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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죽음
제임스 에이지 지음, 문희경 옮김 / 테오리아 / 2015년 8월
평점 :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가는
길
아버지의
죽음
아버지,
이름은
제이,
그가
죽었다.
그의
죽음은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어찌 보면 어느 가족에게나 흔히
있는 일이다.
가족
중 누군가는 언젠가 죽게 마련이니까,
일반적으로
보면 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어느
한 가정’에게
그 일은 특별한 일이다.
특히 가장인 아버지의 죽음은 가정의
구성원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책의
저자,
제임스
에이지는 그 의미를 끈질기게 파고든다.
왜
그랬을까?
이
소설은 그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
바로
거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가 겪었던 아버지의
죽음,
그
의미를 가슴에 품고 있다가 그 의미를 천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집으로 가는 길
이 책 말미에 실린
<작품
소개>를
보니,
이
책은 저자인 제임스 에이지의 유작인데 출판 이듬해인 1958년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집으로
가는 길 All
the Way Home>이라는
제목으로 영화와 연극으로도 각색되어 무대와 스크린에 올려지기도 하였다.(441쪽)
이 책이 영화로 되어서
<집으로
가는 길>이
되었다하니,
중국
영화 <집으로
가는 길 The
Road Home>이
떠올랐다.
장쯔이
주연의 영화.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듣고 집으로
향하는 주인공. 그
장례과정에서 아버지를 회상하는 영화이다.
그래서
장쯔이의 영화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이야기가 아름답게 다뤄지고 있다.
그 영화에서
‘길’이란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고,
그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표현한 공간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또한
중국 전통장례에서의 길은 '죽은
자가 집으로 오는 길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장쯔지
주연의 영화에서 길은 그런 의미인데,
이
책 <가족의
죽음>을
영화화하면서 왜 ‘길’을
운운했을까?
이 책
1장에서
주인공인 루퍼스와 아빠가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극장에서
영화를 다 보고 나올 때,
‘날이
완전히 저물었으나 시간은 아직 일렀다’(13쪽)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은 술집에 들른다.
그리고
다시 거기에서 나와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아주 서정적으로 묘사된다.
이 책의 저자는 왜 그 장면을 맨
처음 도입부에 배치하였을까?
그날,
그렇게
같이 돌아온 바로 그날,
아버지는
잠자는 아들을 두고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아버지가 보이지않는 다음날 아침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튿날
아침에 엄마가 아침 식사 자리에 아빠가 없는 이유를 설명해 줄 즈음에는 간밤의 말소리와 소음은 까맣게 잊은 터라,
긴
세월이 흐른 뒤 그 소리가 기억났을 때에는 자기가 지어낸 게 아니라는 확신이 전혀 들지 않았다.”(23쪽)
그
소리란,
아빠가
“잰
걸음으로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살그머니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다.
아빠는
그 소리를 뒤로한 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아빠랑
같이 집에 오는 길,
아마
그게 아빠와의 마지막 걸음이었는지라,
영화의
제목을 <집으로
가는 길>로
했을 것 같다.
그러니 장쯔지 주연의 영화와는 같은
제목에 다른 내용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이 모티브가 된다는 점은 동일하다.
가족의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
그(아버지)의 죽음을 듣고 모여든
가족들.
고모인
한나,
어머니
메리,
그리고
아이들 루퍼스,
캐서린은
각각의 모습으로 아버지,
남편의
죽음을 맞이한다.
어머니인 메리는 독실한
기독교인,
그러나
남편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다.
죽음이
뭔지 아직 모르는 아이 캐서린은 아빠가 집에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저자의
분신인 루퍼스는 아빠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 아픔을 묘사하기 위해 소설 첫머리에 아빠와 함께 돌아오던 그 날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집으로 가는
길”
이 소설은 실상
351쪽에서
끝난다.
그
이후는 ‘이전의
이야기’로
가외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삼촌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이 소설의 실질적인 끝 장면인데,
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삼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잠시
후 “이제
집에 갈 시간이구나”라고
말했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둘 다 말이 없었다,>(351쪽)
그런데 실상 이 장면은 삼촌 대신
그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그 ‘길’의
반복이다.
따라서
저자는 다시 한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통해 아버지를 추억하는 것이다.
아버지 생전에 함께 돌아오던 장면,
그 장면에서 저자는 아버지와의 시간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둘은
같이 일어섰다.
그
뒤로 집으로 가는 내내 둘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모자도 쓰지 않았다.>(23쪽)
그러니 삼촌과 집에 돌아오면서도,
실상은 아버지를 추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버지의 죽음은 저자에게 '늘' 그렇게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