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변의 역사 - 확장판, 쿠데타·혁명에 의한 ‘정치상 대변동’
최경식 지음 / 갈라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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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변의 역사 (확장판

 

정변이라 함은?

(政變) 혁명이나 쿠데타 따위의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생긴 정치상의 큰 변동.

 

정변은 단순한 정치적 변혁을 말하는 게 아니라. 비합법적인 수단을 통하여 정치상 큰 변동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혁명이나 쿠데타 같은 경우가 거기에 해당하는 적절한 예이다.

그런데 저자는 거기에 더하여, 큰 틀에서 봤을 때 정변에 해당된다고 판단되는 사건들도 다루고 있다. 해서 정변 개념을 광의로 적용한 여러 사건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된다. (9)

 

이 책에는 어떤 정변이 들어있는가?

우리나라 역사상 일어난 정변 20가지 사건,  그리고 외국의 사례로, 중국의 사건 3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정변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이 많이 있었는데, 저자는 그중 20개를 골라, 성격을 분석한 다음에 4개의 카테고리로 묶어 살펴보고 있다.

 

정치상 대변동

지배체제 변혁

극적인 상승과 몰락

고난과 좌절

 

첫째, 이렇게 분류를 한 사건을 읽으니, 그 사건의 실체가 더욱 확실하게 떠오른다.

 

<극적인 상승과 몰락>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은 무엇일까?


바로 갑신정변이다. 

<갑신정변_ 급진개화를 꿈꿨던 금수저 청년들의 3일 천하> (192- 202)

 

정말 극적이다. 일이 시작되었다가 뭔가 이루어질 것 같은 기대를 보여주더니 그만 단 사흘만에 급전직하 몰락하고 말았으니, 이를 일컬어 삼일 천하라 부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 뒤로 ‘3일 천하라는 말이 관용어처럼 쓰이게 된 것도 이 사건에서 비롯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위키백과에는 이런 항목으로 등장한다.

 

삼일천하

삼일천하(三日天下)3일 동안 정권을 잡았다는 뜻으로 다음을 가리킨다.

김옥균의 갑신정변에 대한 별칭.

 

사건의 추이를 살펴보자,

 

1884124, 우정국 개국 축하연에서 개화당 인사들 거사.

1884125, 국가 제도를 전면적으로 바꾸는 혁신 정강 14개조공포

1884126, 청나라 군사 1500명이 궁궐로 공격해 들어옴.

개화당 인사들, 속절없이 죽거나 도망쳤다.

 

속절없이 죽거나 도망쳤다,는 표현은 이 책에서 가져온 것이다. (202)

그렇게 정말 3일만에 무너진 갑신정변, 허무하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너무 준비가 없었다고 해야 할지, 안타까운 일이다,

 

둘째, simple is best 라는 말이 이 책에 딱 맞는 표현이다.

 

역사를 아는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고 함석헌 선생은 말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 역사를 우리가 알아야지 다른 나라 사람더러 알아주기를 바랄까? 그런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자. 우리 역사 우리가 챙겨서 읽고, 알고, 그 안에서 깨달을 것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게 그리 쉬운 일일까?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압축적이고 간결한 문장으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20가지 사건을 전달하고 있다. 각 사건마다 사건의 전후 과정을 매우 생동감 있게 서술하고 있어, 읽는 재미와 더불어 역사의 재미도 느끼게 해준다.

 

셋째, 이 책에서 꼭 읽고 새겨야 할 부분으로, 다음 세 가지를 꼽고 싶다.

 

<5.16 쿠데타_ 한국 현대사의 중대 변곡점>

<10.26 사태_ 박정희 장기집권의 종식>

<12.12 쿠데타_ 어둠이 내려앉다>

 

이 사건들에 대한 실체 파악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아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또 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사건의 내용과 평가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것 하나는 확실하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한다는 것.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 우리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데. 그래서 이 책은 그런 사건들을 소환하여 우리들 앞에 내어놓은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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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아이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김희진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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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아이

 

이건 소설이다. 소설이 분명하다.

이 책 서두에 나온다. 독자에게 드리는 주의사항이 큼지막하게 씌여진 글로 나온다.

