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면허를 따다
내가 운전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고 착각하게 된 것은 면허시험을 보면서부터다. 지금이야 필기 보고, 붙으면 코스 보고, 이런 식이지만, 내가 시험을 볼 때만 해도 하루에 세가지를 다봤다. 18세가 되기를 기다려 내 생일날, 그때만 해도 강북에 하나밖에 없던 상계 면허시험장을 갔다.

필기시험을 보려는데,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야, 반갑다! 이따 점심이나 같이 하자!" 그는 이미 차를 끌고 다닌다면서, 면허시험은 우습게 붙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그는 두문제 차이로 필기에서 떨어졌고, 점심 시간이 되기도 전에 시험장을 떠났다.

코스를 가볍게 붙고-남들은 엄청 시간을 잡아먹었지만, 난 순식간에 끝냈다-주행시험장에 갔다. 이런, 붙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걸 보면서 떨고 있었더니 필기에서 1등을 한 누나가 날 위로한다. "긴장 풀고, 배운대로 하면 되요!" 28점으로 턱걸이를 하고난 뒤에야 난 날 위로했던 누나가 떨어진 걸 알았다. 뭐라고 한마디 건네려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나중에 그 누나를 학교에서 봤는데, 강의 시간에 늦어 아는 체를 안했다. 그 후로 그 누나를 못봤으니, 그때 아는 체를 안한 게 두고두고 아쉽다).

아무튼 난 한번에 면허를 붙은 흔치 않은 사람이 되었다. 그냥 맘 속으로만 간직해도 될 것을, 내 지도교수인 채모 교수가 "한번에 붙었다"고 자랑을 할 때마다 "저두요"라며 딴지를 걸어 괜한 미움을 샀다(더구나 채모교수는 나보다 2년 늦게 면허를 땄더만...)

2. 과속의 시대
차를 몰게 된 뒤, 내 별명은 '벤존슨'과 '개미한마리'였다. 벤 존슨은 약물복용으로 금메달이 박탈된 달리기 선수로, 스타트가 워낙 빠르기로 유명했다. 나 역시 스타트가 무지하게 빨랐는데, 신호가 바뀌자마자 가장 앞으로 튀어나갔다(그게 기름을 무지 많이 먹는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또한 운전을 하면서부터 난 택시와의 끝없는 전쟁에 돌입했는데, 택시가 내 앞으로 끼어드는 걸 최대 수치로 여겼다. 그걸 막느라 앞차와의 간격을 개미 한마리 길이로 유지하기도 했다. 누가 나를 추월하려하면 도저히 참지를 못했는데, 소위 말하는 '이유미 사건'은 그당시에 일어난 비극적 사건이다 (어느 차가 내 앞을 막아서 전조등을 켜고 어쩌고 하다가 다시금 추월을 했는데, 알고보니 내 동급생인 여자애의 차였다는, 그리고 그녀가 굉장히 무서워햇다는...)

중앙선을 넘어서 추월을 하다가 트럭에 박을 뻔하기도 하고, 고속도로에서 160킬로로 질주하는 등 갖은 만행을 저질렀는데, 그때 큰 사고가 안난 건 천만 다행이다.

3. 겸허해지다
어느 순간부터, 난 과속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추월경쟁을 할 때마다 어찌나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지, 이기건 지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회의가 일었다. 스피드 경쟁에서 이기면 뭐하고, 누가 끼어들면 좀 어떠랴. 이런 상념 끝에 난 모든 물욕을 버렸다. 깜빡이만 켜면 누구든 끼워줬고, 초보운전 딱지가 붙은 차는 무시하지 않고 뒤를 따라가며 에스코트해줬다. 속도는 언제나 규정속도를 지켰고, 누가 나를 끼워주면 실력으로 끼어든 거라도 공손히 손을 들고 비상깜빡이를 켜며 감사표시를 했다. 그랬더니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모른다.

그렇긴 해도, 과속의 시대에 생긴 나쁜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브레이크를 습관적으로 밟는 바람에 내 차에 탄 사람들은 하나같이 멀미를 했다. "내가 몸이 약해졌나?"라는 사람도 있었고, 내리자마자 오버이트를 해댄 사람도 있었다.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은 언젠가 에버랜드에 놀러갔다 올 때, 내 차에 탄 여자 네명을 모두 오버이트를 하게 만든 것. 몇년 전부터 오토매틱으로 차를 바꾸면서-내차는 아니고, 어머니 차지만-그런 건 덜해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내차 타기를 꺼린다.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 토요일마다 난 혈액투석을 마친 아버님을 집으로 모셨다. 혈중 질소가 높으신 탓도 있겠지만, 아버님은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탈 때마다 곧잘 오버이트를 하셨는데, 어머님께 이런 말씀을 하신 적도 있단다. "난 민이 차는 타기 싫다..." 그때 아버님께 얼마나 죄송하던지, 지금도 그때 상황이 눈에 선하다.

