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래 제목은 모르겠지만, 우리집 초인종을 누르면 "미도 미도 미솔솔미도미 레, 파씨 솔레......"라는 음악이 나온다. 며칠 전부터, 우리집 초인종이 좀 이상하다. 시도때도 없이 울린다. 밤에는 좀 무섭기도 하고, 진짜 밖에 누가 왔는지가 헷갈려, 연방 "누구세요?"를 외치고 있다. 어젯밤에는 정도가 심해, 밤새 "미도 미도..."의 멜로디가 울려퍼졌다. 당연히 잠도 제대로 못잤고, 악몽만 꿨다.
내가 꾸는 악몽 중 하나가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시험을 보는 꿈인데, 대개는 내가 공부를 하나도 안해서 시험을 망친 그런 내용이다. 어제도 그랬다. 난데없이 국어시험을 보는데, 지문이 몽땅 내가 모르는 거다. 객관식이면 찍기라도 할텐데, 모두 단답형. 이 사태를 어찌한담?
옆을 보니 놀랍게도 대학동창인 정혜운(가명, 우리과에서 최고로 예뻤고,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이었다)이 앉아있다.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그답게 1번부터 열심히 답을 쓴다. 문제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1번 답은 '방법'이었나보다. 난 잽싸게 그가 쓴 답을 베껴썼다.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정혜운은 대놓고 화를 냈다. "왜베껴!"라고 했던가. 꿈에서지만 서운하기 그지 없었다. 하나도 모르겠어서 빵점은 맞지 않으려는 발바둥인데, 그걸 그리 면박을 주다니.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옆에는 난데없이 박현징(가명)과 김정신(가명, 역시 대학동차으로, 미모보단 귀염성에 호소한다)이 앉아있다. 한번 면박을 당한 뒤라, 난 쓸쓸히 고개를 돌려 내 시험지를 응시했다. 몽고의 장군 이름을 묻는 문제에는 "네"라고 썼고, 몽고 사람들의 생활풍습을 묻는 문제는 "강감찬"이라고 썼다 (왜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 꿈이니까...). 이걸 망치면 내신등급이 떨어지는데, 그러면 대학을 못가는데 하는 고민에 마음이 심란했다.
개짖는 소리에 잠을 깼다. 초인종 소리도 시끄러운데 우리 벤지까지 짖다니. 아니다. 벤지는 나를 악몽에서 구해준 거니,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겠지. 생각해보면 시험장에 있는 악몽을 꾼 건 여러번이다. 난 그런 꿈이 나의 나태함에 자극을 주고자 하는 무의식의 발현인 줄 알았는데,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는 다른 친구들도 그런 꿈을 꾼단다. 그러니까 승자건 패자건, 치열한 입시경쟁의 후유증이 두고두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리라. 지금은 경쟁이 더 치열해져, 유치원에서부터 영어를 배우고, 초등학교 애들도 학원에 갔다 밤늦게 오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먼 훗날, 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들은 어떤 악몽에 시달릴까?
* 그리고 혜운아. 니가 그렇게 날 미워하는지 몰랐어. 으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