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첫 메이져대회인 LPGA 나비스코 대회 결과가 궁금해 TV를 켰다. 박지은이 2타 차 1위, 캐리웹이 2위다. 한물 갔다지만 상위권에 있으면 여전히 무서운 캐리 웹, 하지만 그녀는 타수를 더 이상 줄이지 못한 채 우승권에서 탈락하고 만다. 이제 남은 사람은 송아리와 박지은, 아나운서는 "한국 선수들간의 경쟁"이라고 느긋한 표정이다.
나도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평소에는 쪼그리고 앉아 주문을 외워가며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는 나지만, 박세리와 김미현이 우승을 다투던 모 대회-US 오픈인가?-를 볼 때는 "아무나 이겨라"라는 심정이었고, 한희원이 박세리와 1위 경쟁을 할 때도 매우 편안한 맘으로 TV를 봤다. 하지만 어제는 아니었다. 송아리가 십미터는 되어 보이는 이글퍼팅을 홀컵에 떨굴 때-그럼으로써 둘은 공동선두가 되었다-내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1.2미터의 버디퍼팅이 들어가야 박지은이 우승하는 절박한 상황, 난 두손을 모으고 주문을 외웠다. 내 주문 때문은 아니겠지만, 박지은은 침착하게 버디퍼팅을 성공시켜 첫 메이져 타이틀을 낚았다.
그러니까 내게 있어서 송아리는, 우리 언론이나 중계를 하던 아나운서의 생각과 달리 한국인이 아니었던 거다. 얼굴은 분명 한국인이지만, 우리말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미국적인 정서를 가진 그들이 무슨 한국인이람? 같은 이유로 세계 언론이 호들갑을 떠는 미셀 위 역시 내게는 우리나라 선수가 아니다. 송아리가 긴 이글 퍼팅을 성공시켰을 때, 주먹을 불끈 쥔 채 "예스!"를 부르짖는 그녀로부터 난 우리나라 사람의 면모를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박지은의 우승을 고대한 것은 그런 이유다.
물론 내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내 방식대로라면 해외에서 낳고 자란, 우리나라에 대해 향수를 갖고 있는 수많은 동포들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다"라고 배제해 버리는 결과를 빚게 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사람의 외모를 갖춘 모든 사람을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한국인'으로 취급하는 것도 그다지 맘에 드는 건 아니다. 외모만으로 국적을 따질 경우, 우리나라에 귀화한 외국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한국인이 될 수 없으니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유명한 사람들에게 한국인의 피가 조금만 섞이면-본인이 부인해도-'한국인' 딱지를 붙여 열광해댔던 우리 언론들에게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내게 있어 한국인은 그래서 피부색에 무관하게 이 땅에서 우리와 부대끼며 살아온 사람들이고, 중요한 것은 혈통이 아닌 공통의 문화를 보유했는지 여부다. 물신숭배도 한 원인이겠지만, 혈통을 중시하는 경향이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을 박해하는 결과를 가져온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