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죽음
제임스 에이지 지음, 문희경 옮김 / 테오리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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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가는 길

 

아버지의 죽음

 

아버지, 이름은 제이, 그가 죽었다. 그의 죽음은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어찌 보면 어느 가족에게나 흔히 있는 일이다. 가족 중 누군가는 언젠가 죽게 마련이니까, 일반적으로 보면 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어느 한 가정에게 그 일은 특별한 일이다.

특히 가장인 아버지의 죽음은 가정의 구성원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책의 저자, 제임스 에이지는 그 의미를 끈질기게 파고든다.

왜 그랬을까?

이 소설은 그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 바로 거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가 겪었던 아버지의 죽음, 그 의미를 가슴에 품고 있다가 그 의미를 천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집으로 가는 길

 

이 책 말미에 실린 <작품 소개>를 보니, 이 책은 저자인 제임스 에이지의 유작인데 출판 이듬해인 1958년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집으로 가는 길 All the Way Home>이라는 제목으로 영화와 연극으로도 각색되어 무대와 스크린에 올려지기도 하였다.(441)

 

이 책이 영화로 되어서 <집으로 가는 길>이 되었다하니, 중국 영화 <집으로 가는 길 The Road Home>이 떠올랐다. 장쯔이 주연의 영화.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듣고 집으로 향하는 주인공. 그 장례과정에서 아버지를 회상하는 영화이다. 그래서 장쯔이의 영화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이야기가 아름답게 다뤄지고 있다.

 

그 영화에서 이란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고, 그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표현한 공간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또한 중국 전통장례에서의 길은 '죽은 자가 집으로 오는 길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의미라고 한다장쯔지 주연의 영화에서 길은 그런 의미인데, 이 책 <가족의 죽음>을 영화화하면서 왜 을 운운했을까?

 

이 책 1장에서 주인공인 루퍼스와 아빠가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극장에서 영화를 다 보고 나올 때, ‘날이 완전히 저물었으나 시간은 아직 일렀다’(13)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은 술집에 들른다. 그리고 다시 거기에서 나와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아주 서정적으로 묘사된다.

 

이 책의 저자는 왜 그 장면을 맨 처음 도입부에 배치하였을까?

그날, 그렇게 같이 돌아온 바로 그날, 아버지는 잠자는 아들을 두고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아버지가 보이지않는 다음날 아침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튿날 아침에 엄마가 아침 식사 자리에 아빠가 없는 이유를 설명해 줄 즈음에는 간밤의 말소리와 소음은 까맣게 잊은 터라, 긴 세월이 흐른 뒤 그 소리가 기억났을 때에는 자기가 지어낸 게 아니라는 확신이 전혀 들지 않았다.”(23)

 

그 소리란, 아빠가 잰 걸음으로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살그머니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 아빠는 그 소리를 뒤로한 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아빠랑 같이 집에 오는 길, 아마 그게 아빠와의 마지막 걸음이었는지라, 영화의 제목을 <집으로 가는 길>로 했을 것 같다.

 

그러니 장쯔지 주연의 영화와는 같은 제목에 다른 내용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이 모티브가 된다는 점은 동일하다.

 

가족의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

 

그(아버지)의 죽음을 듣고 모여든 가족들.

고모인 한나, 어머니 메리, 그리고 아이들 루퍼스, 캐서린은 각각의 모습으로 아버지, 남편의 죽음을 맞이한다.

 

어머니인 메리는 독실한 기독교인, 그러나 남편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다. 죽음이 뭔지 아직 모르는 아이 캐서린은 아빠가 집에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저자의 분신인 루퍼스는 아빠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 아픔을 묘사하기 위해 소설 첫머리에 아빠와 함께 돌아오던 그 날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집으로 가는 길

 

이 소설은 실상 351쪽에서 끝난다. 그 이후는 이전의 이야기로 가외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삼촌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이 소설의 실질적인 끝 장면인데, 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삼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잠시 후 이제 집에 갈 시간이구나라고 말했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둘 다 말이 없었다,>(351)

 

그런데 실상 이 장면은 삼촌 대신 그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그 의 반복이다. 따라서 저자는 다시 한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통해 아버지를 추억하는 것이다.

