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사냥꾼 - 역사가 돈이 되는 세계를 찾아서
네이선 라브.루크 바 지음, 김병화 옮김 / 에포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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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보물로 가득한 책 - 『역사 사냥꾼』

 

이 책 보물이다. 보물로 가득차있는 보물창고다.

 

“보석이 눈앞에 놓여 있을 때, 당신은 알아볼 수 있는가?” (186쪽) 

 

보물 리스트 :

 

아인슈타인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핵무기의 참혹하고 강력한 잠재력을 경고한 편지.(107쪽)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이 쿠바 아바나 항에서 있었던 USS 메인호에 대한 언급한 편지 (107쪽)

 

로제타 석을 확보하라는 존 헬리 허친슨의 편지 (113쪽)

 

헤밍웨이의 청새치 낚시에 관한 편지 (116쪽)

 

헝가리 출신의 역사가가 여러 사람과 주고 받은 편지;

  • 처칠의 딸인 배우 사라 처칠.
  • 불확정성 원리에 관한 편지 (182쪽)

 

프랑스의 루이 16세가 영국 국왕에게 보낸 편지 (190쪽)

 

2차대전 당시 필리핀에 주둔했던 미국 병사 프랭크 K. 풀리거가 아인슈타인과 주고 받은 편지 (226쪽)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에 대하여 논의하는 편지 (319쪽)

 

 

319쪽 이하에 등장하는 아인슈타인의 편지에 관련된 이야기 먼저 한다.

 

게오르크 브레디히, 저명한 독일 과학자다.

그의 직계 후손이 그간 가지고 있던 자료들을 저자에게 보여줌으로 해서, 세상에 드러난 것들, 아인슈타인의 편지를 비롯하여 그들이 주고 받은 편지들, 그 편지들에 실려 오고 간 생각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었다가 나타나게 된다.

 

은행 상자 스물 다섯 개 분량의 자료들이다. (337쪽)

 

그 정도로 대단한 자료들이 숨겨져 있다가, 저자의 손을 거쳐 이 세상에 알려진다. 저자는 그 일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게오르크와 막스 브레디히는 내게 일거리를 떠안겼다.

이 역사를 보존하고 그들과 타인들의 이야기를 해주라는 과제였다.

게오르크는 자신의 기록이 파괴될까 봐, 평생의 연구가 역사 속에 사라질까 봐, 걱정했다.

 

아인슈타인의 편지와 그밖의 자료를 정리하고 분석하기 위해

저자는, <과학자 두 명과 번역가 세 명을 고용 했다.> (342쪽)

 

이 책은?

 

이 책 『역사 사냥꾼』은 <역사가 돈이 되는 세계를 찾아서>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저자는 네이선 라브 (Nathan Raab), <희귀 문서와 역사 유물을 다루는 세계 최고의 거래회사 라브 컬렉션(Raab Collection)의 대표. 역사 문서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 진위를 평가하는 그의 특출한 재능 덕분에 숨겨져 있던 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역사가이자 역사 유물 관련 전문가로 미국의 공공 및 민간 역사 컬렉션 구축의 자문 역할도 맡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저자가 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내 사냥의 대상은 역사와 관련된 것, 과거가 남긴 흔적(relic), 역사적 문서(document)와 사람이 만든 유물(artifact), 그리고 중요성을 가진 것들이다. 값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것도 사냥의 대상이다. 가격이 아니라 중요도의 측면에서 보는 가치 말이다. 나는 우리 회사인 라브 컬렉션을 위해 최선을 다해 그런 물건을 손에 넣고, 대중에게 소개하고 판매한다. (10쪽)

 

그는 역사적 문서, 유물들을 찾아다니면서 그것들을 수집 -  물론 대가를 지급하고 -  하여 세상에 드러낸다. 이것 또한 대가를 받고 파는 일이지만.

 

예를 들어, 1808년에 나폴레옹이 전쟁장관에게 보낸 편지를 5000 파운드( 8000-9000 달러)에 사서, 25000 달러에 되팔았다. (53쪽)

 

물건 보는 안목을 가지게 되기까지

 

그런데 그의 물건을 찾아내는 안목이 하루아침에 거저 생긴 것이 아니다.

이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하면서 오랜 시간 노력을 한 결과 그런 안목이 생긴 것이다.

또한 저자의 언어능력도 거기에 한 몫을 했다.

 

나폴레옹의 사망에 관한 보고서를 손에 넣었을 때가 그의 언어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프랑스어로 된 문서의 내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분명히 유럽의 몇 개 국어를 알고 있었던 것이 이런 문서의 가치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99쪽)

존 헬리 허친슨이 로제타 석에 대하여 쓴 편지의 가치를 알아보고 손에 넣었던 저자의 아버지 이야기다. 그 편지는 지금 영국 국립 도서관에 있다. 그곳에 판 것이다. (114쪽)

아버지는 역사를 알았기 때문에 그 편지를 쓴 사람이 아프리카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돌’이라는 언급을 알아보았다.

