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책 주려고 친구 둘을 만났다. 친구이긴 하지만 나보다 나이가 에닐곱살쯤 어리고, 둘다 여자다. 하기 나름이지만, 때로는 성과 연령을 초월한 친구가 있을 수 있는 법이다.
-근데 그 중 한명이 술을 정말 잘한다. 그들과 마시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적도 있고, 도저히 안될 것 같아 술먹다가 갑자기 도망쳐 버린 적도 여러번이다. 그녀는 늘 내게 이렇게 말한다. "섐은 너무 술이 약한 것 같아요" 소주 두병을 먹으니 '웬만큼'은 되는 내가 그런 대접을 받는 곳은 거기 뿐이다.
-1차는 교보 뒤에서 메밀국수에 소주를 1병씩 먹고, 2차는 피맛골이라는 막걸리집을 갔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그야말로 '미어 터졌다'. 주문을 안해도 자동으로 세숫대야에 든 막걸리와 이면수가 나온다. 벽에는 온통 낙서가 되어 있고, 테이블이나 바닥도 그리 깨끗하지 않다. 아니, 더럽다. 그런데도 장사가 그리 잘되는 이유가 뭘까?
-3차에서 복분자술을 먹었다. 산딸기로 만든 거라는데, 난 그날 처음 먹었다. 나중에 나갈 때 알았는데 글쎄 한병에 1만5천원이나 한다. 그런 것도 모르고 맛있다며 열심히 먹은 게 후회가 됐다. 게다가 다른 친구가 3차를 계산했으니 더더욱 그렇다.

2월 26일
-두달쯤 전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싸운 적이 있다. 그 후 두달간 그 친구는 물론이고 같이 만나서 놀던 네명의 친구를 몽땅 왕따시켰는데, 어젠 화해를 하는 자리였다.
-솔직히 난 그 친구(친구1)에게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다. 친구1은 싸울 당시도 그랬지만 그 이후에도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다. 내가 보기엔 분명 '배신'이건만, 그게 내게 상처가 될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가보다. 옛날의 나 같으면 모두를 왕따시키며 살아갔을지도 모르지만, 요즘은 철이 들어 화해하기로 했다. 친구 1은 분명 괘씸하지만, 나 때문에 다른 친구들까지 울적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제 모임의 제목은 '돌아온 탕아'였는데, 그 탕아는 다름아닌 나다.
-아쉬운 것은 난 친구 1에게 "미안하다"란 말을 대충 여섯 번쯤 썼는데, 그는 한번도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은 채, 매우 오만한 자세로 내 사과를 받았다. 100대 0, 그러니까 한쪽만 일방적으로 잘못한 싸움은 없다. 상대가 98을 잘못했다 해도 내가 2에 대해서는 사과해야 하는 것이 화해가 아닐까? 그의 뻣뻣한 태도는 내 맘 속의 앙금을 더 단단하게 해줬기에, 형식상은 그와 화해를 했지만 앞으로 예전같은 관계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1차에서 소주 두잔, 2차는 좀 나쁜 곳(단란주점 혹은 룸사롱)을 가서 진탕 먹었다. 1차에서 워낙 적게 마신 터라 2차에서 끝까지 늠름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친구 2는 우리 중에서 가장 목소리가 크고, 우리를 좌지우지한다. 건전한 곳에 가서 맥주나 마시자는 내 제안은 언제나 거부되고, 그가 가자는대로 나쁜 곳에 간다.
-그 나쁜 곳을 내가 싫어하는 것은 나중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분담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그곳에 가면 돈을 주고 여자를 산다는 생각 때문이다. 비용을 지불했다 해도 두어시간 동안 여자를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존재로 대하는 건 나쁜 짓이다. 게다가 여럿이 있는 곳에서 어떻게 더듬고 껴안고 입을 맞출 수가 있는지, 남자들간의 잘못된 문화는 언제 봐도 짜증이 난다.
-난 여자와 수다 떠는 게 좋다. 어제 역시 난 그 여자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수다만 떨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공범이 아닌 것은 아닐테고, 이 글에서 나 혼자만의 깨끗함을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한국 사회에서 남자로 태어나서 '좋은 사람'이 되는 건 불가능하니까. 나 역시 나쁜 놈이다.
-집에 오니 새벽 한시 반이다. 라면을 끓여먹는 것까진 좋았는데, 왜 밥까지 말아먹었담? 식탁 위에 밥이 놓여있던 게 원인이지만, 그 유혹을 참지 못한 건 다이어트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음을 보여준다.
-지난 화요일부터 열흘이 넘게 이어지던 술 강행군은 나의 심신을 극도로 피로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쉰다. 달콤한 하루의 휴식일 동안 그간 읽고도 못쓴 리뷰를 쓸 것이며, 작파했던 운동을 다시 할 것이고, 간만에 집에서 저녁식사를 해야겠다. 참, 벤지도 목욕을 시켜야 한다. 오늘 아침에 보니까 몸을 막 긁더만. 아빠를 잘못 만난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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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27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이제 드디어 오랜만의 휴식기군요~그것도 알찬 계획을 벌써 짜두셨다니, 멋져요!! ^^ 100:0, 나쁜곳, 라면에 밥말기가 인상적이네요. 오늘은 정말 재충전 열심히 하시길~~

_ 2004-02-27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쉬신다니 천만 다행입니다!! 혹여나 저러시다 쓰러지시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으니 말이죠.(전 대학초년때 딱 한번 친구들과 진탕먹고 고생을 한 뒤로는 술이 영 받지를 않는군요. 한때는 맥주 1잔을 다 들이키지도 못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