 

아버지 생전에 함께 돌아오던 장면, 그 장면에서 저자는 아버지와의 시간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둘은 같이 일어섰다. 그 뒤로 집으로 가는 내내 둘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모자도 쓰지 않았다.>(23)

 

그러니 삼촌과 집에 돌아오면서도, 실상은 아버지를 추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버지의 죽음은 저자에게 '늘' 그렇게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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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지 이펙트 - 페이스 투 페이스-접속하지 말고 접촉하라
수전 핀커 지음, 우진하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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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빌리지 이펙트란?

 

빌리지 이펙트? 그 말은 어떤 의미일까?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는 상호작용이 가져다주는 장기간의 영향을 말하는 것이다. (26)

 

그 실제적인 예가 바로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섬이다.

저자는 사르데냐의 장수 현상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반니 페스 박사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그곳의 장수 비결이 바로 일상생활에서의 가족, 이웃들과의 잦은 접촉이라고 밝히고 있다. (25, 77쪽 이하)

 

이 책은?

 

이 책의 저자 수전 핀커는 사회신경과학이라는 관점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나가고 있다.

 

이런 질문 해 본 적이 있는지?

아이가 성장하며 학습할 때, 어른이 사랑에 빠질 때, 직업상 중요한 거래를 할 때, 그리고 나이를 먹어갈 때 얼굴을 마주하는 상호교류는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까?”(40)

 

그래서 이 책은 우리가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느라 잊고 있었던 사회적 접촉이나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소위 흔히 말하는 face to face 즉 대면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에는 저자는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실험결과를 토대로 하여 그의 이론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 읽는 동안 그의 논리는 물론, 우리가 직접 살고 있는 주변 상황을 살펴볼 때에 그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의외의 실험 결과들

 

여기 공개된 자료들을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접해 왔던 내용들과 사뭇 다른 결과들이 많이 보인다. 어찌보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외로움을 느끼게 되면 몸속의 모든 세포에 고독이라는 표시가 남는다고 한다.> (57)

 

<얼굴과 얼굴을 직접 맞대는 사회적 접촉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신체의 면역력을 강화시켜준다고 한다.> (46)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곧 신체를 치유하는 것이라는 사상이 널리 퍼졌고 여러 시범적인 연구를 통해 이런 심리요법이 암 환자의 생존율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그렇지만 이 후 시행된 더 정확한 연구에서 실제로 밝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60)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관계의 법칙

 

그래서 그의 논리에 설득된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하면 그런 빌리지 이펙트를 경험하며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방법을 바라게 된다.

 

저자는 그런 우리의 욕구에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시한다.

 

 

1. 이웃과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라.

2. 서로의 사회적 감정을 나누는 관계를 만들어라.

3. 다양한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라.

4. 자신의 환경에 맞는 관계를 맺어라.

5. 아이들에게 상호 교류가 왜 중요한지 일깨워줘라.

6. 혼자인 시간을 줄이고 의미 있는 접촉을 늘려가라.

 

기타 유익한, 음미해 볼만한 정보들

 

그런 실제적인 방법도 바람직한 내용이지만, 다음과 같은 것들은 우리가 알아두어서 좋을 정보로 손색이 없는 것들이다.

 

<미국 전역에 걸쳐 7년여 동안 약 9만 명의 여성을 연구한 결과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종교행사에 참석하는 경우 사망률이 20퍼센트나 줄어들었다고 한다.>(117)

 

<나이 든 여성 3,000명을 조사한 결과 종교 활동으로 치매가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117)

 

<대부분의 심리학자는 종교가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주로 사회적인 측면에 있다는데 동의한다.> (117)

 

<계산대 없이 손님이 알아서 지불하는 카페에 사람의 눈을 그려 놓기만 해도 정직하게 찻값을 내는 사람이 세 배나 늘었다고 한다.> (119)

 

<사람은 고립되면 너무나 쉽게 인지능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나이가 어릴수록 그런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160)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은 잘 못된 말이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서문에서 저자는 사르트르의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해보겠다고 했는데, 저자는 그 일을 훌륭하게 해냈다.

 

그래서 이 책은 친밀한 접촉이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411) 는 저자의 말에 백퍼센트 공감이 된다.