시야를 넓혀보면, 아버지에게는 통찰력이 있었고, 편지 내용을 읽어볼 생각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냥 허친슨이란 이름을 보고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네. 별로 사고 싶지 않아”라고 넘기지 않았던 것이다. (115쪽)

 

또하나, 맬컴 글래드웰의 『블링크』 (62쪽)

 

맬컴 글래드웰의 『블링크』를 읽었는데, 허투루 읽었던 게 분명하다.

이 책에서 저자가 그 책을 인용하는 부분을 읽고, 다시 그 책의 진가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책에서 말하려는 핵심은 예술 등의 분야에서 어떤 물건의 진위를 한눈에 보고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62쪽).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산을 오르는 여행자처럼 견뎌야만 한다. 산이 거기 없다면 길은 훨씬 짧고 편하겠지만 어쨌든 산이 있으니 넘어야 할밖에. (42쪽) - 괴테

 

반짝이는 금속은 찰나에 그친다. 참된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79쪽) - 괴테

 

믿기는 하되, 증명해야 한다. (89쪽) - 로널드 레이건

 

꿈을 꾸듯 그것을 찾아 헤매게 되고, 보고 나면 곧 그것에 사로잡힌다. (91쪽)-  소로

 

다시, 이 책은?

 

참고로,

리뷰 첫머리에서 소개한 아인슈타인의 편지,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그 편지는 100만 달러 가까운 금액에 팔렸다고 한다. (107쪽)

 

저자는 아버지와 함께 어느 희귀 도서 박람회에 가 둘러보던 때의 장면을 소개하는데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우리는 집중과 산만함이 공존하는 상태로, 주의해서 보기도 하고 대충 보기도 하면서 (63쪽)

 

그렇게 하다가, 찰스 다윈의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 심정을 이렇게 밝힌다.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르다가 홀연 그것을 발견할 때 놀라움은 더 커진다. (63쪽)

 

그 장면, 대충 보고 다니다가, 찰스 다윈의 편지를 발견했을 때의 그 놀라움.

 

그게 바로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의 모습이고, 중간 어느 쯤인가부터 자세를 고치고 정색을 하면서 읽게 되어,  느낀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보석이 눈앞에 놓여있을 때 당신은 알아볼 수 있는가?

보석이 중요한 것이라는 간판을 달고 우리 앞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우리는 추적하고 발견하고 마지막으로는 이해하고 알아봐야 한다. (186쪽)

 

물건의 가치를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몰라도 지나치지만 어떤 사람은 물건 바로 앞에 멈춰서게 되는 것이다. (70쪽)

 

이런 말, 명심하고 명심하자. 내 가슴 속에 깊이 새겨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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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1950 미중전쟁 - 한국전쟁, 양강 구도의 전초전
KBS 다큐 인사이트〈1950 미중전쟁〉 제작팀 지음, 박태균 감수.해제 / 책과함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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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미중전쟁

 

미국과 중국, 총성없는 전쟁 중

 

하루가 멀다하고, 미국과 중국은 티격태격하고 있다.

오늘은 이 문제로, 내일은 또 다른 문제로, 정말 총만 들지 않았을뿐, 전쟁이 따로 없다.

 

그렇게 미국과 중국은 지금 전쟁중이다.

 

미국, 중국간의 경쟁 아니 전쟁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 책은 그 근원을 우리나라에서 1950년에 벌어진 한국전쟁에서 찾고 있다.

 

이 책은?

 

이 책 『1950 미중전쟁』은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로 방영된 것을 활자화한 것이다.

<한국전쟁, 양강 구도의 전초전>이란 부제가 내용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 책은 한국전쟁을 미국, 중국과 소련의 각축장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한국전쟁의 의미는?

 

한국전쟁, 625전쟁에 대하여 우리의 시각과 외국인이 바라본 시각, 당연히 다를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시각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우리들, 한국인들에게 한국전쟁의 과정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이 낙동강까지 치달았고, 인천상륙작전 직후에는 38선을 넘어 북진이 시작되었다. 한국군은 압록강에 이르렀지만, 중국군의 참전으로 인해 14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치열한 고지전을 벌였고, 공산군의 반격을 막아낸 결과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이 갈라진 후 70년이 넘도록 분단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282쪽)

 

그렇다면 외국인들에게도 그렇게만 인식되는 전쟁이었던가?

전쟁의 양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전쟁은 초반에 한반도의 내전으로 시작되었지만, 전쟁이 발발한지 3일만에 유엔군이 참전하면서 이 전쟁은 국제전이 되었다.

1950년 7월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은 유엔군에게 이관되었다. 유엔군이 38선 이북으로 넘어간 이후 중국군이 참전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한군은 괴멸상태였기 때문에 중국군이 공산군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결국 전쟁의 무대가 한반도였을 뿐 실제 전쟁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에 의해 진행된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게는?

미국에게 한국전쟁은 공산화된 중국과 치른 첫 번째 전쟁이었다.

