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마다 난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 왔다. 조교 때, 정전이 된다는 공문을 위조해 교수님께 보여드렸다. 그날 전기공사 때문에 오전 10시부터 다섯시간 동안 정전이 된다고.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정전은 치명적이다. 영하 70도에 보관되어 있는 샘플들이 녹아서 변질되기 때문. 그래서 예고된 정전은 며칠 전에 통보를 하며, 그날에 맞춰서 드라이아이스를 채워 넣곤 했다. 교수님께서 화가 났던 것은 당연지사, "아니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해?" 교수님이 너무 화를 내시니 난 무서웠다. 안그래도 일못한다고 구박만 받던 처지였는데... 그래서 난 그 상황을 좀더 즐기지 못한 채, "선생님, 오늘...만우절인데요"라며 자백해 버렸다.

학생 때, 도서관에 정전이 된다는 공고를 붙인 적도 있다. 워낙 많은 애들이 "진짜냐"고 문의하자 사태를 파악한 관장은 공고를 떼면서 "어떤 놈이 이런 장난을 해?"라고 화를 냈단다. 그날 하루쯤은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거짓말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당하고도 기분 나쁘지 않고, 물질적, 정신적으로 피해가 없는 그런 거짓말을 해야 하니까. 예컨대 불이 났다고 119에 신고를 하거나, 윗사람이 너를 부른다는 식의 거짓말은 하기 쉬운만큼 카타르시스가 덜한 법이다. 알라딘을 이용해 어떤 거짓말을 할까, 버스 안에서 계속 생각을 해봤다. 맨먼저 떠오른 것이 이거였다.

1. 알라딘, 인터넷 서점 1위 등극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지난 2월부터 매출액과 순익 모두에서 업계 1위로 등극한 것이 알려져 화제다...조유식 사장은 "기쁘기 한량없다"면서 "이건 전적으로 알라딘 폐인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라이벌 업체 '교봉'은 "거품은 꺼지게 마련"이라며 애써 충격을 감추는 기색이었고, '"그래스물넷'은 "매출액 산정기준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되었다"며 "전화를 받아서 '예'라고 대답하면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편 알라딘 측은 1위 달성을 기념하는 뜻에서 대대적인 이벤트를 벌일 예정...]
거짓말에 꼭 있어야 할 선정성이 없는 경우로, 그저 밋밋한 정도다. 그다음 아이디어.

2. 화제의 책, <내가 건드린 여인들>
[전직 대통령이 펴낸 책이 서점가에서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다. 알라딘 출판사에서 나온 <내가 건드린 여인들>은 서점에 나온 지 사흘만에 3만부가 팔렸고, 갈수록 판매고가 급증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인 젼모씨는 "xx는 생각보다 몸매가 좋지 않았다"느니 "재임 시절 이호리가 연예계에 없었던 게 아쉽다"는 등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자신의 행각을 기술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너무너무 재미있다"면서도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말하기도. 한편 전씨가 건드렸다고 주장하는 배우들은 공동으로 젼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선정성 면에서는 단연 뛰어난 거짓말이다. 실제로 이 책이 이미지까지 만들어져 대문에 뜬다면, 주문이 엄청나게 쇄도하지 않을까? 쿡쿡. 하지만 거짓말로 밝혀진 뒤의 후폭풍이 크고,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다.

3. 알라딘 마라톤 대회 개최
[제1회 알라딘 마라톤 대회가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열린다...조유식 사장은 "책만 읽고 신체를 가꾸지 않는 것은 회만 먹고 스끼다시를 먹지 않는 것과 같다"며 "스끼다시가 회맛을 더해 주듯, 건강한 신체는 독서력 향상에 이바지한다"며 대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참가자격은 알라딘 회원이면 누구나 가능하며, 1위를 차지한 회원에게는 아마존 등 해외 유명 인터넷 서점을 둘러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며, 게시판 용량 2kb를 늘려준다고 한다...청주에서 열심히 몸을 만들고 있는 책읽는나무(28세. 중등도 알라딘 폐인)는 "꼭 1등을 해서 아마존을 둘러볼 기회를 갖고싶다"며 수줍게 웃었다]
이것 역시 별로 선정적이지 못하다. 이벤트 참여하기를 눌러서 "오늘은 만우절입니다"라는 말이 나오면, 웃음보다는 허탈함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이 밖에 알라딘이 오프라인 서점을 연다는 것도 생각을 했는데, 마라톤과 기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총선 관련 글은 선정성 면에서도 괜찮고, 문제될 소지가 없는 것 같아서 메인으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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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3-30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 살아~~~ 내가 못 살아~~~~~

비로그인 2004-03-30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2학년 때 반 친구들이랑 짜고, 기절한 척해서 담임 선생님께 등에 업혀 브이자를 그렸던 만우절 이벤트 말고는, 쾌한 거짓말을 못 즐겨 본거 같네요. 제가 만약 저의 교수님께 중요한 실험 도중 "교수님 1분 후부터 정전이랍니다, 정전" 그러면 그러실 겁니다. " 그래 ? 그럼 네가 1분 안에 어떻게든 해봐" 그럼 주위 사람들은 그러겠죠 " 그래..어떻게든 해봐 (이긍 안됐다...너 건전지를 삼켜서라도 전기를 만들어 내야겠구나...)" ...어쩔 땐 이 모든 것이 가상이고 거짓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플라시보 2004-03-30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이제 낼 모레면 만우절이군요. 만우절날 거짓말 해본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요. 이번 만우절에는 거짓말을 꼭 하나 하긴 해야겠는데..누구한테. 뭘 하지?

호랑녀 2004-03-30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애들한테 당하지 않게 정신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
저, 혹시 돈 내면 비례대표라도 한자리 ... ㅋㅋ

마냐 2004-03-30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자에 올라올. 실제 마태우스님의 올해 이벤트 뒷얘기가 무척이나, 진심으로 무척이나 기다려집니다. 신난다~

비로그인 2004-03-30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비하인드 스토리도 너무 깜찍한데요?? ^^ 게시판 용량 2kb늘려주는 포상이 젤 웃겨요. ㅋㅋ 만우절엔 어떤 거짓말을 하실지...너무 떨려요~ >.<

비로그인 2004-03-30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저 냥반 좀 말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