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티크님이라는 분이 계시다. 뿔달린 사슴(순록?)이 그분의 마스코트인데, 앤티크님이 쓰신 코멘트를 보다가 이런 답글을 달았다.
"어머님께 노경이나 해드리고 싶네요"
앤티크님: 노경이 뭐죠?
나: 노경을 모르시다니...저희 집만 그렇게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사슴뿔을 노경이라고 하지요. 사슴뿔이 보약이잖습니까???
앤티크님: 헛...사슴뿔을 노경이라고 합니까!! 사슴뿔을 썰어논 약재를 녹용이라고 하는건 알지만...^^;; 혹시 노경=녹용일까요?? ㅎㅎ

그랬다. 사슴뿔은 '녹용'이었다. '노경'을 본 사람들이 얼마나 날 비웃었을까 생각하니,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다. "노경을 모르시다니"라고 잘난 체만 안했으면 조금 나았을텐데. '노경'뿐만이 아니다. '배게'인지 '베개'인지, '육계장'인지 '육개장'인지, '목욕재계'가 맞는지, 헷갈리는 단어들이 너무 많다. 언젠가는 "여관에 묶다"라고 썼다가 지탄을 받은 적도 있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맞춤법을 틀리는 어른들을 맘 속으로 비웃곤 했었는데, 이젠 내가 그 꼴이 된 거다. 글을 쓸 때 오자에 민감한 나지만, 무지에서 비롯된 오자는 고칠 수도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가지 이유는 고교를 졸업한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거다. 졸업 당시만 해도 맞춤법을 대충 다 알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리고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이 줄어들면서 정확한 철자에 점점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인터넷은 교정 기능이 전혀 없어서, 말도 안되는 단어를 써도 글 등록이 된다. 한글만 해도 틀린 글자를 치면 자기가 알아서 고쳐 버리거나 빨간 줄을 긋는데 말이다. 또하나. 맞춤법이 자꾸 바뀌고 있는 것도 바른 철자를 쓰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했읍니다"가 맞았고, "아름다와(이게 모음조화인가 그랬다)"가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했습니다"고, "아름다워"다. 쓰기 편하게 한다고 바꾸는 맞춤법 표기안이지만, 나처럼 재교육을 받을 길이 없는 사람에겐 그게 더 불편하다.

그런데 꼭 그렇게 슬퍼할 것만은 아닌 것이, 요즘 젊은 아이들의 맞춤법은 더 엉망인 것 같아서다. 그들은 난이도가 높은 글자를 틀리는 게 아니라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의 철자를 틀린다. "안냐세요"처럼 인터넷 용어로 정립된 거야 이해할 수 있어도, 정말로 몰라서 틀린다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다. 모 신문 독자마당에 오른 글의 일부다.
[정~말 실타 시러~  총선 투푯날 몇달 남지두 안았는데 고새를 못 참고..]
'실타시러'는 인터넷 용어로 봐줄 수 있다. 그런데 "안았는데"와 "투푯날"도 일부러 그리 쓴걸까? 이건 그래도 양호한 편이고, 진짜 젊은 아이들은 온갖 이모티콘과 기호를 조합해서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로 글을 쓴다. 일부에서 제기되는 '한글파괴' 주장에 동조할 마음은 없지만, 사소한 오자도 부끄러워하는 나와 달리 그들 세대는 맞춤법이 틀리는 걸 전혀 어색해하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처음엔 장난이라도, 자꾸 하면 나중에는 못고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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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2-12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카이레님의 서재에서 <언문세설>이라는 책의 리뷰를 발견하고는 제게 꼭 필요한 책이라고 무릎을 쳤더랬죠. 얼른 사서 얼른 읽고 마태우스님에게도 적합한 처방전 같으면 얼른 권해드리겠습니다. 물론...그 얼른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요.^^
그런데...나도 나지만, 마태우스님도 심하게 서재에 붙어계시는군요.ㅋㅋ 밥은 드셨는지.

비로그인 2004-02-12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제이름이 등장해서 깜짝 놀랐답니다. 근데 정말루...노경=녹용이었군요?? 전 사실 '노경이라는 것을 모르다니...너무 무지한 것일까'라고 진지하게 고민했더랬는데...^^ 저두 예전엔 맞춤법 꽤나 정확하고 했었는데, 지금은 뭐가 맞는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인터넷을 하게 되면서, 쉽게 글을 쓰고, 발음나는 대로 적고, 이런 것들이 너무 습관이 되서 그런가봐요.

mannerist 2004-02-13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 선생의 언문세설... 맞춤법과는 좀 거리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냥 그분의 글 속에서 두어 시간 허우적댄 기억밖에 안 남네요. ㅋㅋㅋ

진/우맘 2004-02-13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어제 주문했는데TT
뭐, 꼭 맞춤법을 기대한 것만은 아니지만요.

chaire 2004-02-13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맞춤법하고는 거리가 좀 있어요... 어쩌죠? 괜실히 죄송... 그래두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저 고종석의 산문 읽는 기분으로 읽었거든요...

마태우스 2004-02-14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그 책을 읽어야 할지 혼란스럽네요. 찬성쪽이 진우맘님, 카이레님, 반대쪽이 매너리스트님, 2: 1이니 읽어야 쓰겄네요 (매너리스트님께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