 

중국에게는?

중국 역시 혁명 후에 처음으로 미국과 맞선 전쟁이었다. 그렇기에 2020년 중국에서는 항미원조전쟁 승리7 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의 묘소에 참배했다.

 

그렇게 인식되는 전쟁이 바로 한국전쟁이다.

그러니 미국과 중국이 지금에 와서야 싸우게 된 게 아니라, 전부터 싸웠는데 그 시작이 바로 한국전쟁이라는 것이다.

 

당시 소련과 중국은 왜 미국과 싸우려 했나?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에서, 미국이 참전하여 전쟁의 당사자가 되는 것에 대하여, 당시 소련과 중국의 입장은 어떤 것이었던가? .

 

왜 중국은 한국전쟁에 끼어들었는가?

맨처음에 중국은 한국전쟁에 끼어들기 망설였는데, 스탈린의 다음과 같은 설득이 먹혀들었다.

 

어차피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 세력과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일본이라든지 영국이라든지 미국을 도울 수 있는 국가의 힘이 상당히 약화돼 있는 현재가 가장 좋은 시기이므로 만일 싸우려면 지금 싸워야 한다. (106쪽)

 

이런 스탈린의 설득에 마오쩌둥이 한국전쟁에 참전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마오쩌둥은 미국이 가장 유력한 적이라며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미군이 평양을 점령하기 전에 출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미군의 중국 본토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도 했다. (107쪽)

 

그렇게 한국전재에 참전한 다음, 그의 생각은?

 

마오쩌둥은 한국전쟁이 계속돼 소련으로부터 장비 지원을 받는다면 중국 군대 발전에 도움이 되는 동시에 최종적으로 타이완에 관련된 상황에서도 유용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마오쩌둥은 한국전쟁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했다. (228쪽)

 

스탈린은 한반도에 미국을 끌어들이면 유럽에 대한 미국의 압력을 줄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마오쩌둥과 스탈린은 출발점은 다르지만 둘 다 미국을 끌어들이고자 했다. (229쪽)

 

다시, 이 책은? - 현재는?

 

그래서, 한국전쟁에서 시작한 미국과 중국의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미국과 중국이 갈등을 빚고 있는 분야를 살펴보면, 무역과 안보 면에서 갈등을 거듭하고 있다. (293쪽)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

현대판 실크로드를 구축해 중국과 유라시아 국가들을 경제벨트로 묶는다는 계획 (270쪽)

대륙 노선 3개, 해양 노선 2개 등 모두 5개 노선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에는 백여개 국의 국가가 관련되어 있다.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정책 :

중국의 거침없는 확장정책에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보고서>에서, 중국을 현상타파세력, 즉 미국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했다. (273쪽)

 

1950년에 시작한 미국과 중국의 전쟁은 목하 진행중이다.

그게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그 속에 숨어있는 진실은 무엇인지 알려주는 책, 이 책의 가치는, 미중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준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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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하) - 중세의‘압도적 선구자’,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일생 ㅣ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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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프리드리히 2세, 그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

 

1194년 12월 26일 ~ 1250년 12월 13일, 중세에 살았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독일왕, 그리고 시칠리아의 왕이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평가가 적절할 듯 하다.

 

이해, 황제 프리드리히가 죽었다. 세속 군주 가운데 가장 위대한 통치자로 세계의 경이를 모았고 여러 면에서 멋지고 새로운 업적을 이룩한 개혁가였다. (하, 349쪽)

 

베네딕트의 수도사이자 영국 출신의 연대기 작가인 매슈 파리스의 기록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그가 한 평가가 다 맞다.

세계의 경이, 멋지고 새로운 업적을 이룩한 개혁가.

 

인문정신을 정치에서 실현하려고 한 인물.

 

나는 여기에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인문정신을 정치에서 실현하려고 한 인물이라고.

그렇게 말한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그는 나폴리 대학을 세운다, 지금의 페데리코 2세 대학이다.

(참고로, 페데리코는 프리드리히의 이탈리아식 이름이다.)

 

나폴리 대학은 유럽 최초의 세속대학이라 할 수 있다. (상, 156쪽)

나폴리 대학은 신학이나 교회법이 주요 과목을 차지했던 다른 대학과 달리 로마법이 주요과목이다. 또한 철학, 윤리학, 수사학도 가르쳤다.

고대에 교양 전반이라는 의미에서 중요시한 아르테스 리베라레스(리버럴 아츠)를 모두 가르치는 것이 프리드리히가 나폴리대학을 설립한 목적이었다. (상, 155쪽)

 

또한 그가 만난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렇다.

 

레오나르도 피보나치 (195쪽)

프리드리히는 피사에서 피보나치를 만난다. 피보나치는 이탈리아 해양 도시국가 태생으로 젊은 시절 지중해 주변을 돌아다니며 이슬람 세계와 교역을 하는 중에 아라비아 수학의 유용성을 알아차리고 유럽에 도입하는 데 열정을 쏟고 있었다.

