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올림픽공원에 테니스를 치러 다니던 시절, 가는 길에 은빛 찬란한 건물이 한 채 있었다. 이름하여 엠마뉴엘 교회인데, 교회라는 이름보단 캐슬이나 왕궁 같은 단어가 더 어울려 보였다. 교회를 짓는 데 들어간 돈도 어차피 교인들의 돈, 그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대신 저렇게나 화려한 건물을 지을 필요가 있을까 회의에 빠졌었고, 그 뒤부터 엠마뉴엘 교회는 내가 종교를 비판하는 주된 레퍼토리가 되었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의 <행복한 건축>을 읽다보면, 사람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우리 자신이 작고 못난 만큼 그 반대로 강하고 숭고한 존재 앞에 무릎을 꿇고 그 존재를 섬기고 싶은 독특하고 당혹스러운 욕구....딴 세상 같은 벽과 레이스 같은 천장의 목적은 아무리 맨송맨송한 가슴이라도 형이상학적 떨림을 그럴 듯한 느낌으로, 아니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었다·(119-120쪽)”




박식함을 주무기로 하는 드 보통은 이 책에서 건축에 대한 자신의 해박함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그의 다른 책을 읽을 때처럼 내 자신이 아는 거 없고 못난 만큼, 박식하고 글 잘 쓰는 존재 앞에 무릎을 꿇고 저자를 섬기고 싶은 당혹스러운 욕구를 느끼게 했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줄곧 “아, 정말 그래!”라고 감탄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우리가 아름다운 것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우리 인생이 여러 가지 문제로 가장 심각할 때일지도 모른다”는 그의 말은 왜 시험 때면 그토록 날씨가 좋고 놀만한 게 많은지를 설명해 준다.




이 책을 읽은 벅찬 감격을 다른 이에게 전하고픈 마음을 우리는 인지상정이라고 부른다. 내가 책을 다 읽어 갈 때 쯤 이 책을 한권 더 주문한 건, 건축을 하는 친구에게 선물하고자 하는 기특한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이 책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을 본 친구는 벌컥 화부터 냈다.

“넌 이래서 안돼. 니가 이 책 하나 읽는다고 해서 건축에 대해 다 알 것 같아? 내가 이십년을 넘게 해도 잘 모르겠는데? 너는 이 책을 다른 사람에게 아는 척이나 할 용도로, 즉 자기과시를 위해 읽으려는 거야.”

난 그에게 주려던 책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다른 면에서는 참 괜찮은 친구인데, 왜 가끔 저럴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술만 마시다 집에 왔다. 책을 읽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며, 아는 척이나 할 용도로 읽는다고 해도 뭐 그리 나쁘겠는가? 내가 책을 읽는다고 그에게 자랑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 친구의 말처럼 <행복한 건축>을 읽긴 했지만 건축에 대해 내가 아는 건 별로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정말 행복했고, 가끔씩 이 표지를 볼 때마다 그때의 행복감이 되살아난다. 이렇다면, 이 책을 한번 읽는 것도 나쁜 건 아니지 않을까.




* 156쪽의 그림을 보면 빵을 들고 있는 여자아이가 나온다. 근데 제목은 <빵을 가져오는 소년>이다. 내가 이상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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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8-06-03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마태우스님~ 잘 지내셨어요?
멋진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저도 이 책 탐내고 있었지만, 드 보통의 전작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에 심하게 데여서 멈칫하고 있는 중이지요^^
책이 참 이쁘던데 이 참에 질러버릴까.. 싶기도 합니다. 하하

마태우스 2008-06-03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꼬마요정님 안녕하셨어요? 댓글 달아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이 책은 지르셔도 된다고 저는 물론이고 다른 리뷰어들도 소리높여 말하고 있네요^^

보석 2008-06-03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군침 흐르게 하는 리뷰입니다. 작가의 책을 한 권 읽고 다시 보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리뷰를 읽으니 그래도 이 책은..?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덧:친구분은 그날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나봅니다.

최상의발명품 2008-06-04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뷰 기다린다는 말에 시험문제 내는 걸 잠시 멈추고 올리셨다니 ㅠㅠ 감동 받았어요. 요즘 마태우스님 블로그에서 글 읽는 게 큰 재미랍니다. 페이지가 넘어가서 어제부터는 2006년 글을 읽고 있어요. 무릎을 꿇고 저자를 섬기고 싶은 욕구! 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친구분은 심하셨네요. 제 생각에 친구분이야말로 건축에 대한 전문가라는 것을 과시하려는 것 같아요. 마태우스님은 선물까지 하려고 했는데......친구분! 얼른 마태우스님께 사과하세요!

마태우스 2008-06-04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상의발명품님/호호, 감동씩이나.... 안그래도 시험문제 내느라 머리가 아팠던 참이었어요. 제 지난 글들을 보신다니 덜컥 겁이 납니다. 허접한 글들이 천지인데, 하는 생각에서요. 글구 그 친구분과는 잘 지냅니다^^
보석님/군침이 흐른다뇨, 어찌 그런 과분한 칭찬을 다 해주십니까^^ 드 보통은 저같은 독자가 좋아할 스타일이어요. 책 읽고 좀 아는 척을 하려는...^^ 글구 그 친구는 야악간 까칠한 데가 있답니다.

하얀마녀 2008-06-04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만 보면 전혀 아닐 것 같은데 그리 좋단 말입니까.
지름신은 여기저기 도처에 널려있군요.

마태우스 2008-06-06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하얀마녀님 캡 반갑습니다. 제가 보통을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