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왕 화장실 얘기를 한김에, 전에 썼던 글을 여기다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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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화장실 문제에 천착해온 나, 어젯밤 술을 먹다가 우리나라 화장실에 내재된 심각한 문제에 부닥쳐 좌절해야 했고, 이에 분개해 여기다 글을 쓴다.
<봉추>라는 닭집에 앉아 술을 먹다가 닭만 먹기 뭐해서 공기밥을 하나 시켰다. 그게 좀 부담이 되었는지, 설사가 나오려 했다. 그래서 주머니에 휴지가 있는 걸 확인하고 화장실로 갔는데, 남녀공용에, 큰일을 볼 수 있는 변기는 딱 하나다. 많은 식당, 술집에서 돈을 아끼려 남녀공용 화장실을 만들지만, 사실 그건 야만스러운 일이다. 남녀가 유별할진대 어떻게 화장실을 같이 쓴단 말인가?
하지만 급할 땐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는 법, 난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두드렸다. 웬걸, 곧바로 노크가 이어진다. 누군가 있단 얘기, 난 다시금 자리로 와 술을 마셨다. 화장실 문을 계속 응시하면서. 하지만 20분이 지나도 화장실에서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닐까 하고 다시 노크를 해봤는데, 아까와 같은 노크 소리가 응답한다. 그 사람은 그러니까 20분이 넘도록 그 안에 버티고 있는 거였다. 안나오는 사람이 얄미운 건 둘째문제고 급한 불은 꺼야 했다. 난 인근 지하철 역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방은 만원이었고, 세면대에 서있던 사람이 날 보고 긴장한 듯 굳게 닫힌 문 주위를 돌면서 기득권을 주장한다. 더이상 기다릴 수 없기에, 난 쭈뼜쭈뼜 걸어 다른 곳으로 갔다. 아주 다행스럽게, 내가 잘가는 서점 근처에 비밀스런 화장실이 있었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다시금 술집으로 돌아갔다. 아까 있던 멤버는 다 그대로고, 추가된 사람은 없다. 그러니 그 사람은 그때까지도 화장실 안에 앉아있던 것이다. 그사람이 나온 건 내가 돌아온 후 십분쯤 후였는데, 긴머리를 가진 그녀는 마치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일행과 합류한다. 평소처럼 웃고 술을 마시는 그녀를 난 말없이 째려봤다. 그녀로 인해 내가 겪어야 했던 고통을 생각하면서.
그녀는 아마도 변비일 것이다. 변비란 신호가 올 때 바로 일을 봐야지, 안그러면 300그램짜리 물체를 계속 몸안에 담고 살아야 한다. 그 고통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화장실에서 십분 이상의 시간을 보내는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비 환자들이 화장실의 변기를 모두 독점하는 게 옳은 일일까? 단지 먼저 왔다는 이유로? 변비의 고통은 변과 더불어 사는 거지만, 제때 화장실을 확보하지 못한 설사 환자에 비하면 그 고통은 약과다. 설사 환자의 실수는 패가망신으로 이어진다. 옛날의 삼각팬티는 그런 고통을 어느정도 막아줬지만, 사각은 대책이 없다. 실수를 해버리면 당장 쪽팔리는 것도 그렇지만, 실수한 그를 태워줄 택시도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더 못할 짓, 축축함, 찝찝함, 이런 것들을 이겨가며 집까지 걸어가야 한다. 새 팬티와 바지를 사면 되겠지만, 문제는 대개 옷가게가 이미 문을 닫은 후에 생기는 법이다.
변비 환자들에게 제안한다. 그대들의 고통은 십분 이해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화장실을 나누어 쓰는 지혜를 발휘하자고. 신호가 와서 화장실에 들어가는 건 좋은데, 아이낳는 것과 무관한 거짓산통처럼 그 신호가 대변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면, 미련없이 화장실을 나와주면 안될까. 밖에서 기다리다가 다시 신호가 나면 그때 들어가야지, 지금처럼 신호가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오기로 뭔가를 밀어내 보려는 건 모두의 고통이다. 변비 환자 자신은 물론 밖에서 변을 참느라 온갖 기묘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 설사 환자에게도. 변비도 아니면서 쓸데없이 늦게 나오는-신문을 본다든지, 담배를 피운다든지-사람은 더더욱 반성할 일이다. 화장실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