또 있다. 프리드리히 2세는 마이클 스콧이란 사람을 만난다.

 

마이클 스콧 (상, 197쪽) 

내가 마이클 스콧이란 사람을 만난 것은 단테가 쓴 『신곡』에서다

『신곡』 <지옥>편 20곡이다.

 

옆구리에 살점 하나 없는 저 사람은

마이클 스콧으로, 그는

마술의 속임수에 통달했었다. (『신곡』, <지옥>편, 민음사, 200쪽)

 

미주에 마이클 스콧에 대하여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문학가이자, 수학자. 아랍어와 히브리어로 된 아리스코텔레스와 아비켄나의 저술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마법사와 점성술사로 알려져 있다.>(위의 책, 383쪽)

 

그 사람에 대하여 시오노 나나미는 이 책에서 이렇게 소개한다. 

피보나치를 언급하는 중에,

참고로 피사의 상인 피보나치는 프리드리히에게 자기보다 다섯 살 어린 친구를 소개한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아직 이슬람 통치 아래 있던 스페인에서 공부한 이 남자와 프리드리히가 교류한 분야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다. 프리드리히의 궁정을 드나드는 단골손님이 되는 마이클 스콧이란 남자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상, 198쪽)

 

유럽에 아리스토텔레스를 소개한 최초의 인물이다, 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그러니 그전에 잊혀진 인물이 되었다가, 아랍으로부터 역수입된 아리스토텔레스의 등장은 그후 르네상스의 신호탄이 되는 것이다.

 

해서 이 책에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언급이 자주 보인다. 

프리드리히 2세가 세운 나폴리 대학에 관한 기술중, 다음과 같은 대목이 보인다.

나폴리 대학에서는 로마법이 주요과목이다. 또 철학, 운리학, 수사학도 가르쳤다. 그중에서 특히 아랍인이 연구하고 프리드리히가 독학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중시했다. (상, 155쪽)

 

또 있다. 프리드리히 2세의 아들인 만프레드가 이번에는 주인공이다.

 

만프레디는 고대 그리스어로부터 아랍어로 번역되고 다시 히브리어로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하나를 직접 읽고 유럽 사람들도 더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라틴어 번역을 후원한 바 있다. (하, 324쪽)

 

그러니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프리드리히 가문에 빚을 졌다는 것,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인문정신은 그의 정치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피흘리지 않고 싸우다, 6차 십자군

 

그는 십자군을 이끌고 원정길에 나선다, 교황으로부터 두 차례의 파문을 당하면서까지 미루고 미뤘던 원정이다. 그러나 목적은 싸우러 가는 게 아니었다. 싸우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것, 그게 그의 목표였다.

 

그리고 그는 그 목표를 이루었다. 리처드 사자심왕도 이루지 못했던 일이었다.

 

리처드 사자심왕도 가톨릭 교회가 말하는 ‘불신앙의 무리’와 강화를 체결했다. 하지만 리처드는 살라딘을 상대로 격투를 벌인 후에 이 ‘불신앙의 무리’와 강화를 성립시킨 것이다. 반대로 프리드리히는 한 번도 전투하지 않고 ‘불신앙의 무리’와 대화만으로 강화를 성립시킨 것이다. (상, 250쪽)

 

이런 에피소드, 그의 인문정신인 열린 세계를 잘 보여준다.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 어느날 이슬람 총독이었던 알 가우지에게 물었다.

“예루살렘에 온 후 한 번도 아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왜인가?”

전 총독은 알 카밀로부터 황제의 체류 중에는 아잔을 피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서른네 살의 황제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당신들 가운데 누가 내 영토를 방문하면 교회 종을 울리지 못하지 않나?” (상, 256쪽)

 

또 있다, 이런 이야기 그의 주변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있다.

 

그 다음날부터 하루에 다섯 번씩 모스크의 첨탑 위에서 기도 시간을 알리는 낭랑한 아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루는 프리드리히가 부하들과 시찰 중에 그 일이 일어났다. 아잔을 들은 그들 가운데 그대로 땅에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이 정경에 이슬람 측이 깜짝 놀랐다. 그들 누구도 그리스도교 세계 황제의 부하 가운데 그토록 많은 이슬람 교도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보다 더 놀란 것은 이슬람 식 기도를 올리는 부하를 그대로 둔 채 남은 부하만을 데리고 시찰에 나서는 프리드리히를 봤을 때였다. (상, 257쪽)

 

이런 사실과 별도로, 리옹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교황측 검사 : 루체라에는 원래 그리스도교도가 살고 있었는데 그들을 쫓아내고 그 땅에 아주시킨 사라센인에게 그들만의 마을을 만들도록 인정했다. 

