을 입은 그녀를 본 것. 붙잡아다 문초를 했다. 도둑은 계속 자기는 본과 1학년생이고, 다음 수업은 생리학이니 뭐니 하면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결국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그 사건은 신문의 휴지통 란에 조그맣게 보도된 바 있다. 그녀는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할까? 미모를 내세워 더 큰 도둑이 되었을까, 아니면 평범한 일상을 걷고 있을까.

꼭 거액의 금품을 훔쳐야 도둑은 아닐 것이다. 예컨대, 비가 오는 날 남이 들고온 우산을 가지고 집에 간 사람도 도둑일 수 있고, 피부과 시험을 보는데 피부과 책을 훔쳐간 학우도-그 책은 시험이 끝나고 돌아왔다고 한다-본인은 잊었겠지만 도둑일 것이다. 나 또한 도둑질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초등학교 때 전자오락에 빠져 엄마 돈 몇백원을 훔친 적이 있고, 기름 넣으라고 준 돈을 삥땅하거나, 책 사라고 준 돈을 남겨먹는 등 숱한 도둑질을 저질렀다. 앞에서 언급한 도둑이 살아갈 길이 막막했던 생계형 도둑이었던 데 반해, 나의 도둑질은 순전 유흥과 향락을 위해 자행되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나쁜 짓이다.

앞으로는, 착하게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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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 2004-04-20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말씀 들으니 저도 도둑이였네요.
책산다고 돈 받아서 다른데 써버리고 그랬는데...앞으로는 착하게 살겠습니다.

플라시보 2004-04-20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요일날 저녁 삼겹살을 먹으러 갔었는데 나오고 나니 우산이 없어졌더군요. 비는 오는데 우산은 없고 어쩔줄 몰라하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우산을 하나 주셔서 그걸 쓰고 나왔습니다. 우리 일행은 창가에 앉아서 삼겹살을 먹었는데 그때 딱 하고 내가 범인이 내 우산을 쓰고 나가는걸 봤다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상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일단 두두두 뛰어나가서 '저기요' 하고 부른다음 '왜 남의 우산 쓰고 가시는거죠?' 하고는 날카롭게 째려본다. 그럼 그 사람 혹은 사람들은 당황한나머지 우산을 팽겨치고 뛰어가다 마주오는 차에그만...)

비로그인 2004-04-20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예전에 친구들이랑 자취방에서 놀다가 잠들었는데, 중간에 눈을 떴는데 시커먼 그림자가!! 도둑이 들어와서 제 옆에 놓인 지갑을 훔쳐가는데, 괜히 소리쳤다가 더 큰일 당할까봐 무서워서 꼼짝도 못했답니다. T^T 잔뜩 얼어있다가, 그 도둑이 간담에 눈물 줄줄 흘렸다는. 그날따라 새 지갑에, 교통카드는 몇만원이나 충전했는데 말이죠...돈은 별로 없었는데, 지갑은 두고 가지. 흑흑..

soulkitchen 2004-04-20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저희 가게에 들러 클래식 씨디 400여 장을 몽조리 챙겨 갔다는 그 도둑이 글쎄, 포항의 레코드 가게 두 군데도 털었댑니다. 뭐하는 물건인지 그곳에서도 클래식 씨디만 챙겨 갔다네요. 나원..근데 그 중 한 곳에는 똥까지 눠놓고 나왔답니다. 물건 도둑 맞은 것만으로도 기절할 노릇인데..똥이라니!! 울 가게선 물건만 조용히 가져가줘서 고맙기까지 하더라니까요!!

비로그인 2004-04-20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물어보려고 했는데, 시상으나..똥까지 누웠다니! 그놈 똥꼬에 콱 똥침을 놔야하는데, 쩝! 저희집도 제 방에 도둑한 번 들고나서 방범창 해대고 현관문에 걸쇠 하나 더 달고 난리를 피우다..지금은 거실 창문 활짝활짝 열어놓고 잔다니깐요. 언제 또 일 한 번 터지지...

비로그인 2004-04-20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요 시누가 착불로다가 한약 보낸다고 해서 비디오위에 올려놨다가 도둑놈이 다른건 다 두고 4천원만 낼름 훔쳐갔습니다. 도둑보다 시누가 더 밉다니까요. 한약값은 한약값대로 받고 착불이냐?? 말입니다. 중요한건 아직까지 한약이 안왔다는거 아닙니까!! 참고로 똥은 안쌌습디다.

마태우스 2004-04-20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키님/똥가지 눴다니, 그는 제가 아는 가장 나쁜 도둑입니다. 논문을 몇줄 써서 기분이 좋던 판에, 갑자기 화가 나려고 하는군요.
복돌님/님의 방에 도둑이 들었다니, 큰일날 뻔했네요.
앤티크님/연약하신 님의 자취방에 도둑이 들었다니, 정말 정말 큰일날 뻔했네요!! 나쁜 놈 같으니!!!! <--흥분지수 10점 만점에 9.8
폭스바겐님/으음...시누 분하고 원만히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집안일은 집안에서. 하핫.

마태우스 2004-04-20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너님/저도 뭐 말만 그렇지요. 한번 도둑은 영원한 도둑!! 전 계속 그렇게 살거에요!
플라시보님/그가 서울로 튀었을 수도 있으니, 다니면서 유심히 보겠습니다. 우산의 인상착의는 그때 봤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