 

이 소설의 일부분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저자는 완벽히 허구적인 줄거리에 따라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하는 걸 중시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실화같은 기분이 든다. 정말로 한편의 다큐를 보는 것 같다. 주인공을 인터뷰하여 그의 진솔한 고백을 토대로 한, 다큐멘터리 같다.

그 정도로 사실적이다, 정말 그럴법하다.

 

이야기의 큰 줄거리는 이것이다.


1999년에 그 유명한 해리 포터 역을 맡을 소년을 캐스팅하는 과정에서, 최종 후보로 두 명이 남았다. 한 명은 낙점받은 대니얼 래드클리프, 그리고 안타깝게 뽑히지 못한 다른 한 명의 소년 마틴 힐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한 명은 해리 포터 주연으로 살아가고, 다른 한 명은 , 해리 포터가 될뻔한 애로 살아가게 된다.

 

이런 식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나쁜 쪽으로 곤두박질친다. 언제나 하잘것없는 게 차이를 낳는다. (89)

 

하잘것없는 차이, 둘 중에 한 명만 차지하는 자리이니, 결국 누군가는 떨어지는 것이 세상 이치라고 말할 것이지만, 정작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인생이 바뀌는 것이다.

 

될뻔한 애는 해리 포터가 소설로, 또는 영화로 등장할 때마다 죽도록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마주하게 된다. 해리 포터가 서점에 쌓인 것을 볼 때마다, 영화 포스터가 길가에 붙은 것을 볼 때마다, 그리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해리 포터’, ‘해리 포터’, 환호하는 소리에 그의 인생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그런 것을 보고 싶지 않아, 듣고 싶지 않아, 그는 무작정 어딘가로 숨어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인생이 있다면, 어떻게 살아갔을까?

저절로 상상이 되는 인생이다. 평생을 두고 두고 귀에 쟁쟁거리는 해리 포터가 얼마나 미웠을 것인가? 그런 인생, 과연 어떻게 살아낼지, 저자는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두 번째 아이를 세상에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아이를 숨어들어간 동굴에서 세상으로 꺼집어내기 위해 또한 많은 생각을 한다. 방법을 고안해내려 애를 쓴다. 거기에 저자의 고뇌가 충분히 느껴진다.

 

그의 주변 인물들이 수차례 그런 작업을 시도한다.

그의 어머니는 정신 상담을 받도록 한다. 그러나 그 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온다.

 

그만 좀 해라기껏해야 책 한 권 갖고! 그런 일로 크리스마스를 망치다니, 쟤 진짜 짜증 나!”

그 말이야말로 마틴을 가장 아프게 했다.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그의 괴로움을 변덕으로 치부하는 것. 그는 개인적인 비극으로 누구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며 거의 항상, 혼자 고통스러워하는데 말이다. (135)

 

드디어 그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낸다. 경비원, 루브르 박물관의 경비원으로 들어간다. 거기는 해리 포터가 없는 세상의 이상향이었다. (182)

 

그러나 그 곳에서 경비원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

저자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그를 온전한 세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더한다.

 

또한 그 자신도 그걸 이겨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해리 포터와 직접 마주하기 위해 서점에 가서 책을 사오기도 한다. (193)

또한 호그와트를 똑같이 재현해 놓았다는 성에 가보기도 한다. (213)

 

그러나 구원은 다른 데에서 왔다. 드디어 그는 구원받았다.

 

다시, 이 책은?

 

이 소설의 가치는 바로 그런 아이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점에 있다.

2명이 최종 캐스팅 후보에 올랐다면 당연히 그중 한 명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인생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라고 누군가 한 번쯤 어떤가 하는 안부를 물어볼만 하지 않는가?

 

혹시라도 그 아이는 자기 인생을 도둑맞은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178)

과연 그런 고통을 잘 견디고 인생 제대로 사는 것처럼 살고 있을까?

그런 안부를 저자는 묻고 있는 것이다.

