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누가 내게 인사를 했을 때 매우 당황했던 적이 있다. 분명 아는 얼굴인데, 그렇다고 내가 알던 그사람은 아니었기 때문. 일단 인사를 하고 넘어갔는데, 옆에 있던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xxx 선생님이란다. 그제서야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가발을 쓰셨구나. 그래서 몰라봤구나'
아까도 그 선생님을 만났다. 처음의 어색했던 모습과는 달리, 이젠 가발이 제법 자리를 잡은 것 같았고, 그전보다 훨씬 젊어 보이기까지 하니, 가발을 잘 하셨다고 할 수 있다.

내 친구 하나는 스물 다섯을 넘어서면서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는데, 28세 쯤에는 완전히 이마가 까졌다. 몸도 좀 비만해 "쟤 장가는 어찌 가려고 그러나" 걱정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날, 녀석이 가발을 쓰고 왔다. 알고 지내던 모습과 너무 달라 웃음만 나왔다. 하지만 사람이란 적응의 동물, 조금 지나자 가발쓴 모습이 잘 어울린다. 겉보기와는 달리 가발을 관리하는 건 무척이나 귀찮은 일이라는 게 친구의 설명이지만, 외견상 보이는 효과를 생각하면 그정도 투자는 할만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몇 년 후 그가 결혼을 한다고 예비신부를 데려왔다. 가발인 걸 모르니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금기를 깨고픈 게 인간의 보편적 정서라, 술자리를 같이하는 내내 입이 간지러워서 혼이 났다. 아이를 둘이나 낳은, 그래서 빼도박도 못하게 된 지금은 물론 그 비밀을 알게 되었으리라. 궁금하다. 그걸 알고나서 자기를 속였다고 화를 내지나 않았는지.

우리나라에서 대머리에 대한 반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머리 남자보다 차라리 틀니가 낫다고 대답한 사람이 있을 정도니, 나처럼 눈이 작은 남자는 대머리에 비하면 왕자다. 왜 그렇게 대머리를 싫어하는 걸까 생각을 해보면, 80년대의 아픈 역사가 자연스럽게 떠올려진다. 당시 대통령을 하던 전모씨가-턱이 좀 나왔던 영부인과 쌍을 이루어-대머리에 대한 반감을 조성한 주범이 아닐까? 대머리에 대한 혐오가 얼마나 컸으면 대학가에서 이런 노래가 유행했겠는가. "대머리, 오 대머리, 민족의 태양이시여!"

전씨만큼은 아니어도, 아버님 역시 대머리셨다. 대머리는 우성유전이라는데, 내가 혹시 대머리가 되면 어쩌나 무지하게 걱정을 했다. 이 외모에 대머리라면, 아무리 재벌2세라도 어느 여자가 나와 놀아줄 것인가. 난 아버님의 작은 눈을 물려받았으니, 대머리는 남동생이 물려받으면 안되나 이런 생각도 했고, 잠에서 깨어나 베개에 머리칼이 붙어 있으면 개수를 헤아리며 탄식하기도 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대머리가 될 조짐은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머리가 너무 빨리 자라서, 숱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하지만 머리라는 게 빠지면 순식간에 빠지는 법, 숱이 많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신이 이런 외모를 주신 것도 잔인한 일이건만  대머리는 너무 심하지 않느냐 하는 낙관론을 펴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중인데, 하여간 내가 자존심이 워낙 센 놈이라 일단 대머리가 되고나면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내가 갑자기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다면 이렇게 생각하시라. "대머리 됐구나!" "아냐, 로또 됐을지도 몰라!" 내가 다시 세상에 나타날 때는 "부탁해요!"라는 말로 유명했던 모 탤런트처럼 머리를 잔뜩 심고난 이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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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17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전 마태우스님이 안보이면, 대머리 되셨구나!!라고 생각할래요~ ^^ 근데 저 위의 노래가 진짜로 있었나요? 충격적인 노랩니다...대머리는 대를 걸러서 유전된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마태우스님말구 자식대를 염려해야되는게 아닐까요~ 호호~ 그래두 남자대머리보단, 여자탈모가 더 마음이 아프던데요...저두 정수리 원형탈모가 일어나려고 해서 걱정! ㅡㅡ;

