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조그만 홈페이지가 있다. '개나 소나 다 있는 홈페이진데, 내가 없다는 게 말이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친구에게 부탁해 30분만에 만들었다. 그게 2001년 6월이니, 벌써 3년 가까이 홈피와 더불어 살았나보다. 30분만에 만든 홈피니 모양이 영 안이쁘고, 요즘 유행하는 한줄답변 기능도 없다. 하지만 외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을 채워나갈 내용물이 아니겠는가? 화려하게 생긴 홈피들이 다 황무지로 변하는 와중에서도 내 홈피는 무럭무럭 자랐다. 그게 가능했던 건, 하루라도 업데를 안하면 안된다는 강박관념 탓이리라.
자신의 홈피는 자유롭게 자기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편안한 공간, 난 거기다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내키는대로 쓸 수 있었다. 아주 솔직하게. 내가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에게조차 홈피의 존재를 가르쳐주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새, 어찌어찌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지금은 20여분 가까운 숫자가 매일 내 홈피를 찾아주신다. 홈피를 가꾸면서도 내가 많이 성숙해졌다고 느끼지만, 거길 오시는 분들로부터 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분들에게 감사하는 뜻에서 지난 토요일, 홈피 최초의 오프모임을 가졌다. 지방에 계시거나 민주주의를 지키러 광화문에 가신 분들이 많아서인지 나까지 다섯명밖에 안되는 조촐한 모임이었지만,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 여자 넷에 남자라곤 나 혼자이니,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모두 반가운 분들이었지만, 시나리오 작가인 여자분을 알게 된 게 특히나 기뻤다. 나이답지 않은 다양한 인생경험, 그리고 그걸 유머스럽게 풀어나가는 언변, 수다의 왕으로 군림했던 나는 그녀의 위력 앞에 그저 웃기만 했다. 민주주의를 지키러 못간 게 미안하긴 했어도 어제 저녁의 시간들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오늘부터 민주주의를 열심히 지키기로 했다. 지금 난 광화문에 간다).
-나빴던 점: 그저께부터 몸이 이상신호를 보낸다. 술을 많이 먹은 다음날에도 멀쩡하기만 했던 내 소화기관이건만, 최근의 혹사를 견디지 못했나보다. 그래서 어젠 약을 먹고나서 술을 먹어야 했는데, 약을 먹고도 속이 안좋아 좀 자제해볼까 했지만 시나리오 작가분이 고량주를 어찌나 잘마시는지, 그 페이스를 따라가다가 엄청 마셔버렸다. 지금도 영 속이 안좋다. 오늘은 기필코 술을 쉬어야겠다. 이러다...일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