 

정말 이 책은 소설이 아닌 것 같다. 정말이지 소설이 아닌 것 같다. 저자는 그 두 번째 아이 속에 열두번도 더 들어갔다 온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소식을 독자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독자들은 이 엄청난 상상력을 가진 저자를 따라가며 그 될뻔한 아이에게 어느새 응원하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한번 잡으면 끝이 날 때까지 붙들고 있어야 한다. 이 책에, 그리고 그 인생에게 붙들려 응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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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그리스 비극 - 그리스 극장의 위대한 이야기와 인물들
다니엘레 아리스타르코 지음, 사라 노트 그림, 김희정 옮김 / 북스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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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그리스 비극 

 

이 책에는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의 작품 9편과 희극 작가 1명의 작품 1편이 실려있다.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라 하면 다음의 세 명을 말한다. 기억해 두기 위해 여기 적어둔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그리고 여기 작품이 실린 희극 작가의 이름 역시 기억해두어야 한다.


아리스토파네스.

 

이 책에 실린 비극은 모두 9, 그리고 희극이 1편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그리스 비극은 모두 34편이다.

그러니 34편중 여기 9편이 실려있으니, 26%, 대단한 분량이다.

책 제목이 하룻밤에 읽는 비극이라고 해도 될만한 분량이다.

 

첫 번째 특징으로 이 책은 원래 희곡으로 되어 있는 비극을 모두 소설로 바꿔놓았다.

 

그러니 희곡으로 읽었던 비극을 이번에는 소설로 읽을 수 있어, 비교가 가능하다.

 

예컨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살펴보면, 확연하게 그 차이가 드러난다.

희곡에서는 오이디푸스의 발언으로 그의 마음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대사를 읽을 때에는 주의를 집중해서 읽어야함은 물론, 문맥과 행간까지 다 고려해서 읽어야 한다. 그래야 그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그런 작업을 바로 화자인 오이디푸스가 다 처리해준다. 그래서 희곡을 읽을 때보다는 쉽게 파악하면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바로 소설과 희곡의 차이점이다.

 

두 번째 특징으로, 이 책은 독자 친화적이다.

 

그리스 비극을 희곡으로 읽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낯선 그리스식 용어와 등장하는 낯선 이름, 그런 이름을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읽으려면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노력이 필요한 희곡에 비하여 소설은 설령 이름이 낯설더라도 앞 뒤 설명을 통하여 차츰 익숙해지면서 줄거리를 따라갈 수 있어, 무척 독자 친화적이다.

 

다시, 이 책은?

 

이 책을 읽고 가장 기뻤던 것 하나 적어둔다.

 

지난번에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중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가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에게 잡혀 고생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의 지리적 배경이 바로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이라는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귀향 도중에 만나 고생했던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 그 괴물과 관련된 지명이 있다. , 폴리페모스가 오디세우스를 잡기 위해 던졌던 바위들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곳이 바로 시칠리아 동부에 있는 아치레알레. (최소한의 서양 고전안계환, 33)

 

카타니아 해안선을 따라가면 아치트레차(Acitrezza)라는 작은 마을이 나오는데, 앞바다에는 거대한 바위들이 솟아나 있다. 외눈박이 괴물 폴리페모스가 던진 바위라고 한다. 그리스인들의 이주에 폭력으로 대응했던 시칠리아 원주민들의 모습이 폴리페모스 신화에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시칠리아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김상근, 40)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었다. 어떤 근거로 외눈박이 거인이 살았던 곳이 시칠리아라고 하는 것일까? 그냥 아무것이나 가져다 붙여서 신화의 고장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그런데 그런 의문이 이 책을 읽고 풀렸다.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에우리피데스의 <키클롭스>에 의하면, 오디세우스는 그 섬에

상륙한 후 실레노스를 만나 이런 대화를 나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이고 이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말해주시겠어요?”

그렇게 묻자 실레노스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이곳은 시칠리아섬의 에트나산일세. 여기엔 도시도 탑도 없다네. 평범한 인간은 살지 않아.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들이 살고 있지. 그들은 동굴에서 자고,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곤 우유를 마시고 치즈를 먹는 것뿐이라네.” (136)

 

시칠리아의 에트나산이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것, 그래서 시칠리아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 하나만 알게 되었어도 좋을만큼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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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별 독서법 -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임수현 지음 / 디페랑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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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별 독서법

 

이 책, 전체를 다 읽기도 전에 음미할 부분을 만나, 이렇게 적어본다.