플라시보 2004-03-17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자라서 대머리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만. 머리가 많이 빠지긴 많이 빠집니다. 그리고 빠진만큼 또 잔머리가 나서 제 머리는 햇볕있는 곳에 서서 보면 무슨 잔디밭 갔습니다. 그나마 오후가 되어 머리에 기름기가 돌기 시작하면 잔머리들이 다소 무거워진 몸을 뉘이지만 아침에 감고 나면 가히 사자머리 부럽지 않습니다.
저는 대머리에 대해 별 생각을 못 해 봤었는데요. 얼마전 친구가 몇년째 쫒아다니던 남자를 보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생긴건 신성운데 대머리야 대머리. 난 죽었음 죽었지 대머리랑은 연애 못해'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그 사람이 대머리씩은 아니고 그냥 약간 머리가 까진 정도인데... 아무튼 여자들의 대머리에 대한 반감은 님이 말씀 하신 것 처럼 대단한것 같습니다.

ceylontea 2004-03-17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ㅜ 저는 정수리부분에 머리카락이 너무 없어서...

비로그인 2004-03-17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저녁 집에 가는 길에 머리에 하고 있던 머리핀이 제 엄청난 머리숱을 감당 못 하고
틱 하며 부러져 날아 갔었더랩니다. 머리 숱 하나는 끝내주게 많은 저 ....
한 두 번 겪는 일도 아닌지라..... 떨어진 핀대 주워 챙겨들고....
근처에 있는 악세사리 가게에서 핀 하나 사려고 들어갔다가...
" 아 저 핀은 핀대 얼마에 한치에 얼마 하는 리본에 ,한 숟갈에 몇 백원 하는 비즈에 ,한 알에 몇 백원인 트리스탈...오....실리콘 값, 포장값, 애라 그래 유통비까지 넣자 "하고 아무리 계산해도 너무 양심 없는 가격임에, 분노를 느끼며 600원 짜리 머리끈 하나 달랑 사왔는데... 이 녀석도 오늘 아침에 고무줄 반이 터져 버려 지금 물귀신처럼 하고 앉아 있답니다...
아 ..대머리 하니까 제 친구 한 놈 생각나네요....뭉구리 라고 ...여튼 학부시절...
그 녀석에게 받을 돈이 좀 있었는데, 군대 간다고 휴학하는 바람에 못 받고 있다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쳐서 " 흐흐흐 야 임마.너 잘 만났다..너 내 돈 십 만원 내놔"
그랬더니... 쓰고있던 털 모자를 훌렁 벗으며 " 돈 없다.. 머리 심었다..배째라 ..."
그랬더 랬죠. 띄엄띄엄 모심은 것처럼 줄맞춰 심은 머리를 군에 간다고 짧게 깍은 걸 보니...
불쌍하기도 한데 하도 뻔뻔할 뻔짜로 나오는 게 얄미워서 뒤통수라도 한 대 쳐줄랬는데 .....
아... 뒤통수에 희멀건 줄.... 그 놈은 뒤통수 머리털을 앞 통수에 이식했던 게지요....
그 하얀 줄이 너무 서글퍼서 그냥 십 마넌 포기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몽구리....지금은 머리 빡빡 깍고 왁스+주름방지화장품 바르며 광내고 다닙니다.
대머리 친구를 위해 십마넌이나 기부한 저, 너무 착한 친구 아닙니까 ?

마냐 2004-03-17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길거리에서 누군가 넘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모르겠더라구요. 아, 당혹, 당혹~. 어어 하고 있는데, 그분이 웃으면서 슬쩍 손을 올려 모자를 벗어 보이는데..그 훤한 머리를 보고서야, "어머, M선배, 이 동네엔 왠 일이세요"라고 뒤늦게 호들갑을 떨었습니다....내참...^^;; 그분도 방송사 기자였지만...은근히 적지않은 TV 기자들이 가발, 모발이식..이런데 신경쓰고 살고 있죠..ㅋㅋㅋ

마태우스 2004-03-17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티크님/대머리는 대를 걸러 유전된다구요? 큰일이군요. 저희 친할아버지 사진을 보니 대머리시던데...으흐흑.
플라시보님/사자머리...후후, 저도 요즘 사자머리에요. 아침에 거울보면 완전히 갈기같아요.

마태우스 2004-03-17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론티님/여자분들도 머리숱 걱정을 하시는군요. 정수리야 잘 보이지도 않는데요 뭘.
스위트매직님/머리숱이 많으면 핀이 부러지나보죠? 흠... 글쿤요. 근데 십만원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시다니. 아니 왜 스위트매직님 돈으로 머리를 심는답니까?? 제대하면 꼭 받으세요!!
마냐님/대머리는... 직종과 연령을 초월한 스트레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