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땅거북을 절멸시키더니 이번에는 야생화한 염소까지 박멸한다.
우리 인간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책의 표지를 봤을 때, 고민이 좀 되었다. 진화라는 말에 거부감이 있는 탓이다. 더불어 찰스 다윈이라는 이름도... 책 가득 진화론이 옳다! 옳을 수밖에 없다!라는 이야기만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되기도 했지만 기우였다.
표지를 넘기면 갈라파고스 제도의 항해도가 등장한다.(반 접혀있으니 잘 봐야 한다.) 찰스 다윈이 탔던 비글호의 항로와 책의 저자인 신이치가 탄 마벨호의 항로가 다른 색으로 담겨있다. 최대한 다윈의 경로를 좇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가득하다. 물론 다윈이 다녀갔던 모든 섬을 다녀온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참고로 갈라파고스 제도는 책에 등장한 이사벨라 섬을 비롯한 총 19개의 섬으로 이루어졌으며 에콰도르령이다.)
이 책은 생물학자의 저서가 맞지만, 지극히 딱딱하고 학문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지 않다. 여행 에세이 아니 기행문에 가깝다고 할까? 우선 들어가는 말(서문)만 책의 1/4이다. (저자가 상당히 수다스러운가?!) 처음 보는 저자임에도, 마치 옆에서 계속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적 느낌! 음성인식이 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왜 하필 갈라파고스 제도를 여행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의 어린 시절부터의 로망이자 꿈이었다는 이야기가 서문 가득 펼쳐져 있다.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단어는 피시스(physis)다. 그리스어로 본래의 자연을 뜻하는 이 단어는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도 속속 등장한다. (예를 들면 화장실과 배변 같은 곳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갈라파고스제도를 가게 된 계기와 그 일을 이루기까지의 이야기들이 서문 가득 담겨있다. 찰스 다윈과 그와 함께한(사실은 그가 곁다리로 낀 거지만) 비글호 이야기도 상당수 담겨있다. 원래 여왕의 군함인 비글호는 군사 주둔지를 물색하기 위해 출발한 배였다. 선장과 안면이 있었던 젊은 학자인 다윈은 우연히 여정에 합류하게 되었다. 당시 다윈은 진화론의 1도 머릿속에 없었다. 하지만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만난 다양한 생명종을 보고 놀라게 된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너무 다른 생물종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남기지 못했던 것이 그의 가장 큰 한이라 할 수 있다. 다윈은 훗날 다시 갈라파고스 제도로 조사를 떠나게 된다. 장황한 이야기 후에 궁금한 게 있다. 현재는 코로나 상황이라는 것이다. 뱃길이건, 하늘길이건 다 막혀있는 상황인데 저자는 어떻게 갈 수 있었을까? 간발의 차로 저자는 2020년 3월 아직 코로나가 위세를 떨치기 전에 갈라파고스 제도를 돌아볼 수 있었다. 조금만 늦어졌어도, 입도 자체가 불가했을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1/3 가량의 이야기를 지나야 드디어 섬에서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가장 오래된 화산섬인(일명 노인섬) 플로레아나섬을 시작으로 이사벨라 섬, 산티아고 섬이 등장한다. 마지막 부분에는 갈라파고스에서 만난 다양한 생물들의 모습이 담겨있는데, 그중 갈라파고스 땅거북은 정말 수명만큼이나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
사람과 오래 같이 지내지 않아서 그런지,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만난 동물들 중 상당수는 사람을 피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도망치지 않는다. 오히려 바다사자의 경우 장난을 거는 듯한 행동(오리발 물어뜯기 등)을 하거나 저자 가까이까지 왔다가 날렵하게 수영해 가기도 하고, 사람이 있건 말건 갈라파고스 땅거북 역시 먹이를 찾아 어슬렁 어슬렁 느리게 기어 온다.(제 갈 길 가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그렇다. 사람을 무서워할 줄 모르는 땅거북들은 이렇게 쉽게 인간의 먹이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장기간 항해를 하는 뱃사람들에게 땅거북은 귀중한 단백질원이었다.
건조함을 잘 견디고 기아에도 강한 땅거북들은 배의 갑판 혹은 선창에 던져두면
물이나 먹이를 주지 않아도 1년 가까이 산다.
필요할 때 죽여서 등딱지를 벗겨내면 신선한 고기를 얻을 수 있다...
말하자면 인간에게 알맞은 식량원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만족을 모른다. 식량이 필요하니 살기 위해 땅거북을 사냥할 수 있다고 치자.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한 생물이 절멸할 정도로 욕심을 부리는 데 있다. 당장 오늘 필요한 만큼이 아닌 잡을 수 있는 데까지 무분별하게 잡는다. 결국 땅거북은 절멸 직전까지 갔다. 다행히 개체 수를 보호하고, 인공부화 및 여러 가지 노력 끝에 겨우 소수를 지킬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지역을 여행하는 경우 자연의 어느 것 하나도 소지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강하게 제재하고 있다. 벌금뿐 아니라 구속이 되기도 한다. 다시 한번 인간의 욕심과 무지를 느끼게 되었다.
다양한 생명들의 보고인 갈라파고스 제도의 시작과 다른 묵직함이 책을 읽는 내내 들어온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글이었지만, 쓸쓸함이 더 큰 이유는 인간의 관여가 생물을 어떤 지경에 이르게 되는 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자연은 그대로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저 인간은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