다른 게 아니라, 이 책 앞부분을 읽다가 마침 내가 찾던 부분을 만나서 너무 반가워서 적어보는 것이다,

책이란 게 그래 이거야!’ 라고 읽다가 무릎을 치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데. 이 책에서 바로 그런 경험을 했기에, 이 책 리뷰의 서론인 셈 치고 적어두려고 한다.

 

요즈음 그리스 신화를 읽으면서, 거의 2000년도 더 되는, 게다가 지역도 다른 나라의 신화가 요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중이다.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에 보면 아킬레우스라는 그리스의 장수가 등장한다.

인간인 펠레우스와 여신인 테티스 사이에 탄생한 인물인데. 우리에게 아킬레스 건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인생을 살펴보면, 교육을 켄타우로스 족의 현자 케이론으로부터 교육을 받는 장면이

있다. 다음은 그의 교육에 관한 기록이다.


아킬레우스는 켄타우로스족의 현자인 케이론으로부터 교육을 받는다.

말타기, 창던지기, 활쏘기와같은 전투기술들은 물론 용맹한 성질도 배우고 음악이나 의술과

같은 모든 것을 배운다. 태어나자마자 상처입지 않는 신체로 만들어진 후, 최고의

스승으로부터 교육을 받은 아킬레우스는 그리스 최고의 영웅의 반열에 오른다.

 

그러면, 이런 아킬레우스의 교육에 관한 그리스 신화의 내용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그리스 신화는 우리에게 한낱 이야기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심하던 차에 이 책에서 이런 기록을 만났다.

 

싸움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법으로 싸우는 것과 힘으로 싸우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전자는 사람의 고유한 특성이고 후자는 짐승의 고유한 특성이지만 많은 경우 첫 번째 방식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두 번째 방식에 의존한다.

따라서 군주는 짐승의 방법과 사람의 방법을 모두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옛 작가들은 암암리에 이런 내용을 군주들에게 교육했다.

그들은 아킬레우스를 비롯한 과거의 많은 군주가 켄타우로스족인 케이론에게 맡겨졌고, 케이론이 그들을 돌보며 훈련했다고 기록했다. 절반은 짐승이요, 절반은 사람인 자를 스승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군주가 두 가지 본성을 모두 갖춰야 하며 한쪽이 없으면 나머지 한쪽도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45-46)

 

저자가 인용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일부이다,

해당 책 군주론을 찾아보니, 18<윤리와 정치>에 나온다.

 

그렇게 이 책의 도움으로 그리스 신화가 현재에도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켄타우로스 족이 물론 진짜 반인반마가 아니라, 말을 타고 다닌 경험이 없던 사람들이 말을 타고 다니는 기마병을 멀리서 보았을 때, 상체는 인간 하체는 말로 보였을 것이라는 추론도 있지만, 그 의미를 일단 마키아벨리가 말한 것처럼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군주가 갖춰야 할 덕목은 예전에 그리스 장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두 가지 본성을 모두 갖춰야 하며 한쪽이 없으면 나머지 한쪽도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가? 그런 해석에 공감이 되지 않는지?

 

그런 깨달음 알게 해준 이 책, 지금 열심히 밑줄 그어가며 읽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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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설계자
경민선 지음 / 북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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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설계자

 

평소에 사후 세계에 대하여 이런 생각해오고 있었다.

 

천국과 지옥, 종교에서 말하는 사후세계는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선행을 한 사람이 가는 천국, 그리고 악행을 가는 사람이 가는 곳이 지옥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천국과 지옥은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사람들의 상상에 그치고 마는 곳일까?

 

그런 것은 아무도 갔다온 사람이 없으니 확실하지 않다. 그러니 이런 질문 해보자.

천국 지옥의 실재 여부는 차치하고, 천국과 지옥은 과연 있어야 되는 것인가?

천국 지옥을 함께 이야기하기는 번거로우니 일단 이 책의 제목처럼 지옥 한 가지만 생각해보자.

지옥은 필요한가?’

 

그런 생각 평소에 하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저자의 말>에 내가 찾던 질문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말하길, SF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기 용이한 장르라고 한다. 다음 세 가지다.

 

첫째, 기술의 발달로 죽음마저 극복하면 유토피아 같은 세상이 열릴 것인가?

둘째, 사후 세계를 만드는 기술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결국 지옥까지 만들 것인가?

