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강아지 산책을 다녀오다 기름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날 또 산책을 갈 텐데, 그러자면 기름을 넣어 두는 게 편했다.
저녁거리를 사러 나간 김에 근처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었다.
요즘 대세가 다 그렇듯, 주유는 셀프였다.
신용카드로 계산을 한 뒤 카드와 영수증을 챙겼다.
오늘 아침, 산책을 가려다보니 주유 투입구가 열려 있다.
게다가 주유구 캡-뚜껑이라고 해야 하나-도 사라진 채였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누군가가 기름을 훔쳐가는 일은 없을 터,
필경 내가 주유 투입구를 열어놓은 채로 주유소를 떠났고
주유소에서든 집에 오는 길에서든 뚜껑이 떨어졌을 터였다.
속상했다.
오늘은 서비스센터가 놀 테니 내일 가서 뚜껑을 사야 할텐데,
내일 스케줄이 빡빡해 그럴 여유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물론 뚜껑이 없다고 해서 기름이 새거나 그러진 않겠지만,
괜히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생각해보면 그런 식으로 주유구를 닫지 않고 주유소를 나온 게 처음은 아니다.
한번은 기적적으로 뚜껑이 주유구에 매달려 있었던 적도 있고,
이건 아에 믿기지 않는 얘기인데, 차 지붕에 뚜껑을 놔뒀는데
집까지 오는 동안 그게 떨어지지 않았던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도 말이 안된다).
그런 행운이 겹치면서 꽤 오랫동안 주유구 뚜껑을 지켜왔는데
드디어 잃어버린 것이다.
요즘 나오는 차는 뚜껑에 끈이 달려 분실할 우려가 없지만,
내 차는 구식이라 끈이 없기에 덜컥 잃어버린 것이다.
분실 자체도 속상하지만 차가 오래된 거라 부품이 있긴 할지 걱정도 됐다.
한숨을 늘어지게 쉬면서 차를 모는데
아내가 도로변에 있는 서비스센터가 문을 연 것을 발견했다.
그곳에 전화를 걸었고, 부품 구매는 다른 곳, 그래도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그 부품점은 오늘도 영업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점심을 먹자마자 그곳으로 출발했다.
주차장엔 차가 꽉 차 있었고, 나처럼 부품을 구하는 사람이 꽤 많이 대기하고 있었다.
"2000년식 EF소나타인데요 주유구 뚜껑 좀 사려고요."
가격은, 놀랍게도 3600원밖에 안했다.
혹시 또 잃어버릴지 몰라서 넉넉하게 두개를 샀다.
집으로 오는 동안, 난 너무 행복했다.
따지고 보면 부품을 잃어버려 다시 산것이니 내게 손해인 셈인데
그게 어쩌면 그렇게 큰 기쁨을 주는지,
사람이란 참 신기한 존재구나 싶었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해 준 아내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 것은 물론이다.
아내는 늘 그렇듯이 "내가 뭘 했다고" "당연히 해야지" 같은 말 대신
"그러니까 앞으로 잘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행복에 겹다보니 그 으름장도 귀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