 

다테오 (프리드리히 측) : 황제는 자국 안에서 그리스정교도, 유대교도, 이슬람교도라도 황제의 통치에 반대하지 않는 한 각자의 신앙을 인정하고 있다. 이슬람교도만을 루체라에 모여 살게 한 것은 어디까지나 통치상의 이유 때문이다. (하, 204쪽)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인간이라고 누구나 현실을 모든 것을 보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은 보고 싶은 현실만 본다.

시저가 한 말이다. (상, 233쪽)

 

위기의 어원인 라틴어 ‘crisis’에는 ‘소생’이라는 의미도 있다. (하, 345쪽)

 

우리 말에서는 위기라는 말을 한자어 위기(危機)에서 추론하여 위험과 기회로 뜻을 헤아리는데, 그간 궁금했었다. 서양에서 ‘crisis’는 어떤 식으로 해석하는지.

 

다시, 이 책은? - 프리드리히 2세의 ‘역사적’ 의의

 

프리드리히 2세가 죽은 후에 교황 우르바누스 4세, 그 뒤를 이은 클레멘스 4세의 부추김에 힘입은 프랑스의 루이 9세와 그의 동생 샤를이 시칠리아를 침공하여, 결국 시칠리아는 샤를에게 넘어간다. 프리드리히 2세의 시칠리아 왕국은 그렇게 왕이 바뀌게 된다.

 

교황은 외국 군대를 끌여들여, 눈에 가시같았던 시칠리아를 요리해 버린 것이다

 

이에 관련하여, 마키아벨리의 다음과 같은 통렬한 비판 글이 있다.

 

로마에 근거지를 둔 그리스도 교회가 이탈리아에 해를 끼친 것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만한 군사력을 거느리지 못한 로마 교황이 다른 나라의 군사력을 끌어들일 힘은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 있다. 이탈리아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처럼 항상 다른 나라의 왕에 의존해온 역대 로마 교황 덕분이다. 이탈리아는 외국 세력의 침략에 오랫동안, 그것도 되풀이해 고통받게 된다. (하, 330쪽)

 

물론 이런 글이 실린 마키아벨리의 책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금서처분을 받는다.(하. 331쪽)

 

어쨌든 프랑스 군을 동원하여 시칠리아를 도탄으로 빠트린 교황은 그후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에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다.

 

프리드리히가 죽은 뒤 53년, 그 아들 만프레디가 죽은 37년 뒤인 1303년, 프랑스의 미남 왕 필리프가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를 체포하여 아비뇽 유수가 벌어진다.

그래서 로마 교황이 7대에 걸쳐 프랑스의 소도시인 아비뇽에 유폐된다. 그게 우리가 세계사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과정에 이르기까지, 프리드리히 2세가 교황과 ‘성’은 교황이 ‘속’은 황제가 담당하겠다고, 치열하게 싸웠던 역사는 배우질 못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유럽 중세의 역사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 다음, 프리드리히가 열어놓은 인문정신이 서서히 유럽을 밝히게 되는데, 그게 바로 르네상스다.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가 프리드리히 2세를 중심에 놓고, 유럽의 중세를 ‘쓸 생각’(12쪽)을 했다는데, 그 생각에 경의를 표한다. 프리드리히 2세를 빼놓고는 유럽 중세를, 유럽의 르네상스를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니, 저자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무언가 연결고리가 빠진 채로, 르네상스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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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상) - 중세의‘화려한 반역아’,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일생 ㅣ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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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pre - review

 

시오노 나나미의 책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를 읽고 있다.

이 책 읽기 전에 먼저 궁금한 것 정리해 본다.

 

프리드리히 2세의 가계와 생애

 

출생  -  사망 1194년 12월 26일 ~ 1250년 12월 13일


할아버지 : 프리드리히 1세 (별명 : 붉은 수염) 

아버지 :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6세 (Heinrich VI)

           (신성로마제국 황제, 시칠리아 왕)

어머니 : 콘스탄체(Constanza) -  시칠리아 공주, 노르만 왕조의 정통 후계자 (21쪽)

 

아내 -

첫 번 째 부인 : 아라곤의 공주 콘스탄체 (1209년 결혼)

두 번 째 부인 : 예루살렘 왕국의 이자벨 (욜란데)  여왕 (1225년 결혼)

세 번째 부인 : 잉글랜드 국왕 존의 딸 이자벨라 (1235년 결혼)

 

1222년 첫째 부인 콘스탄체가 사망하면서 예루살렘 여왕 이자벨 2세와 재혼해 예루살렘 국왕 자리에도 오른다.

이자벨 여왕이 아들 콘라트 4세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자, 예루살렘 국왕 직위는 아들에게 넘어갔다. 콘라트 4세는 후일 독일 국왕과 시칠리아 국왕도 겸하게 된다.

 

1234년에는 독일 국왕을 겸하던 장남 하인리히 7세가 반란을 일으켰다.

1237년에는 작은아들 콘라트 4세를 독일 국왕에 앉혔다.

 

그는 1250년 12월 토레마조레 성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서거 이후 신성로마제국 황제 직위는 공석으로 유지되었다가 1312년 룩셈부르크 가문의 하인리히 7세가 가져갔다.

