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자기전에 습관적으로 TV를 켜는 버릇이 생겼다. 늘 술에 취해 들어오니 책을 읽기도 그렇고, 잠도 안오고 해서 그러는 것 같다. 엊그제도 TV를 켜고 여기저기 채널을 돌리는데, 갑자기 낯익은 미녀가 눈에 들어온다. 꾸미지는 않았지만, 미모란 건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튀어나오기 마련. 그렇다. 그녀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안젤리나 졸리였다. 순전히 졸리가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난 별 재미도 없는 <툼 레이더> 1, 2편을 봤고, <오리지널 씬>, <어느날 그녀에게 생긴 일>도 넋을 놓고 보지 않았던가. 내가 졸리를 사모하는 정도는 전에 쓴 <오리지널 씬> 감상문에 잘 나타나 있다.
[...내가 손가락을 입에 넣으면 주위에서 "더러워!"라고 말할 꺼다. 하지만 안젤리나 졸리는 손가락을 입에 넣어도 야하고, 고개를 45도 각도로 돌려도 야하고, 무슨 말을 해도 야하다. 별 줄거리는 없지만 화면에 있는 그녀의 모습만 바라봐도 별로 돈이 아깝지 않은 영화가 아닐까. 화면을 정지시켜놓고 관찰한 결과 그녀의 섹시함은 엄정화와는 비교가 안되는 촛점없는 눈동자와 두툼한 입술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물론 입술이 두껍다고 아무나 야한 건 아니다. 우리 때 한 남자애는 입술이 두꺼워서 별명이 '썰면 두접시'였던가 그랬다. 또한 촛점이 없다고 누구나 야할 수는 없다. 나같은 사람이 그랬다간 "멍청해 보인다"는 소리만 들을 뿐이다.... 하여튼, 이름은 '졸리'지만 잠이 확 깨는 '졸리' 만세!]
졸리는 전신마비가 되어 손가락만 움직이는 형사(댄젤 워싱턴)의 자문을 얻어 미치광이 살인범을 쫓는데, 침대에 누운 채 마우스만 움직이는 댄젤의 모습은 베르베르가 쓴 <뇌>를 연상시켰다. 지금이니까 하는 소리겠지만, 혹시라도 내가 그런 상태가 된다면 난 어떻게 해서든지 생을 마감하려 하지 않을까? 비루한 내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도 고통일테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쳐가면서까지 생을 연장하고픈 마음은 생기지 않을거다.
아무튼 졸리는 점점 댄젤에게 끌리는데, 급기야 졸리가 형사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갤 때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안돼!" 졸리만 나오면 민감해지는 내 자신이 나도 민망하다.
결국 졸리는 범인을 잡고, 늘 그렇듯이 범인은 의외의 인물이다. 졸리가 도서관에서 찾은 책의 그림이 실제 살인현장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할 때만 머리칼이 쭈뼛했을 뿐, 나머지 시간은 편하게 TV를 볼 수 있었는데, 이건 내가 범인의 잔혹함에 초점이 맞춰졌을 초반부를 보지 못한 탓이리라. 영화 개봉 때 안본 이유는 뻔한 플롯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지만, 그때 볼 걸 그랬다. 영화도 그럭저럭 재미가 있었는데다, 졸리의 미모는 대형 스크린에서 더 빛날 것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