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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정재승 지음 / 동아시아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학문이라는 게 대중과의 소통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믿는 나는 인문학의 위기가 인문학 전공자들의 폐쇄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요즘 운위되는 이공계의 위기 역시 과학이 대중과 유리되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든 탓이라고 주장한다. 특정 학문이 대중과 소통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관련 분야의 책들이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는 게 그 중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예컨대 마이클 크라이튼이 쓴 <쥬라기 공원>은 그 어느 선생보다 DNA의 역할을 널리 알렸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사람이 없진 않다. 대표적인 예가 TV에서 <논어>를 강의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도올 김용옥인데, 그 재미없고 딱딱한 <논어>를 대중화시킬 사람이 도올 말고 누가 또 있을까 싶다. 말이 쉽지, 대중화라는 것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우선 자기 분야에 대해 전문가가 되어야 하며, 관련 지식을 쉬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내공을 갖춰야 한다. 특히 어려운 대목은 후자인데, 그것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자신의 업적을 되도록 어려운 말로 포장하는 데 익숙해진 탓이리라.
스물일곱의 나이에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는 책을 써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 정재승은 <과학콘서트>를 베스트셀러로 만듦으로써 과학이라면 지레 겁을 먹는 한국인들에게 과학적 마인드의 필요성을 널리 알렸다. 난 이 책을 잡자마자 순식간에 읽어버렸는데, 군더더기없이 깔끔한 문장이 일단 마음에 들고, 나처럼 과학에 조예가 없던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친절한 설명이 단연 돋보인다. 평소 <느낌표>에서 선정된 도서들에 대해 마땅치 않게 생각을 했지만, 이 책 하나만은 참 잘 고른 것 같다. 확률의 허구를 지적함으로써 OJ 심슨이 아내를 죽인 범인이라는 것을 밝힌 대목이나, 잭슨 폴록의 그림에도 과학이 숨겨져 있다는 부분도 흥미롭지만, 물리학이라는 것이 경제나 의학 분야에도 두루 통할 수 있는 학문임을 알게 된 것이 내게는 더 놀라웠다. 사실 내가 몰랐을 뿐이지, 의학은 오래 전부터 물리학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초음파 진단도 그렇지만, MRI를 개발해 환자의 깊은 곳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 것도 다 물리학자들의 공로가 아니던가.
파레토의 법칙이라는 게 있단다. 경제학에서 상위 20%의 사람들이 부의 80%를 독점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법칙은 거주지나 웹사이트 등 여러 부문에 적용될 수 있지만, 나에게 들어맞는 부분도 있다. '전체 인구의 20%가 맥주 소비량의 80%를 차지한다'는 구절이 바로 그런데, 내가 경제적으로야 상위 20%에 들지 못하겠지만 술마시는 양에 있어서는 최소한 20%, 아니 5% 안에 충분히 들고도 남는다. 어느 한 분야라도 파레토의 법칙에 해당이 된다는 것은 뿌듯한 일이다. 오늘도 난 술마시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