독일 왕위는 1220년 큰아들 하인리히 7세에게, 예루살렘 왕위와 시칠리아 왕위는 작은아들 콘라트 4세에게 계승되었다.

 

재위기간

 

신성로마제국 황제 (1220년 ~ 1250년)

독일 국왕 (1212년 ~ 1220년)

시칠리아 국왕 (1198년 ~ 1250년)

예루살렘 국왕 (1225년 ~ 1228년)

 

전임자 :

신성로마제국 황제, 독일 국왕 : 오토 4세(Otto Ⅳ)

시칠리아 국왕 : 하인리히 6세(Heinrich Ⅵ)

예루살렘 국왕 : 이자벨 2세(Isabelle II)

 

후임자 :

신성로마제국 황제, 독일 국왕 : 하인리히 7세(Heinrich Ⅶ)

시칠리아 국왕, 예루살렘 국왕 : 콘라트 4세 (Konrad Ⅳ)

 

그의 일생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지만, 복잡한 것은 여전하다.

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면서, 시칠리아 왕국의 왕이기도 하다.

또 예루살렘 왕국의 왕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은 예루살렘의 여왕과 결혼해서 그렇게 된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대체 시칠리아와 신성로마제국의 왕과 황제를 겸직하다니, 대체 이게 어떻게 되는 것인가? .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그런 의문점 정리해보기로 한다.

 

신성로마제국, 무척 궁금했었다.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게 대체 어떤 나라인가? 

 

800년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1세가 교황 레오 3세에게 명목상의 '서로마 황제' 대관을 받아 '신성 로마 황제'라는 개념이 탄생하였으며,

924년 황제 베렝가리오 1세의 사망 이후 제위 계승이 중단되다가

962년 독일 왕국의 오토 1세가 이탈리아 왕국을 통합하고 교황 요한 12세에게 황제 대관을 받으면서 제위가 부활하여 본격적으로 신성 로마 제국이 시작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도중 1806년 황제 프란츠 2세가 퇴위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은 해체되었다.

{나무 위키}

 

분명 로마는 아닌데 왜 로마라는 이름이 들어있으며, 그게 나라이기는 하며,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는? 예컨대 시칠리아와는 어떻게 다른가?

 

신성로마제국은 수장이 왕인가, 황제인가?

그리고 그 수장은 어떻게 되는가? 누가, 어떻게 그 자리에 오르는가?

 

여기 이 책에 그 답이 있었다.

 

중세 유럽 그리스도 세계는 두 명의 최고 지도자 존재를 인정하고 있었다. 로마 교황과 신성로마제국 황제다. 

로마 교황은 신의 뜻을 신자에게 전한다는 역할로 보건대 그리스도 교회의 최고위자이며 따라서 그리스도교도 전원의 정신적 지도자였다. 교황에 반하는 자가 파문당하는 것도 교황에 반하는 일은 신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정신적’이라는 것은 당시에는 ‘종교적’이라는 말이었다. 

다른 하나는 황제인데 황제도 동방의 황제와는 다른 성격의, 유럽에만 존재했던 신성로마제국 황제다. 유럽 그리스도교 세계에서는 세속의 최고위자로 여겨지던 존재다.

 

바꾸어 말하면 로마 교황의 책무가 신자들이 정신적이고 종교적으로 평안한 생활을 보내다가 편안히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책임을 지는 것이라면 황제의 책무는 같은 신자가 평화롭게 생활하며 굶주리며 살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 둘에 부여된 권력을 전자의 경우 ‘교권’, 후자는 ‘속권’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렇게 ‘교권’과 ‘속권’이 나뉘어 있어도 최고위 사람에게만 신이 주신 권력이 있다는 중세이므로 로마 교황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도 세습은 허용하지 않았다. 둘 다 선거로 선출해야 했다.

 

로마 교황은 붉은색 옷을 입은 추기경들의 투표로 뽑혀야만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흰옷을 입을 수 있는 교황이 된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도 ‘선제후’라 불리는 독일의 유력제후들에게 선출되지 않으면 머리에 제관을 쓸 수 없다.

 

이점이 다른 제후들과의 가장 큰 차이였다. 왕권은 왕의 아들로 태어나면 얻을 수 있는 세습의 권리지만 로마 교황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만은 그들보다 지위가 위였으므로 세습권이 아니었다. (82- 83쪽)

 

종교계의 최고 권위자인 로마 교황과 세속의 최고 실력자인 신성로마제국 황제만이 세습도, 전임자의 지명도 아닌 선거로 뽑혀야 비로소 취임할 수 있다.

로마 교황을 뽑는 것은 추기경으로 임명된 고위 공직자들이다. 한편 황제를 선출하는 것은 ‘선제후’라고 불린, 봉건제후 가운데 유력한 제후들이었다. (112쪽)

 

자,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는 것은 세습이 아니라, ‘선제후’라 불리는 귀족들이 투표를 해서, 선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 프리드리히 2세가 가진 또다른 왕위, 시칠리아 왕국의 왕은?

