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S 서비스 짱.
110번째: 11월 10일(금)
미녀와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맥주 세트 하나를 먹었다. 술이 다 비었을 무렵 난 카운터로 가 카드를 내밀었다. 하도 긁어서 거의 닳아버린 카드를. 아무 생각없이 싸인을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미녀가 화장실에 가 있었기에 할 일도 없고 해서 문자를 확인했다. 카드 회사에서 보낸 문자가 있다. 난 내 눈을 의심했다. 2만7천원이 아니라 27만원이 찍혀 있었으니까.
난 다시 카운터로 갔다.
“&^^%%*()(*@()))”
카드 전표를 보니 전표에도 27만원으로 되어 있다.
‘내가 그것도 확인 안하고 사인을 했단 말인가.’
종업원은 당황해 했다. 그리고는 열심히 승인취소를 시도한다. 20분 쯤 있다가 내 휴대폰으로 문자가 온다. 승인취소가 되었다면서. 미안했는지 종업원이 과일안주를 서비스로 준다. 그걸 보니 그냥 갈 수가 없어서, 4만5천원짜리 술을 또 시켰다. 다시금 미녀와 즐겁게 수다를 떨면서 마셨다. 새벽 두시, 다시금 카드를 내밀었다. 이번에는 금액을 확인하고 사인을 한다.
다음날 아침, 난 엄마가 깨워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니 전화가 계속 울리더라. 받아봐.”
전화를 보니 부재중 전화가 무려...십여통이다. 테니스를 치기로 했던 친구인데,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황급히 옷을 차려입고 내려갔다. 하지만 술이 덜 깨서 그런지 몸놀림은 예전만 못했고, 난 그저 라켓만 들고 서 있는 수준의 테니스를 쳐야 했다. 시종 이런 소리를 했다. “술만 안취했으면 저거 칠 수 있었는데.”
역시 두시까지 마시는 건 무리다. 게다가 술에만 취한 게 아니라, 미녀에도 취했으니...
111번째: 지도학생을 추억하며
11월 14일(화)
슬픈 표정으로 술을 사달라고 한 지도학생의 말이다.
“민호(가명) 형 오늘 아침 군대 갔어요.”
민호는 올 5월까지 내 지도학생이었다. 본과 2학년을 두 번 유급하고 세 번째 다니다 결국 학교를 잘렸다. 그는 “미안해서” 내게는 연락하지 못하지만 고교 후배인 이 지도학생과는 그래도 연락을 한단다. 나 역시 마음이 착잡했다. 그 학생이 어려운 처지인데 내가 해준 게 아무것도 없어서. 사실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기에.
지도학생은 내가 몰랐던 민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작년엔 학교를 거의 안나갔어요. 사귀던 여자가 좀 안만나주고 그랬나봐요. 그 여자애 학교에 가서 며칠씩 기다리고 그랬어요....”
“올해 농구하다가 발을 다쳐서 일주일간 학교를 못갔어요. 그래서 그 과목을 F 맞은 거예요.”
“블록강의(3주간 한 과목만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친 뒤 끝나는 과목으로 본 2 때는 이것만 한다)는 다들 1주째 주말부터 공부를 하거든요. 근데 민호 형은 2주째 수요일 지나서 해도 된다고 했어요. 실제로는 금요일부터 시작하기도 했고요.”
하나하나가 다 유급생의 삶으로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뭐라고 했던가. 여자는 대학 생활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공부를 아주 잘 할 필요도 없고 그냥 기본만 갖추면 삶이 편하다고 그러지 않았던가. 그래서 민호는 “교수님께 미안해서 연락 못드리겠다”고 말했을테고, 같은 이유로 나 역시 그에게 연락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제, 민호는 군대에 갔다.
민호는 부모님께 그동안 학교에 다닌 걸로 거짓말을 했단다. 군대에 가게 되면서 사실을 털어놓자 부모님이 이러셨단다.
“그 동안 많이 힘들었겠구나. 잘 다녀와라.”
이 말을 들으니 그 부모님께도 미안해진다. “다시 의대에 편입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는 민호에게 겨울방학 때 면회를 가기로 지도학생과 약속했다.
눈을 떴을 때 난 고속버스 안에 있었고, 청소 아줌마가 버스 안을 치우는 중이었다. 황급히 가방을 챙겨 내려 보니 버스를 향해 거대한 물줄기가 퍼부어지고 있다. 그곳은 바로 세차장이었다. 너무 많이 마셨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