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번째: 작업의 정석
우리 학교엔 나랑 친한 선생이 두명 있다. 한명은 여자분으로 주량이 세서 내가 좋아하고, 또 한분은 남잔데 교수 치곤 드물게 인간 냄새가 나서 좋아한다. 전자와는 가끔씩 술 대결을 하고, 후자와는 일주에 한번씩 미녀 조교 셋과 더불어 점심 모임을 한다. 못다한 이야기를 하기엔 점심시간이 너무 짧기에 남자 선생과 저녁을 한번 같이하자고 했고, 그게 성사된 건 10월 24일(화)이었다.
1차에서 소주를 열심히 마시고 2차로 간 오뎅바, 술이 약한 남자선생은 1차만 끝나고 집에 갔고, 요즘 우울해 보이는 조교 한명도 귀가해 버려 2차에는 나랑 미녀 조교 둘만 갔다. 디귿(ㄷ)자 모양의 테이블 중 난 가운데에 앉았고, 미녀 조교는 왼쪽, 오른쪽엔 남자 둘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즐겁게 수다를 떨며 술을 마시던 중 남자 중 젊은 쪽이 조교 한명에게 말을 건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의 고뇌에 대해 얘기하는 듯했다. 순간 생각했다. 이게 작업이구나.
난 한번도 모르는 사람에게 작업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같이 간 사람에게 충실했고, 혼자 술을 마실 때도 별반 한눈을 팔지 않았다. 물론 이건 해봤자 안될 걸 알아서 그랬던 거지, 마음마저 없었던 건 아니다. 내 외모가 좀 괜찮았다면 종업원에게 “저기 앉아 있는 미녀에게 마티니 한잔!” 이런 주문을 넣기도 했겠지. 어쨌든 피부가 하얀 그 남자가 작업을 거는 게 참 신선하고 귀엽게 보였다. 작업의 대상이 된 미녀조교는 놀란 와중에도 이런저런 대답을 했는데, 좋은 얘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난 옆에 있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젊다는 게 좋네요. 저렇게 모르는 여자에게 말도 붙이고. 전 마흔이 되고나니 모든 것에 심드렁해지던데.”
그 남자의 답변에 난 기절할 뻔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몇 년만 있으면 마흔이거든요.”
난 그 남자가 한 50정도, 잘 봐줘야 45 정도는 된 줄 알았다. 근데 아직 마흔도 안됐다니. 꼭 대머리라서 그런 건 아니었고, 풍기는 인상이 너무 나이들어 보였는데.
미녀조교가 그다지 신통한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남자는 이내 작업을 중단하고 다시 술을 마셨다. 그 다음날부터 미녀 조교가 더 멋져 보인다. 작업의 대상이 되다니 정말 미녀구나 싶어서.
107번째: 무자식 상팔자
11월 3일(금)
친한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 무에서 출발해 지금은 죽전에 자기 이름으로 된 아파트를 얻은, 소위 자수성가한 그는 무척 날 환대해 줬다. 1차는 맛있는 돼지갈비에 소주, 2차는 자기 집에서 맥주.
배가 좀 나오긴 했지만,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성실한 삶을 살고 있다. 부인과 사이도 아주 좋고, 내가 아는 한 그 친구가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린 적도 없다. 그렇게 금술이 좋던 그 부부가 이제 떨어져 살아야 한단다. 12월이면 자기 애들 둘과 아내를 캐나다로 보내야 하기에.
“남들이 다 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
친구는 쓸쓸히 말한다. 난 자식을 외국에 보내는 건 특권층의 일로만 알았다. 하지만 특권층이 아닌 이 친구마저 그렇게 하겠다는 걸 보니 ‘대체 기러기는 어느 단계까지 내려와 있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는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다. 남이 하니까 자기도 애들 사교육을 시키고, 역시 남이 하니까 처자식을 외국에 보낸다. 외국에 보내는 돈은 어떻게 감당하는지, 떨어져 사는 걸 감수할 정도로 자식 교육이 중요한지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된다. 부부는 부부의 삶이 있고, 자식은 그 나름의 삶이 있는 게 아닐까. 꼭 그렇게 해야만 자식들의 경쟁력이 길러지는 걸까. 그러고보면 내게 자식이 없는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