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에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난 다른 이에게 책 추천을 잘 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책을 읽는 목적이 다르며, 취향 또한 천차만별일 테니까.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건 내가 소심한 탓일 것이다. 행여 있을지도 모르는 항변-그거 재미 하나도 없더라!-이 두려워서 말이다. 그렇긴 해도, 난 남이 추천해 준 책은 제법 잘 사는 편이다. 수없이 많은 책이 나오는 세상에서 괜찮은 책을 골라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난 남의 은혜는 많이 입지만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은 하지 않는 이기적인 놈인 거다.
하지만 추천에도 예의가 있는 법, 어제같은 경우는 추천을 받으면서 기분이 나빴다. 폴 오스터의 <환상의 책>을 들고 있는데, 같이 있던 사람-알파라고 하자-이 이렇게 말한다.
"이런 거 읽지 말고, 레이몬드 카바의 <숏컷> 읽어"
아니 남은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이런 거'라니? 내가 기분이 나빠진 것도 모르는지,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폴 오스터 이사람, 내가 이사람 책 몇권 읽어봤는데, <고독의 발명>은 좋지만 <빵굽는 타자기>는 읽다가 책을 던져버렸어"
그래서 물었다.
나: <환상의 책>은 읽었어요?
알파: 아니.(당연하다. 작년 12월에 나온 건데 언제 읽었겠는가)
나: 그럼 이게 좋은지 안좋은지 모르잖아요?
알파: 그래도...뻔하잖아! 레이몬드 카바의 <숏컷>은 정말 훌륭한 작품이야!
난 레이몬드 카바가 미워졌다. 우루과이 라운드가 그런 것처럼, 그건 카바의 잘못은 아니다. 누군가 내게 폴 오스터가 뭐 그렇게 대단한 작가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그간 오스터의 책 세편을 읽었지만, 감동이 오래 지속되는 책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맨처음 읽은 <달의 궁전>은 결말이 이상했고-주인공이 알고보니 노인의 손자였던가?-<거대한 괴물>은 삭스의 변신이 너무 엽기적이었다. <뉴욕3부작>만 좀 기발했다 뿐. 그렇긴 해도, 내가 생각하는 오스터의 장점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 속으로 정신없이 빨려들어가게 만드는 힘에 있다. 절반쯤 읽은 <환상의 책>도 재미 하나는 탁월해, 이 글을 쓰는 대신 달려가 책을 읽고싶어질 정도다. 나처럼 평범한 독자에게 그 정도면 훌륭한 작가 아닌가?
"이런 거나 읽지 말고"라는 말은 작가 뿐 아니라 그 책을 읽는 독자에 대한 모욕이다. 알파가 어린 시절 책을 많이 읽었고, 문학에 대해 해박한 건 이해하지만, 책을 추천하는 기술에 대해서는 좀더 배워야 할 것 같다.
* '얄미운 사람'이라는 글에서 난 날 훼방놓는 한 여자를 잔뜩 욕해놨다. 거기에 대해 '갈대'라는 분이 이런 답글을 달아 주셨다. "그런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아주 정확하게 잡아낸 책이 있습니다.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인데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물론 난 그날로 <거짓의 사람들>을 주문했고, '갈대'님에게 감사드린다. 책 추천은 이렇게 하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