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차역으로 가려고 버스를 탔다. 그런데 웬일인지 차가 너무 막힌다. 예약해둔 시간을 불과 20분 남겼을 때, 버스가 간 거리는 전체의 3분의 1도 못되었다. 앞을 내다보니 끝없는 차량행렬이 숨을 막히게 한다. 안되겠다 싶어 기사 아저씨께 말했다. "저...기차 시간 때문에 그러는데 좀 내려 주시면 안될까요?"
내리는 것과 동시에 난 뛰기 시작했다. 500미터쯤 달렸을 무렵 아뿔싸, 길이 뚫렸다. 죽을 힘을 다해 달렸건만 결국 난 버스에게 추월을 당하고 말았다. 달리다 버스를 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향해 있다. 내가 달리는 모습에 감탄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한치앞을 못보고 내려버린 나를 비웃는 것일까? 결국 난 뒤따라오는 버스를 집어타고 기차역에 겨우 당도했는데, 일이 안되려고 그랬는지 기차가 5분 연착한단다. 괜히 내렸다...
옛날 생각이 난다. 보건원에서 열리는 테니스대회에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밀린다"는 내 경고를 무시하고 기어이 북부간선도로로 집어들었다. 택시는 결국 얼마 가지 못하고 엄청난 차량의 물결에 묻혀 버렸다. 그때만 해도 공사가 완공되지 않아 출구가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앉아서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난 시종 기사 아저씨를 째려봤고-거봐. 막힌다잖아요-기사 아저씨는 내 눈이 무서워 창밖을 내다봤다. "아저씨!" 난 그를 불러 내려달라고 했다. 그 뒤 난 차량을 헤치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조금 뒤뚱거리지만 그때의 난 아주 날씬했고, 흡사 한 마리 비호 같았다. 결국 난 출구를 내려와 좌회전을 했는데-거기서부터 보건원은 1.5킬로다-빵빵 하는 클랙션 소리가 났다. 옆을 보니 세상에, 아까 그 택시다! 달리기가 아무리 빨라도 택시를 이길 수 없었던 것이고, 내게 미안한 맘을 갖고있던 기사 아저씨가 결국 날 찾아낸 거다. 성격 좋은 사람 같으면 다시금 거기 탈텐데, 난 너무나도 부끄러워 가게 안으로 숨었고, 다시금 골목 깊숙이 숨어 버렸다. 이러는 사이 시간은 흘러갔고, 난 하마터면 대회에 참가하지 못할 뻔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가하지 않는 게 더 나았다. 원래 실력도 없는데다 달리느라 지쳐서, 그날 난 전패를 하고 말았으니까. 성급한 자는 두 번 기다린다는 옛말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