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성장을 아우르는 SF판타지 모험] 개인적으로 SF 소설이나 영화를 그닥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대부분 인간의 욕심에 의해 이기적인 문명의 발달을 이룩한 미래 사회는 안정적이고 희망적이기 보다는 전쟁과 욕심으로 파괴되고 일그러진 모습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으로 미래를 그리게 되는 것은 우리 스스로 현재 인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기에 혹시 그렇게 될 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해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자 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너무도 암울하게 그려지기에 늘 두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대하는게 되는 것 같다. 제목보다도 작가 때문에 읽고 싶었던 책<타임 가디언>. 이미 <주몽의 알을 찾아라>에서 판타지적 요소를 사용해서 우리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었고 최근 작인 <집이 도망쳤다>에서 마치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서 판타지적 재미를 최대화 시킨 재치있는 작가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이 소설 역시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이 SF와 판타지가 결합되니 미래를 그린 작품이다. 작가에 대한 호감도가 아니면 사실 중반에서 읽기를 멈추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살짝 말하고 싶다. 너무도 복잡하게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어 있고 알수 없는 용어가 난무해서 SF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같은 사람은 중도 포기할 수도 있었다. 작품 속에 드러나는 오묘한 최신 장비들에 대해서 감탄하기 보다는 헐리우드의 영화 속에서 봄직한 것들을 다시 언급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루함에서 벗어나 책속의 긴장감에 빨려들기 시작한 것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이다. 주인공인 아라가 현실 속에서 이중인격적인 아버지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혹시 자신의 친아버지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진서를 2033년 과거 속에서 만난다. 미래에서 과거를 바꾸는 것은 어디서는 해서는 안될 일로 나오지만 이들이 꼭 바꿔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 또한 작품마다 제시된다. 아라가 과거에서 꼭 바꾸어야 하는 그것에 대한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극적 긴장감을 더하는 것이다. 과거의 아버지 최명호는 지금과 달리 더 없이 다정한 사람이지만 그를 변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아라는 있었는지도 몰랐던 다재다능한 고모 최소영이 어린 시절 행방불명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고모가 후에 성이 달라진 진서로 명호 앞에 나타나게 되고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엄마에 대한 새로우 사실까지 알게 되는 것이다. 아라가 미래에서 온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과거 속에서 잘못된 현실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은 그동안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이해와 사랑으로 뒤바뀌는 과정이었다. 작가는 아라의 변화를 통해서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됨으로 성장하는 아라, 아버지와 화해하는 아라를 그리고자 했다. 그런 과정에서 놀라운 요소로 작용하는 또 하나의 사건은 바로 거대 기업의 진실은폐이다. 이것은 미래가 아닌 현실의 독자들에게도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수리남바이러스에 걸려서 성변환이 일어났다고 알고 있었던 진서가 사실은 아라의 고모 최소영이었다. 최소영은 수리남바이러스에 걸린 것이 아니라 거대 기업 샤인스타샤가 만든 유전자변형농산물에 의해 GMO돌연변이가 된 것이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혼재되 성을 갖은 자신의 괴물 같은 모습을 감추고자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독자에게 다가선다.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유전자변형농산물이 지금은 인류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저마다 거부를 하지만 거대기업의 은폐 하나면 온 인류가 속을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가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아라가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보다 대기업의 은폐 사건과 GMO에 대해서 적절한 배치를 한 작가의 탁월한 재치에 더 감탄을 했다. 작품을 읽고나서 현재와 과거 미래에 대한 씨실과 날실을 엮으면서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과거에 대한 연구나 미래를 대비하는 모든 것의 중심은 역시 현재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서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두렵기만 하던 미래의 SF에서 벗어나 오히려 더 선명하게 현실을 보고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역시 탁월한 감각과 재치가 보이는 작가이다. 그녀의 다음 작품 역시 판타지고 갈까? 이제는 조금 다른 감각으로 그려진 작품을 만나보고자 하는 바람도 생긴다.