4. 결론
내가 과속 경쟁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난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큰 사고가 아니더라도, 작은 사고는 여러번 났었을거다. 사고라는 게 나만 잘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조심하면 그 확률을 어느정도 줄일 수는 있는 법이다.

한때는 목표지점까지 빨리 가는 게 잘하는 거라고 믿었다. "5분 일찍 가려다 10분 먼저 왔네"라는 조크를 내 신조로 삼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잘하는 운전이란, 탄 사람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난 운전을 잘 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못하기 때문에 더 겸허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또하나. 난 음주운전을 딱 두번 해봤다. 하지만 그건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였고, 술을 한잔만 먹어도 운전하기를 포기한다. 담배를 안피우는 것과 더불어, 음주운전에 대한 결벽증은 내 자랑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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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18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배안피우신다니, 마태우스님이 더 좋아지는데요? ^^ 전 과속하는 사람 보기만 해도 무섭던데, 만약 마태우스님 차에 탔다면 패닉상태에 빠지고 말았을꺼 같아요. 이유미 사건은 정말 충격적입니다! ㅎㅎ 전 장농면허라, 음주운전 할 일이 없지만, 자기뿐만 아니라 남의 생명도 위협하는 음주운전, 정말 안해야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님께 박수를~ 짝짝짝!

마태우스 2004-03-18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티크님/와------!!!! 앤티크님의 박수에 답례하는 모습입니다...

호랑녀 2004-03-18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남편 범생입니다.
시골길에 시속 40킬로로 가라고 쓰여 있으면 진짜로 40킬로로 가는 사람입니다. 결혼 전에, 바로 그 모습에 반해서 결혼했습니다.
정말 원칙주의자로구나, 정말 존경스러운 사람이구나...

결혼 후, 바로 그 모습 때문에 여러 번 싸웠습니다.
아이구, 이 앞뒤 꽉 막힌 바보야... 이게 더 위험하다, 다른 차가 우리 추월해서.
운전이란 건 흐름을 타는 게 가장 중요한 거야...

어쨌거나, 마태우스님의 놀라우신 변화에 경의를 표합니다 ^^

진/우맘 2004-03-18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뉴스에, 비탈길에서 핸드브레이크를 제대로 안 걸고 내려서 미끄러지는 차를 밀다가 깔려 죽은 아줌마 얘기가 나오더군요. 면허 따기 전 같으면 어이 없어 했겠지만, 요즘같아서는 마치 내 일 같아요.TT
저도 우수한 성적으로(?) 면허를 취득하고, 운전 잘한다는 사탕발림 칭찬에 거만해지며 연수를 끝냈습니다. 그, 런, 데....집의 차로 운전 연습을 하니, 그 놈의 '차 폭'이 이해가 안 돼서...끙, 끙, 끙.... 그리고 가끔, 핸드 브레이크도 안 내리고 기아가 안 들어간다고 투덜거리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한답니다. 에휴...

sooninara 2004-03-18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롱면허로 10년...이젠 핸드브레이크는 남편과 나 사이에 있는 막대기로만 여겨집니다..
저 면허따고 두번 차 끌어보곤 10년동안 운전이라곤 안해서..
그저 든든한 운전사가 태워주길 기다립니다..(울남편 어디든 차끌고 데리러 옵니다^^)

마냐 2004-03-18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째..제 운전스타일 변천사와 흡사한게..영...쩝....저는 '속도와 추월의 미학'을 즐겼다고 회상하며..요즘 제 남푠이 "여전히 거칠다"며 잔소리하면, "차량 흐름에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대꾸합니다. 어쨌든 '폭풍의 질주' 시절은 20대와 함께 막을 내렸고....제 생각엔 늘 모범적이던 '음주운전'은 결혼과 함께 끝났습니다....(동종업계 종사하는 남편이 음주운전하는게 죽도록 싫더라구요..둘다 같이 음주운전 끝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