 

프리드리히가 시칠리아의 왕이 된 것은 어머니에게서 받은 세습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이는 프랑스 왕 필리프도 영국 왕 존도 마찬가지다. (83쪽)

 

프리드리히 2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선출로, 시칠리아 왕위는 세습으로 이어받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후에 로마로 떠나기 전에 아들에게 시칠리아의 왕위를 건네준다.

 

팔레르모 대성당에서 이제 막 한 살 생일을 맞은 적장자 하인리히가 아버지 프리드리히와 어머니 콘스탄체가 참석한 가운데 시칠리아 왕국의 왕으로 즉위했다. (61쪽)

 

시칠리아 왕국의 왕위는 세습이니까. 프리드리히 2세는 아들 하인리히에게 왕위를 넘겨준 것, 아무 문제 없다. 그 아들이 한 살이든 두 살이든.

 

그렇게 해서, 일단 궁금증 하나 풀렸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 책 읽어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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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의 이의신청 - 영화감독 켄 로치, 다른 미래를 꿈꾸다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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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영화 감독 켄 로치 - 『비주류의 이의신청』

 

이 책은?

 

이 책 『비주류의 이의신청』은 영국의 영화감독 켄 로치와 그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그가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보고 있다.

 

저자는 박홍규, <영남대학교 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시립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남대학교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로 전공뿐만 아니라 정보사회에서 절실히 필요한 인문·예술학의 부활을 꿈꾸며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책의 제목 『비주류의 이의신청』은?

 

켄 로치와 칸 영화제의 인연은 깊다.

그는 다른 영화제에서도 많이 수상을 했지만, 칸 영화제에서는 1993년, 1995년, 2006년, 2012년, 2016년에 수상을 했는데. 2006년과 2016년에는 각각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그런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비주류 영화를 찍는 죄파 감독이다.

그런 켄 로치를 초대하여 저자는 그의 영화를 일일이 분석하면서, 그의 시선을 따라가며 국가, 인권, 자유, 노동, 복지, 가족 등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가치를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켄 로치를 이렇게 소개한다.

 

정치 권력이나 자본 권력이 서민을 착취하는 세상에서 반세기 이상, 비주류의 이의신청 수단으로 시종일관 이단적 영화를 만들어온 사람은 켄 로치밖에 없습니다. (22쪽)

 

따라서 켄 로치를 나타내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 바로 ‘비주류’이며, 또한 비주류이면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이의 있소’ 라며 외치고 있기에 ‘비주류의 이의신청’이라고 하는 것이다.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던 인물, 켄 로치

 

켄 로치, 모르는 사람이다. 켄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어떤 영화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서 본 것이 떠올랐다. 영국 사회보장 제도의 맹점을 신랄하게 비판한 작품.

 

그렇게 켄 로치라는 인물, 이름을 새기게 되고, 이 책을 통해 그가 만난 사람들, 작품 속에 녹여 놓은 사람들, 상황들을 차근차근 살펴보게 되니, 이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뚜렷하게 보이게 된다.

 

그리고 저자가 비주류의 이의신청이라는 표현이 적확하게 그를 표현하는 ‘칭송’의 말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켄 로치에게 영화란?

 

켄 로치에겐 영화가 곧 정치비판의 현장이다.

처음부터 그는 ‘대다수가 모르는 현실’, ‘잘 못 알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진실’에 드라마, 영화의 옷을 입혀 꾸준히 말을 걸어왔다. (9쪽)

 

‘진실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고 따라서 ‘진실을 위한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10쪽)

 

그는 소위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 감독의 전형이지만 그가 다루는 소재와 주제는 보편적인 휴머니즘에 입각해 있다. 언제나 평범한 보통사람의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진실을 추구한다. 극소수 엘리트 지배층이 대다수 피지배자층을 착취하는 현실을 고발한다. (10쪽)

 

켄의 영화에는?

 

그는 영화를 만들 때 가급적 기성배우들의 출연을 자제하고 일반인들을 아마추어 배우로 삼아 그들이 실제 극 중 인물인 양 지내게 한다. 그러고는 사건 순서대로 촬영하면서 리얼리즘을 최대한 살린다.

그는 또한 스타를 고용하지 않기로 유명한데, 스타에게 고착된 이미지가 자신의 영화를 방해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44쪽)

 

배우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도록 카메라를 배우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게 하거나 조명을 최소화하여 자연주의적 스타일의 영화를 만든다. (75쪽)

 

켄 로치의 역사관

 

역사는 미래를 여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250, 253쪽)

 

역사는 왜 우리가 지금의 모습인지, 우리가 누구인지, 왜 우리가 현재 상황에 있는지를 말해준다.

 

켄 로치의 영화 철학

 

그런 역사관과 영화관을 지닌 켄 로치의 작품, 저자는 다음과 같은 주제로 엮어낸다.