[모든 것을 경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은 모두 남의 이야기가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수많은 것을 책속에서 경험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다른 생을 경험하게 된다. 성인이 된 나 역시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책속에서 하지만 자라는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더 많은 부분을 타인의 삶 속에서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뻥도 적당히 치면서 말이다.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딸이 있기에 청소년기의 아이들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보면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이 작품 역시 그런 맥락에서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제목을 보면서 얼마전에 딸 아이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학기 초에 수련회에 가서 처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자면서 진실게임을 했다고 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저마다의 비장의 무기를 꺼내면서 이야기 잔치를 벌였는데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역시 이성친구 이야기란다. 이성친구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모두 저마다 있다면서 이야기를 했다는데 절반은 진실, 절반은 뻥으로 여긴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남들이 하는 경험에서 자신이 소외당했다고 느꼈을 때 아이들은 저마다의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해서 경험자의 범주에 머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갖고 있거나 갖고 있지 않은 이야기>는 그런 맥락에서 청소년들의 또 다른 경험이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과 다른 또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의 이야기. 호주 청소년들의 1년 동안의 13가지 이야기 속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녹아있다. 화자는 모두 나이지만 모두가 주인공이자 동시에 주변인이 되기도 하는 독특한 방식이 새로웠다.단지 형식의 새로움 뿐 아니라 동양권과는 다른 아이들의 가치관에 대해서도 놀라울 뿐이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적잖은 불편함을 느끼고 설마..하면서 현실에 대해서 두려움과 걱정을 동시에 느꼈으리라 본다. 사실 작품을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이런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지만 내가 경험하지 못했기에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경험이 되고 또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경험이 될 수 있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이지만 누구든지 해야 할 경험은 아니기에 소설이 주는 허구를 충분히 이해하면서 성장할 기회가 되겠구나 하는 것이다. 경험을 통해 성장하지만 모든 것을 경험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다. 소설 속의 다른 경험을 통해 올바르게 성장하길 바랄 뿐이지...
[광주민주화 운동을 다시 생각하며] 제목과 얼핏 본 이쁘장한 그림에서 할머니와 손녀의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그려지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추측이 빗나갔다. 전혀 추측하지 못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조금 당황하기도 했었다. 우리 현대사에서 아픈 역사의 한 부분으로 남아있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고 있다. 그때의 상처로 아직까지 고통받는 사람이 많이 있고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이 처벌받지 않은 현실에서 이런 문제를 접하게 되니 여러 감정이 앞선다. 그러고보니 [꽃잎]이라는 영화 역시 아름다운 제목 속에 아픈 광주의 일을 다루었던 기억이 난다. 광주의 일을 겪지 못한 아이들에게, 그리고 6.25를 겪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자신과 너무도 멀게 느껴지는 역사적인 한 사건으로 생각된다. 어떤 일이 있었구나 정도로만 알지 지금 그 때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한다거나 통일이 중요하다는 필요성을 느끼는 아이들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 현실적인 문제에 가장 민감해지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아이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은 당연할 지 모른다. 작가도 그런 점을 감안했기에 손녀인 나빛이 엄마와 외할머니의 시대적 아픔을 이해하기 위한 장치로 판타지적 요소를 사용한 것 같다. 엄마를 따라 외할머니 간병을 나선 나빛에게 외할머니나 엄마의 고통이 무엇인지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처럼 나와 상관없는 상황에 대해서 조금 짜증이 날 뿐이지. 그렇지만 곳간의 불빛안으로 사라져간 외할머니를 따라 5.18이라는 끔찍한 상황을 경험하고 그 가운데 엄마와 쌍둥이인 이모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한 또 다른 아픔을 느끼게 된다. 큰 사건은 지나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잊혀지지 않은 큰 상처로 남는다. 지금 광주는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그 속에 수많은 고통이 묻혀져 있는 것이다. 외할머니와 엄마의 고통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독특한 또 하나의 인물이 당시의 광주를 경험한 군인이었던 고물장수이다. 군인이라는 신분은 명령에 복종해야만 하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원치 않은 학살에 가담했고 이들 역시 역사의 피해자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한다. 