셋째, 지옥이 존재하는 세상은 정의로운 세상이 될 것인가? (263)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하여 셋째 질문에 관한 답을 시도하고 있다.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치열하게 토론하고 행동한다.

 

등장 인물 소개한다.

 

대체 현실 해결사 : 도지석, 박용섭, 홍수경, 차길영

아비츠(Avici) 게임즈 측 : 백철승, 서문담, 성태우.

 

이 소설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무척 어렵다.

대체 현실에 기반을 둔 지옥이 등장하고,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다가 목숨이 다한 후에도 자아가 소멸하지 않고 깨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상정하고 이야기가 진행이 된다. (30)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일단 사고실험(思考實驗)이라 생각하자.


, 이런 것 알기 위해 주인공들의 뒤를 따라가보자. 작가가 주인공들에게 각각 역할을 아주 잘 부여해서, 지옥이 필요하다는 측과 그게 아니라는 측으로 구별, 임무를 맡겨 놓았으니 그 뒤를 따라가면서 살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지옥은 필요하다,

 

그래서 맨 처음에는 지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측, 즉 아비츠(Avici) 게임즈 측에 한 표 주게 된다, 그 아비츠 게임즈를 운영하는 백철승의 발언을 들어보자.

 

말 그대로 살아있을 때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을, 사후에서도 받는 인공사후 세계입니다. (11)

 

신도 없고 질서도 없으면 인간이 뭘 의지해서 살아가야 할까요. 의미도 모르고 비참하게 살다 사라지는 게 너무 무서워서 만든 겁니다. 지옥 서버는, 우주에 의지가 없다면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75)

 

뇌세포의 영생이 가능한 현재에 육체가 죽었다고 처벌을 포기하는 게 정의로운 일일까요? 저희 지옥 서버는 법이 포기한 처벌의 의무를 대신 수행하려는 것입니다. (101)

 

그렇다. 수긍이 가는 발언이다.

현실에서 운영되고 있는 법제도, 사법 체계는 얼마나 허점이 많은가. 가까운 예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현세의 삶에서 극악무도한 짓을 하고도 법망을 빠져나간 무수한 범죄자들, 그들이 사후에서도 잘 지내서야 어디 정의가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지옥이 필요하다고 하는 백철승의 의견에 동의한다.

이는 소설 속 백철승과 반대편에 서있는 도지석도 마찬가지였다.

 

도지석도 처음에는 백철승의 그런 말에 열광하는 팬이었다. 악인이 처벌받는 사후 세계가 열렸다니 이제야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는 느낌이랄까,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19)

 

그런데 그랬던 그가 무언가 찜찜한 기분이 들어가던 차에, 의뢰인 한 명이 찾아와 그의 생각을 바꾸어 놓는다.

 

지옥에 있는 우리 엄마를 구해주세요.” (29)

 

그 의뢰인은 자기 엄마가 지옥에 갔는데 잘 못 갔다며 구해주기를 요청한다.

잘 못 가다니?

그럴 리가?

 

그때부터 도지석은 거대한 힘을 가진 백철승 측과 험난한 싸움을 벌이게 된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지석도 악인을 향한 심판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다. 다만 그것이 백철승을 통해, 특정 개인이나 기업을 통해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었다. 이제야 지옥 서버를 응원하는 내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불쾌감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122)

 

다시, 질문의 미로에 서서

 

결국 이 소설은 도지석 측의 승리로 끝난다.

잘 못 지옥으로 들어간 홍수경의 어머니를 구출해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그런 지옥을 만들어도 되는 것일까, 에 대한 답은 나왔다.

인간이 운영하는, 인간이 지옥행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지옥은 잘 못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아직 질문이 남았다. 지옥은 없어야 하는 것일까?

뇌세포의 영생이 가능한 현재에 육체가 죽었다고 처벌을 포기하는 게 정의로운 일일까?

 

현세에 죄악을 저지르고도 사후에도 심판받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면, 과연 정의는 구두선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그래서 이런 질문에 더 정확한 대답을 듣기 위해서도 저자가 후속편을 써주기를 기대한다.

저자는 이미 전작으로 연옥의 수리공을 펴낸 바 있으니. 다음 편으로 지옥에 관한 시리즈를 써내는 것, 가능하리라 믿는다.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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