켄 로치가 어떤 영화관,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1장 죽어도 멜로드라마는 찍지 않는다

2장 오로지 민주주의 영화를 찍는다

3장 최악의 검열에도 항상 찍는다

4장 언제나 최하층 사람들을 찍는다

5장 목숨을 건 진실투쟁을 찍는다

6장 참된 민중혁명을 위해 찍는다

7장 해방과 자유를 위해 찍는다

8장 행복과 복지를 위해 찍는다

9장 인간성 회복을 위해 찍는다

 

켄 로치의 영화를 통해 알게 된 것들

 

영국의 역사, 특히 대처리즘으로 일컬어지는 대처 수상 시절의 역사. 

1979년 집권 이후 신자유주의를 전 지구적으로 확산시킨 인물이 대처다. 그로 인한 사회 양극화의 심화, 무한 경쟁과 인간성 상실 등의 이슈는 현재 국경을 초월해 범 세계적인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144쪽)

 

아일랜드의 역사. (256쪽 이하)

 

스페인 혁명의 전개 과정. (171쪽 이하)

 

더하여, 우리 나라의 노동 현실

저자는 노동법을 전공하고, 가르쳤다. 해서 영국의 노동 현실을 다룬 켄 로치의 영화를 살펴보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켄 로치가 우리나라 고 최인기 씨 사건에 애도와 연대한 사실도 기록해 놓고 있다. (343쪽)

 

개별 영화에 관해 몇 가지 적어둔다.

 

두 명의 빌리

 

켄 로치의 [케스]는 보지 못했지만, [빌리 엘리어트]는 본 적이 있다.

 

[케스]는 배리 하인즈의 소설 『케스 - 매와 소년』을 영화화한 것으로, 노동계급 아동이 육체 노동으로 살아가도록 길이 드는 삶을 보여주는 영화다. (129쪽)

 

영국 요크셔 지방의 공업지대 반즐리에 사는 소년 빌리는 열 다섯 살인데, 집에서는 이복형 주드에게, 학교에서는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폭력과 따돌림을 당하며 희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하루하루를 견디고 살아간다. 그러다가 우연히 매를 만나게 되는데.....

 

[빌리 엘리어트]는 발레리노를 꿈꾸는 소년 빌리 엘리어트의 성장기이자 성공담이다.

(94-95쪽)

 

안톤 체호프의 작품을 토대로 하여

켄이 1973년에 만든 드라마 [불행]은 안톤 체호프의 단편 소설 <불행>과 <사냥꾼>을 합쳐서 만든 드라마다. (111쪽)

 

[나, 다니엘 블레이크]

 

평범한 영국의 보통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들이 사고와 질병으로 일하지 못하게 되면서 겪는 사회적 추락을 다룬 것으로 정부의 무능한 복지제도를 비판했다. (75쪽)

 

[미안해요, 리키]

 

주인공은 리키, 택배 노동자다.

택배 회사는 리키에게 개인사업자로 게약을 체결하자고 한다. 그게 소위 긱 경제다.

또한 리키의 아내는 노약자들을 방문해서 돌보는 요양보호사다. 그러나 제로 아워 계약을 맺은 탓에 시간외 수당을 전혀 받지 못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10년 후 세계사 두 번째 미래』(구정은, 이지선 공저)에서 긱 경제와 제로 아워 노동에 관해 읽은 적이 있어서, 그것이 어떻게 노동자의 삶을 옭아매는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긱 경제 (gig economy) :

일자리가 아닌 일감을 중심으로 필요에 따라 계약을 하고 일하는 경제 모델, (18쪽)

긱 경제는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개인의 취향에 맞춘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점 때문에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만큼의 노동력을 사용하면서 고정비용을 줄일 수 있고, 노동자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노동을 할 수 있고, 여러 일감을 소화하는 N 잡이 가능하다. (20쪽)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제로 아워 노동 :

시간을 정하지 않고 아무 때고 노동자를 부를 수 있게 된다. (40쪽)

 

다시, 이 책은 -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특히 켄 로치의 영화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기에 그는 영국사회에서 비주류다.

그가 만든 작품은 그래서 방영되지 못하거나, 상영이 늦춰지기 일수다.

 

또한 발표된 다음에는 당연히 주류로부터 각종 비난이 따른다.

그래도 사회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비판하는 ‘사회의식 영화’는 현실에 매몰된 평범한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힘이 있다.

 

그런 사회의식영화의 개념은 이렇다.

사회적인 이슈를 전면화하고 조명하는 영화,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내세워 세태를 비판하거나 불의를 고발하고, 궁극적으로 그것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357쪽)

 

그런 영화를 만든 영국의 감독, 당연히 비주류에 속한다. 그러나 목소리 죽지 않고, 쩌렁쩌렁하게 높이고 있다. 그 이름 켄 로치. 알게 되어 반가운 사람이다.

 

이 책 읽어, 매우 기쁘다. 그런 사람 켄 로치 알게 되어 무척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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