 

결론하여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 그런 욕구를 과연 나는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충족시키고 있었는가? 이 책 읽으면서 그런 것 생각해 보는 시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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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 - 낯가림 심한 개그맨의 우왕좌왕 사회 적응기
와카바야시 마사야스 지음, 전경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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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대로 철학하는 개그맨, 만나다

 

이 책은 낯가림 심한 개그맨의 우왕좌왕 사회 적응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이다.

그러니까 낯가림 심한 사람에게 일단 어필하는 책이라 하겠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혹시 이 책을 읽으면 저 사람처럼 낯가림에서 벗어날 수 있을거야라는 은근히 기대를 하고 읽게 될 것 같다.

 

이 책의 저자 와카바야시는 개그맨 일본에서는 뭐라 부르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배우도 아니고 가수도 아닌, 만담 같은 것을 하니까 개그맨 정도? - 또는 예능인이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이다. 대학 졸업 후 몇 년에 걸쳐 무명 생활을 하다가 M-1 그랑프리에 2위로 입상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인기인의 반열에 들어섰다. 그런 그가 방송을 하면서 겪은 일을 기록하여 일본의 월간지 <다빈치>에 연재하였던 글이다.

 

매력있는 글솜씨, 내용

 

이 책은 그래서 상당히 쉽게 읽힌다. 내용은 어떻게 보면 신변잡기 같기도 한데, 읽어가는 중에 점점 그의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예컨대, ‘말을 골라서 하자는 말로 시작되는 글을 보면 무언가 느껴진다.

화를 당하고 나서 말조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면서, 직설적인 말을 부드럽게 바꾸는 작업을 하였다는데, 그 내용이 우리들도 따라해야 할 것 같다.

 

맛없다 독특한 맛

조잡하다 취향이 독특하다.

누가 그런 걸 하나 최선을 다하겠지만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개똥같은 놈 한 방이 있는 분이군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역시 말로 인하여 화를 당해본지라, 그의 말에 공감이 되었다. 어디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나오면서 맛이 없다고 한다면 어떨까? 아마 식당 주인은 기분이 퍽 상할 것이다. 그렇다고 맛없는 것을 맛있다 할 수도 없으니, 그럴 때 저자가 생각해 낸 것처럼 독특한 맛이군요라고 말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철학자 코미디언의 졸업논문.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책이 다 끝나가는 무렵, '사회인 대학교 졸업논문'이라는 챕터에 도착했다. 졸업논문? 무슨 논문?

그때까지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무슨 논문씩이나?’ 그렇게 이름붙일만한 내용이 있으려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아마 심드렁하게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괄목상대하고 읽어야 할 부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만원 전철을 타고 다니는) 어른들은, 당시 내 눈에는 별로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맨 처음 사회라는 것을 의식한 순간인지 모른다.”(221)

 

그 글을 읽는 순간, 가슴에 어떤 울림이 왔다. 이 사람은 삶을 구체적으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전율을 느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사회라는 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살아왔는가? 아니 '어떻게 인식'은 차치하고 그러한 인식 자체를 하고 살았는가? 하는 뒤늦은 후회가 일었다. 그저 뜬 구름 잡는, 수사학적인 사회를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그렇게 그는 현실을 직시하는 나날’(222)을 살아가고 있었다.

 

행복해지기 위해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또 이런 말을 들어보자. 어느 철학자의 입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성찰이다.

<‘사회는 일정한 공헌을 하면 일정한 은혜를 주는 장소였다. 그것을 시장이라든지 자본주의라든지 경제라든지 그런 이름으로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223)

 

<초등학교 6학년 때, 곤경에 처하거나 아이디어를 낼 때.........행복해지기 위해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라고 말해 주었더라면 나는 그 길을 따라 쭉 걸었을지도 모른다.>(225)

 

, ‘행복해지기 위해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라는 문장에 밑줄을 죽 그었다.

아마 요즈음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감명깊게 읽은 문장을 말하라면, 나는 이 문장을 서슴없이 꼽을 것이다.

 

아니 또 있다, 그런 문장이 또 있다.

<인간이 사회에 참여하려면 결과가 필요하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결과에는 즉효성이 있다.

그러나 결과는 가치가 순식간에 변한다.