고통을 받은 사람과 고통을 준 직접적인 인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명령하고 진두지휘했던 수뇌부들임을 어찌 모르겠는가? 지금 그들은 마땅한 역사의 심판을 받았는가를 물으면 누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지나간 역사라지만 지금 그 역사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우린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앞으로의 역사에서 다시는 이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좀더 신중하고 현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그런 생각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아쉬웠던 점은 내용과는 영 딴판으로 그려진 그림이 거슬렸다. 좀더 맥아리 있는 삽화가 실렸으면 작품에 대한 감동이 더 살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읽히는 책은 나름의 이유가 분명 있다. 안네의 읽기가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손에 들리는 이유가 뭘까? 솔직히 이번에 안네의 읽기를 읽으면서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많이 했기에 이런 물음을 던져볼 수 있었다. 처음 안네의 일기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 때 독후감 숙제를 하면서가 아니었다 싶다. 그때는 안네의 감성에 빠지기 보다는 보편적인 줄거리와 느낌을 찾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청소년기에 안네의 일기를 다시 한번 읽었을 때는 시대적 상황에 심취해있었다. 히틀러에 의해 말살되어가는 유대인들의 숨죽인 삶과 공포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는 감정이 많앗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안네만한 나이의 나이의 사춘기 소녀를 둔 입장에서 또 다른 안네의 마음을 들여다 보게 된다. 예전에는 지금만큼 안네를 이해하지 못했다. 깔깔거리면서 또래의 사춘기 소녀들과 수다를 떨고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어야 할 안네의 사춘기 정서에 그만큼의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지금 사춘기를 겪는 딸아이를 보니 머리로 안네를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때가 부끄럽고 미안해지기까지 한다. 수많은 생각과 감성이 교차하는 시기에 좁은 은신처에서 감금하다시피 생활하면서 안네는 얼마나 답답하고 외로웠을까? 가족이 곁에 있지만 자신을 내보이는 것도 교감하는 것도 힘들었을 당시 안네의 머릿속에는 얼마나 수많은 상상의 물결이 일렁이고 자유에 대한 갈망이 일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안네가 쓴 한줄 한줄의 일기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위기의 순간이 닥쳐도 나에게 닥치지 않으면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설령 갇혀 있다고 해도 갇혀있는 현실보다 자신의 감정에 더 많이 치우치면서 고민했을 사춘기 소녀 안네가 떠오른다. 지금의 내 딸과 동일시 하면 더 많은 안네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한 편의 작품을 읽으면서도 어느 때에 읽었는가에 따라서 참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과거에 읽었던 기억으로만 생각했으면 나에게 안네는 과거의 생각으로 거기까지만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다른 삶을 이해할 만한 또 다른 나이가 되어 접하니 안네의 좀더 다른 감성까지 깊이 있게 생각해보았던 것 같다. 비록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영원히 감수성 어린 사춘기 소녀로 기억된 안네, 너의 고통이 천국에서는 멈추었기를...
[글쓰기를 통한 새로운 소통] 슬픈 일이지만 요즘 학교에서 만나는 교사들 가운데 아이들의 고민을 진정으로 들어주는 이는 많지 않다. 이미 교사라는 직업은 유망직업의 한 군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되었다. 가슴이 시린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일을 하면서 아이들과 자신의 방식으로 소통하려 하는 교사들을 만나면 그 기쁨은 이루 말 할 구 없이 기쁘다. 올해 중학교 입학한 딸아이가 자기 반에서 행해지는 특별한 일에 대해서 들려준다. 아침마다 선생님께서 좋은 말씀을 한가지씩 칠판에 적어주는데 아이들은 자신의 비타민 노트에 이 말을 따라적고 자신의 느낌이나 각오를 적는단다. 별인 아닌 듯하지만 그 한마디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보는 시간이 의미있다고 한다. 더구나 아이들의 느낌을 일일이 읽어보고는 한줄씩 댓글을 달아주시는 선생님에게 고마움이 느껴진단다. 아주 작은 일이지만 아이가 감동을 받는 것은 자신의 생각에 대한 상대의 표현을 들었기 때문이다. 즉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졌다는 것에 대한 만족이다. 작은 소통이라도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소통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아이들과의 소통을 글로 한다. 아이들이 쓴 글에 일일이 답변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통의 주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맘껏 함으로써 소통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온 아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하나에 대해서도 참 다른 생각을 가진 아이들 마음을 새삼 이해하게 된다. 어렸을 적 아이들과 돌려썼던 교환일기나 편지함이 왜 요즘 아이들 교실에는 없는 것인지 참 안타깝다. 이러한 글쓰기에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자료를 모아 책으로까지 엮어낸 저자의 열의에 감동한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또 다른 교사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가장 민감한 시기인 사춘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톡톡 터뜨릴 수 있는 아이들의 감성, 우리가 좀더 받아들여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