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옛날말
한겨레에 있는 손석춘의 칼럼에는 내가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시나브로'야 나도 가끔 쓰는 말이지만, '곰비임비' '깜냥'같은 단어는 영 생소하다. 초등학교 때 한번 접하긴 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신문을 읽다가 사전을 들추기도 뭐해-국어사전도 없지만-문맥상으로 뜻을 짐작할 뿐이다. 어느날인가는 답답한 나머지 인터넷으로 뜻을 찾아봤는데, 지금은 까먹었다. 그의 칼럼을 읽을 때 말고는, 그 단어를 쓸 일이 없어서일 것이다.
단어에다 '-tic'을 붙여서 형용사처럼 쓰는 등 우리말의 훼손이 마구잡이로 자행되는 요즘, 오래된 우리말을 살리는 건 의미있는 일인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비록 추종은 못할지라도. 과연 그럴까? 명 문장가이자 <감염된 언어>의 저자인 고종석의 말이다(고종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0.
[...기준은 소통가능성이다...15세기 한국어는 지금의 한국어보다 아마 더 순수할 것이...라 해도 우리가 그 순수한 언어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한국어사전의 한 구석에 박혀 있을 뿐 실생활에서는 오래 전에 죽어버린 말을 끄집어내 사용하는 경우...이런 말들은 그 소통효과에서 외국어나 다름없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그런 실천을 해야 하는가(<인물과 사상 30권>, 195쪽)]
읽고보니 그렇다. 누군가가 아무리 옛말을 되살리려 해도, 대중들이 따라 쓰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방법하다'나 '아햏햏'같이 기상천외한 말들이 소통가능한 말로 쓰이는 현실을 본다면, 어떤 말이 바른 말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언중(言衆)이다.
2. 요즘말
인터넷에서 채팅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하루 서너시간씩 채팅을 한다는 소문이..-신문에 나는 채팅 관련 기사를 읽은 적은 많다(사실은 채팅을 해서 아는 거라는 소문이...). 기사에 따르면(즉, 경험한 바에 의하면) 요즘 신세대들은 "안녕하세요?"를 "안냐쇼"라는 식으로 쓰고, 그밖에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할 약자들을 쓰는 모양이다. 귀여니라는 사람은 이모티콘으로 점철된 소설책을 내놓아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많은 이들이 걱정을 한다. 국어의 파괴라면서. 나 역시 그런 현상에 대해 우려를 하는 사람이지만, 신세대와 놀기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를 배워야지 어쩔 수 있냐는 입장이다 (채팅을 안하면 어떻게 신세대랑 노는데?). 이런 현상이 과연 우려할 만한 국어의 파괴일까? 고종석의 말이다.
[채팅의 주체가...젊은 세대며....온라인에서의 대화가 글말과 입말의 경계에 있다...이 발랄한 언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어떤 해방감을 드러낼 뿐이다....채팅을 하는 젊은이가 입사원서에 첨부할 자기소개서에도 그 말투를 그대로 사용할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같은 책, 198쪽)]
하지만 그 채팅언어들이 우리 표준어로 편입될 수는 없을까? 있다. 언제? "한국어 화자의 다수가 그것을 표준 한국어로 받아들일 때다". 그리고 그건...아무런 문제가 안된다. 왜? 아까도 말했지만 "어떤 말이 바른 말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언중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유주의자답게, 그의 생각은 늘 열려 있다.
인터넷을 쓰면서 점점 표준말이 헷갈린다. 삶에서 인터넷을 사용한 비중이 우리보다 더 큰 세대에게 표준말은 좀더 어렵지 않을까? '그랬읍니다'가 '그랬습니다'로 바뀐 것처럼, 우리말도 더 쉽게 진화하고 있다. 한번 배운 걸 평생 우려먹기보다는, 평생교육을 받아야 하는 게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래서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