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가 와서 휴지를 들고 화장실에 가보니 물소리가 난다. 아주머니가 물을 틀어놓고 청소를 하는 중이다. 한층 아래로 내려가 일을 보면서 생각한다. 왜 내 싸이클은 아주머니의 청소 싸이클과 일치하는 걸까?

여기 들어온 초창기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5년간 관찰해보니, 아주머니는 화장실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한다. 막 출근을 했을 때나, 점심먹기 전에 속을 비우려 할 때나, 오후에 기습적으로 갈 때나, 그 아주머니를 만나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아주머니는 끊임없이 바닥을 대걸레로 닦거나, 변기를 청소 중이다. 대개의 경우 다른 층으로 옮겨서 일을 보지만, 일을 보고 막 나가는 찰나에 대걸레를 들고 들어오는 아주머니를 만날 때는 괜히 미안하다. 이용객이 그다지 많지 않은 화장실을 왜 그렇게 윤을 내려는 걸까?

그래도 여기 아주머니는 점잖으신 편, 실험 때문에 갔던 모대학은 굉장히 과격하다. 일을 한창 보고 있으면 씩씩한 발걸음 소리가 나고, 잠시 뒤 문을 하나씩 열면서 청소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있는 방의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수줍은 노크로 화답을 해도, 문 밑의 공간으로 대걸레 자루가 들이닥친다. 좌변기면 모르겠지만 쪼그려 앉아있을 때 그런 일을 당하면 굉장히 수치스럽다. 심지어 내 존재를 알리는 노크를 하면 "에이 씨. 빨리 하고 가야 되는데"라는 말까지 해, 날 미안하게 만든다.

아무리 아주머니지만, 여자가 남자 변소에 들어온다는 게 난 싫다. 하지만 고속터미널이고 지하철이고 간에, 공공장소의 화장실을 청소하는 분들은 몽땅 아주머니들이다. 게다가 그분들의 공격성은 정말이지 대단해, 한번은 내가 있는 문을 두드리며 "빨리 나와요!"라고 하기도 했다. 나도 아주머니들이 오는 게 싫지만, 그분들도 엄연히 '여자'분, 남자 변소에 들어오는 게 달갑지는 않을게다. 소변기에 제대로 조준을 못하는 사람, 털다가 흘리는 사람, 물을 안내리는 사람, 바닥에 침을 뱉어놓는 사람, 심지어 오버이트까지 난무하는 우리의 화장실, 게다가 술에 취한 취객들 중 일부는 청소 아주머니들을 성희롱까지 한다니, 웬만큼 모진 맘을 먹지 않으면 그 일을 할 수 없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짜증을 내는 아주머니들의 전투성은 대부분 열악한 상황을 극복해 가는 와중에 생긴 결과이리라. 너무 짜증만 내지 말고, 화장실을 깨끗이 씀으로써 그분들을 도와 드리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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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4-09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 오전에 읽고 이제야 코멘트 달아요!! 난 재밌는데 왜 아무도 코멘트를 안달았죠!! 이건 제 생각인데요 마태우스님은 잡담과 술 일기를 책으로 내면 "대통령과 기생충"보다 더 잘팔리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시공초월사'에 의뢰해봄이...

책읽는나무 2004-04-09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들에게 그런말도 들었습니다....볼일을 보는데....아주머니...대걸레질 하면서..."이쪽발좀 들어봐요!!"........^^
또 이런말도 있습니다...여자는 남자여럿있는 장소에서 여자하나는 당당히 지나갈수 있어도...나자하나는 여자 여럿있는 장소는 절대 지나가지 못한다구요...^^
아마도 화장실의 아주머니들은 그런 당당함으로 바닥을 쓸고....내새끼들 먹여살리려는 강한 모성애로 변기를 씻고 계시지 않겠습니까??....그리고 화장실청소는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깨끗하게 잘하잖아요~~~^^
암튼....볼일보는데 노크해도 좀 참아주셔요..^^...물론 마태우스님은 여자를 좋아하니깐 잘하시리라 믿지만요...^^

마태우스 2004-04-10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스바겐님, 감사합니다. 사실 아무도 코멘트 안달기에 화악 지워 버릴까 삼십분간 고민했습니다. 님의 결단이 글 하나를 살렸고, 그 덕분에 제가 페이퍼 톱50에 남아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우하핫.
책읽는나무님/제가 여자 좋아하는 거 어케 아셨어요? 부, 부끄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