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래사람-김이라고 하자-이 내게 말했다. "<천국의 계단> 보세요. 딱 선생님이 좋아할 스타일에요" 꼭 그녀의 말 때문은 아니지만 어쨌든 난 그 드라마에 깊이 심취했고, 최지우의 눈이 멀기 시작하는 지난주부터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드라마를 보고 있다.

그런데... 엊그제 김을 만나 <천국...> 얘기를 하려고 하니, 김이 갑자기 이런다.

"저 요즘 그거 안봐요. <천생연분> 봐요"

난 충격을 먹었다. 나한테는 재미있다고 보라고 해놓고, 거기 흠뻑 빠져들고 나니 자기는 다른 걸 본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나로서는 어리벙벙했다. 난 그녀를 앉혀놓고 일장 설교를 했다. 넌 유리랑 태미라가 응징되는 걸 보고싶지 않느냐, 갖은 고생을 한 한정서가 어찌 되는지 궁금하진 않느냐, 모름지기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데 어찌하여 너는 시작만 보고 끝은 외면하느냐. 하지만 그 여자는 내 모든 말을 한마디로 잘랐다.

"<천국의 계단> 그거, 너무 짜증나요!"

아니 누군 즐거워서 그걸 계속 보고있는 줄 아나? 나 역시 짜증이 많이 난다. 말도 안되는 우연의 연속, 달리기 선수가 되버린 배우들, 맨날 울기만 하는 최지우(드라마 한회당 3, 4번은 우는 것 같다), 보기 싫은데 줄기차게 나오는 신현준의 우울한 얼굴, 나도 이 모든 걸 감수하고 보고 있는데.

그러고보니 천국의 계단 시청률이 예전보다 많이 떨어졌긴 했다. 얼마 전 조사에 의하면 37.2%니, 50%를 넘나들었던 전성기에 비해 10% 이상이 다른 프로로 도망간 거다. 그들을 비난하고픈 마음은 없지만, 끝을 보지않고 다른 드라마로 옮기는 건 내 기준에 의하면 '배신'이다. 우리나라 드라마가 다 그렇고 그런데, <천생연분>이라고 뭐 특별한 게 있으려고? 김의 말이다. "그것도 이제 재미 없어지려고 해요. 안재욱이랑 황신혜랑 결혼했거든요" 그렇다. 문제는 지구력의 부족이다. 뭐든 조금 열심히 보다가, 조금만 식상해지면 다른 프로로 횡 하니 가버리는 것, 이건 시청자의 자세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시작을 보면 끝을 봐야한다는 높은 충성도, 사실은 이게 나로 하여금 드라마를 보지 못하게 하고있다. 한번 본 건 끝까지 다 봐야 직성이 풀리기에, 웬만하면 아예 안보려고 하는 거다. 어제도 그랬다. 한창 흥겹게 술을 마시다가, 부시시 일어났다. "저, 천국의 계단 때문에 가야 하거든요..." 조금 늦게 와 앞이 5분을 잘라먹었지만, 그래도 눈물을 펑펑 쏟으며 <천.계>를 봤다. 보람은 있었지만 매주 수. 목을 시간맞춰 온다는 건 영 힘든 일, 이걸 보고나면 몇달간 쉬면서 재충전을 할 생각이다. 당분간 선.악이 대립하는 재미있는 드라마가 나오지 않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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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1-30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어제 잠이 안 와서 천국의 계단 재방송을 봤습니다.(처음 본 것입니다) 신현준이 도망가다가 최지우에게 전화하는 장면에서 짜증이 300% 분출하더군요.
"야 이 00할 놈아, 전화할 시간에 도망갔으면 잡히지도 않았겠다!"
그러고 나서도 마땅한 채널이 없어 참고 견디다가, 막판에 최지우 갯벌을 헤매며 우는 데서는 짜증을 내며...울었습니다. 최지우한테도 짜증나고, 짜증나는 드라마 보면서 울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짜증나고...TT

진/우맘 2004-01-30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그런데? 저 <천국의 계단> 표지는 왜 올라와 있는 건가요?

연우주 2004-01-31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직 권상우 때문에 인내하며 보는 중. 이번주 2편 다 못봤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