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초등 동창들 6명이 모였다. 형식상으로는 내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함이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다름아닌 '한판 붙자!'는 것. 먹기 시합이나 술시합처럼 무식한 짓은 없다지만, 내 주변에서는 그런 일이 종종 벌어진다. 술 시합을 앞두고 몸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난데, 난 큰 시합이 있으면 3일 전부터 소주를 반병씩 마셔가며 몸을 단련시킨다. 하지만 내 친구들은 어쩜 그렇게 술을 잘마시는지, 아무리 원샷을 해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다. 친구 중 '짱가'란 별명을 가진 녀석이 갈수록 살이 찌는 건, 주량을 늘리기 위함이 아닐까?

그날은 이런 방식으로 시합이 시작되었다. 여자애와 술에 자신없는 애는 예외로 하고, 4명이 소주 한병씩을 자기 앞에 놓는다. 술을 따라 줄 때는 그 사람 앞에 있는 술로 따라주고. 이러면 정말 공평하게 한병씩 마실 거 아닌가. 속도를 늦추는 사람이 있을까봐 이런 규칙도 생겼다. 한명이 한병을 다 비우면, 나머지 애들은 남은 거 원샷이다.

컨디션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기에, 한병을 비울 때까지는 내가 선두권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몇잔을 더마시고, 내 생일겸 해서 모였으니까 계산을 내가 하고, 2차를 가서 맥주를 마시고... 깨보니 어느새 떡볶이집이었다. 노래 몇곡을 부른 건 기억이 나는데, 그 뒤부터 계속 뻗어 잤나보다. 부끄러웠다. 맨날 "너희들, 나 몸 만들었어! 다 주겄어!" 이렇게 떠들다 언제나 곯아떨어지는 나, 난 왜 이렇게 술이 약하게 태어났을까? 노력으로 안되는 게 없다지만, 아무리 열심히 마셔도 주량이 늘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한병 정도만 주량이 늘어 세병만 마실 수 있다면 그래도 기본은 될텐데... 홧김에 맛있는 떡볶이집에서 오뎅 4개랑 떡볶이 왕창을 먹었더니, 다음날 아침에 얼굴이 두배가 되었다. 배도 볼록 나온 것이 아무래도 조금 줄은 체중이 다시 원상복귀 했나보다. 그날 모였던 친구들과 이달 말에 어디론가 놀러 가기로 했는데, 그때까지 열심히 몸을 만들련다. 술 때문에 체중을 늘린 그 친구도 언젠가 내 앞에서 고꾸라질 날이 있겠지.

* 어제밤 9시, 열심히 글을 쓰는데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야! 여기 누구누구랑 술마시는데, 나와!" 1년만에 만나는 거라 거절하기가 뭐해, 알았다고 하고 나가려니 어머님이 화를 내신다. "양심이 좀 있어라, 응?" 생각해보니 그랬다. 담주엔 한주일 내내 술을 마셔야 할 것 같은데, 이러면 안되지. 밖에 눈도 왔구. 그래서...거절했다. 올해 들어 부쩍 술약속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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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08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정말 무서운 술먹기 시합...ㅡㅡ; 노력하면 조금 늘긴해도, 억지로 늘리려고 하는건 안좋다고 하드라구요. 그래도 담번엔 몸 잘 만들어서 화려한 영광과 승리의 나날을 맛보시길 바랄께요~ ^^

마태우스 2004-02-08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 이번주 월요일-2/9-큰시합이 있습니다. 그네들도 절 번번히 맛이 가게 만든 사람들인데, 한번 해보죠. 화이팅.

비로그인 2004-02-08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옷~ 낼 술일기 기대하겠슴다. 화이팅~~!!

진/우맘 2004-02-09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이 그 날이군요...화이팅! (근데, 이런 거 화이팅 해도 되는건지,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