내 마음을 뒤져보니, 손에 잡히는 것은 늘 과정이었다.

완벽하게는 못했지만 내 나름대로는 해냈구나. 그런 가단한 감상만은 늘 가치가 내려가지 않고 가슴에 남아있는 것이다 .

결과는 그러고 나서 늘 남보다 ....뒤늦게 찾아왔다.>(227쪽)

 

이런 철학자 만나봤나? 무대 위의 철학자...만담하는 철학자. 누구보다 철학자 다운 철학자, 말로 하는 철학자가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는 철학자.

그런 철학자를 나는 이 책을 통해 만났다, 그 이름, 와카바야시 마사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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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엇인가 - 왜 지금 사랑이 중요한가
주창윤 지음 / 마음의숲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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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바다에 빠져봅시다.

 

사랑이 무어냐고?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답하겠어요.”

나훈아의 노래, 가사중 일부이다.

 

그 가사처럼 사랑에 대하여 아주 명확하고 간단하게 정의해 놓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간결함은 높이 사줄 수 있으나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완벽한 대답은 분명 아니다.

그럼, 사랑은 무엇일까?

 

이 책의 제목이 그래서 <사랑이란 무엇인가>이다. 사랑에 대해 모든 것을 알려주마 하는 자세로 이 책은 거침없이 사랑을 묻고 탐구하고 정리해 놓는다.

 

읽다보면 , 사랑이 이런거구나하며 무릎을 치기도 하며, ‘, 그런 거였구나하며 탄식을 하게 만드는 책. 그래서 사랑에 대해 한 수 배웠다.

 

사랑에 관한 모든 것이 여기 있다.

 

지금껏 사랑에 대해 알아오고, 하기도 했고, 말하기도 했다.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도 여러권 그야말로 수레 하나를 채울만큼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는 손 들었다. 그런 책을 모두 합해 놓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구? 사랑에 대해 누가 이런 말을 했더라, 누가 이렇게 사랑했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모두 등장하는 것 같다. 사랑에 관한 문학작품, 열을 올리며 이야기 했던 이야기들, 보면서 눈물 흘리던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 여기 모두 있다. 그래서 색인이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을 예로 들어 사랑을 발견하는 이야기부터, 소크라테스, 그리고 21세기 디지털사랑까지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연구를 한 저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다.

 

왜 지금 사랑이 중요한가?

 

저자는 사랑을 이루는 핵심요소는 열정과 낭만이지만 지금은 인정욕구와 불안감이라는 중요한 요인이 추가된다고 말한다.

 

사랑의 기능이 거기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고 받으면서, 인정욕구를 충족시키고,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 사랑은 그렇게 사람을 구원한다.

 

<사랑은 나와 너 에 각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사이에 존재한다. 사랑이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은 함께 마음을 나누려는 시도 속에 사랑이 형성된다는 뜻이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47)

 

그래서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인 인간에게 사랑은 필수불가결한 감정인 것이다.

 

사랑의 바다에 빠져봅시다.

 

이 책은 마치 사랑의 바다같다. 다른 사람들이 지금까지 사랑에 관해서 해 놓은 모든 설명, 이론, 생각들이 사랑의 강이라면, 이 책은 그러한 것을 모두 품고 있는 바다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만큼, 사랑에 대하여는 빠짐없이, 흐트러짐 없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잘 해 놓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책을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에 대한 해답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사랑이야말로 그것이 남녀간의 사랑이든, 아니든 심리적 안정감을 잃고 홀로 남겨져 있다는 생각에 잠겨 외로운 시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을 구원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선물이기 때문에 사랑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사랑은 실존적 불안에 대한 가장 완벽한 처방이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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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이덕일 지음 / 만권당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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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제대로, 확실하게 알아봅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있었나우리 조상들의 역사는 어떤 것이었나,를 우리는 배운다. 역사책을 통해서, 그리고 역사학자를 통해서.

그런데 우리가 배우고 있는 역사가 잘 못된 것이라면?

그리고 그러한 잘못이 비단 우리 세대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실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러한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우리는 해본 적이 있는가?

아니, 해본 적이 없다. ? 역사는 역사학자들이 알아서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그렇다. 특히나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그 나라들과의 관계에 있어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다.

 

역사전쟁, 곧 영토분쟁

 

그런데 이 책에 의하면, 지금 한창 전쟁중이라 한다. 역사전쟁이 지금 한창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 동아시아에는 영토분쟁이 한창이다. 동아시아 영토분쟁은 곧 역사분쟁이다. 대한민국은 중국 및 일본과 역사분쟁을 겪고 있다.”(370)

 

그 전쟁의 양상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일본은 우리나라 영토인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과거에 임나일본부를 통해서 고대일본이 직접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어떤가?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북한의 지역 전체가 한때 자신들의 영토였다고 주장하며, 그 역사조차도 자신들의 역사라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주장하는 일본과 중국과 우리나라는 역사분쟁, 곧 영토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매국사관 이적행위자들

 

그런데 이 책의 주장에 의하면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다름 아니라, 그러한 역사분쟁이 있으면 당연히 우리 역사, 우리 영토를 수호하기 위하여 우리나라 정부는 물론이고 학자들도 거기에 대응해야 하는데, 뜻밖에 아군이 이적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분쟁의 대상이 되는 역사와 영토에 대해 적군에게 유리한 주장을 계속하고 있는 학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소위 식민사관을 가진 학자들이 바로 그러한 이적행위를 하고 있는 자들이다 .

그런데 저자 이덕일은 그런 식민사관은 과거 일제가 한국을 영구 지배할 목적으로 창작한 역사관, 즉 조선총독부의 관점으로 한국사를 보는 조선총독부 사관이므로, 해방 후에도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그런 조선총독부 사관을 추종한다면 식민사관이 아니라 매국사관으로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이다.

 

매국사관 학자들의 주장

 

그들, 매국사관을 가진 학자들의 주장은 위에 언급한 일본과 중국의 주장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아니 소이(小異)는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그 주장을 다시 거론하기에는 지면이 아깝다.

다만 그렇게 주장하는 그들의 학문적 태도만 언급하기로 하자.

이 책의 저자 이덕일이 주장하는, 가장 애타게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 점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매국사학에는 사실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은 없고 주장만 있다는 것이다. 역사학이라는 것은 1차 사료(史料)를 해석하는 학문이므로, 1 차 해석에 대한 해석이 주가 되는데, 그들의 학문적 태도는 그런 사료와 사료에 기초를 둔 해석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이 없으니, 말장난만 난무한다.

예를 들면, 이덕일이 동북아역사지도의 문제점을 거론하자, 매국사관 학자중 한명인 임기환은 이렇게 답변한다.

“ .......이러한 이덕일 소장님의 주장에 대하여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80)

 

이덕일의 주장에 대하여 객관적인 사료를 가지고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동의할 수 없다는 의지만 밝히는 답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것도 역시 말장난에 불과한 것들이다.

“ ......한국 고대사 역사지리 전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이와 관련한 자문회의를 13차 진행했습니다.”(80)

 

역시 객관적인 자료제시가 아니라, 어떻게 결론을 내렸나를 말하고 있는데, 그 과정이 떼거리로 모여 회의를 했다는 것이다. (81)

 

게다가 상식적이지도 못하다. 예를 들면 고구려의 국경선을 세로로 그려 놓았는데, 고대 국경은 산이나 바다를 경계로 자연스럽게 갈라지는 상식을 깨고 산맥을 두 개나 자르고 강을세로로 자르면서 그어 놓았다는 것이다. (58)

 

매국사관 학자들의 학문적 태도에 대하여

 

역사학에 문외한인 나로서도 그러한 매국사관 학자들의 학문적 태도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대체 상식적이지 않은 것이다.

 

<역사학이란 학자들끼리 합의하는 학문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으로 치열하게 1차 사료와 다투는 학문이라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이들(매국사관 학자)에게 학문은 다수결이다. 그것도 자신들과 다른 관점을 가진 역사학자는 모두 배제한 채 자기들끼리 모여서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역사학이다.>(65)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당부한다.

이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은 이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이 문제에 정직하게 마주해야 한다. 한국사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다.”(381)

 

모름지기 국민이라면 자기 나라 역사가 어떻다는 것을 제대로, 그리고 확실하게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무를 가진 우리들에게 아주 안성맞춤인 역사교과서가 바로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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