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김정금 지음 / 델피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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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가진 자가 권력을 가진다.

과로로 인한 사고사로 아버지를 잃고 김지섭. 지애 남매는 아버지의 보험금으로 어머니와 함께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암으로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두 남매는 서로를 의지하며 일상을 이어간다. 하지만 큰돈 앞에서 욕심이 생긴 지섭은 주변 직원들의 말을 듣고 가상 코인과 주식에 투자를 했다가 반을 잃는다. 여동생의 등록금마저 대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씁쓸했지만 여기서 팔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지섭과 싸운 지애는 그날로 집을 나간다. 전에도 종종 한 번씩 가출을 한 적이 있는지라,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지애는 돌아오지 않는다. 지애와 친했던 친구 역시 지애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지섭은 손해사정사다. 손해 사정회사는 고객이 고액의 보험금을 청구했을 경우, 보험약관에 해당되는 사고인지를 조사하는 일을 한다. 다드림 보험에서 지섭의 회사로 위임된 사건은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20대 중반 여성 박연정의 사건 조사에 대한 것이었다. 이불을 털다 9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하반신 마비가 된 연정을 찾아간 지섭.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가 입원한 병원을 비롯하여 조사가 이루어진 경찰서까지 다니면서 자료를 수집한다. 근데, 의무 기록 사본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는 지섭. 연정이 의식을 차린 후, 누군가가 뛰어내리라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적혀있었다. 다시 연정을 만나는 지섭은 연정으로부터 자신을 돌봐준 언니 조은희로부터 사주를 받았다고 한다. 근데 조은희는 연정의 보험설계사였다. 은희는 연정에게 아이를 데리고 오려면(연정은 장현성이라는 남자와 애인 사이였는데, 임신을 알리기 직전 현성과 헤어졌고 혼자 아이를 낳았다.)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 집으로 찾아온 은희가 나가고 10분 후 연정은 9층에서 뛰어내린다. 하지만 조사를 한 결과, 은희는 연정 사건이 있기 한 달 전 사망했고 은희 앞으로 나온 사망보험금의 수익자가 연정이었기에, 이미 지급까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도대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캐면 캘수록 실종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드러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조은희가 있었다. 조은희가 낯이 익은 지섭. 과연 그는 은희를 어디서 만난 것일까? 사라진 동생 지애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말은 사실일까? 돈 앞에 노예가 된 세상, 돈만 준다면 뭐라도 하는 사람들이 널려있는 사회. 소설 속 이야기라지만, 현실이 반영되어 있기에 씁쓸하기만 하다. 애써 이건 소설일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보험금을 타려고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고, 만삭인 아내 이름으로 거액의 보험에 들었다가 사고사로 위장하여 보험금을 타내려는 이야기를 이미 뉴스에서 접했던 터라 그저 상상 속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에는 답답했다. 한참 문제가 된 백내장 수술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었는데, 실손보험에 가입되어 있냐는 의사에 물음에 있다고 대답했더니 고액의 수술을 해야 한다길래 의사에 말대로 했는데 결국 보험금을 받을 수 없게 된 주부와 같은 상황에서 금감원에 신고를 해서 보험금을 받게 된 이야기가 비교되며 등장하는데 정말 기가 막혔다. 그런 면에서 몰입해서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밤을 꼬박 새우며 새벽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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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은 창백한 손으로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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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심은, 인간의 자기합리화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드러나는 사실을 마주하고나자 소름이 끼쳤다.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글쎄... 그렇다고 무작정 이해하고 넘어가기에 피해자는 어디서 보상을 받아야 할까?

에덴 종합병원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피해자는 병원장인 차요한이었다. 근데,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던 차요한은 이날 오전 9시 연명치료를 마치고 호흡기를 떼어내기로 되어 있었다. 자연히 죽을 사람을 왜, 누가, 어떤 이유로 살해한 것일까?

SJ 로펌의 차도진 변호사는 새해를 코앞에 둔 이날도 출근을 했다. 딱히 어디 갈 곳이 없기도 했지만 홀로 보내기는 씁쓸했기 때문이다. 그런 도진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도진이 출근할 줄 알고 박 사무장이 딸에게 도시락 심부름을 시킨 것이다. 그리고 퀵서비스로 전달된 편지 한 통. 편지를 읽는 순간, 도진은 앞이 캄캄해졌다. 쪽지에는 살인사건의 용의자인 유민희 간호사의 변호를 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지키지 않는다면, 15년 전 그 일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협박이 담겨있었다. 15년 만에 도진은 고향 선양으로 향한다.

서울 강력 범죄수사과장 황우식 총경은 설 첫날 정연우 경위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당장 짐을 챙겨서 김상혁 경사와 함께 선양으로 내려가서 살인사건을 조사하라고 한다. 서울에서 4시간가량 걸리는 지방인지라 탐탁지 않은 데다, 과거 부사수였다가 연우와의 사건으로 인해 사이가 틀어져 경제팀으로 이동한 상혁과는 껄끄럽기만 하다. 하지만 황 총경의 명령이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선양으로 향한다.

차요한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간호사 유민희였다. 그녀는 바로 김형근 실장에게 알렸는데, 사건이 일어난 시간과 신고된 시간 사이에는 30분 이상이 걸렸다. 주변을 조사하던 선양 경찰서 강력반은 피가 묻은 볼펜을 발견하고, 볼펜에서 유민희의 지문을 찾아낸다. 유민희를 불러 조사를 진행하는 연우 앞에 도진이 나타난다. 유민희의 변호를 맡았다고 한다. 용의자로 특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도진은 서울에서 내려온 것일까? 유민희에게 살해된 사람이 차요한이라는 사실을 들은 도진은 패닉 상태가 되어 갑자기 뛰쳐나간다. 피해자가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사실 선양은 광산으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석탄 채굴로 빈 광산이 되어버리자 카지노가 들어선다. 광산에서 일하던 광부들의 진폐증을 치료하기 위해 선양에 세워진 에덴 종합병원과 그 일에 평생을 바친 차요한에 대한 신망은 두텁다. 하지만 도진의 등장과 함께 15년 전 사건이 수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빨리 사건을 접으려고 하는 선양 경찰서 강력반 심재훈 팀장도, 선양 경찰서장으로 부임한 곽철호 총경의 반응도 무언가 이상하다. 이들 안에는 드러나지 않은 뭔가가 있다는 촉을 느낀 연우는 사건을 촘촘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하는데...

사건이 진행되면서 차요한을 살해한 진범과 함께 과거 도진과 친구들 사이에 있었던 사건이 무엇인지에 포커스가 맞추어진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 또한 마지막에 드러난다.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추악한 지, 그리고 사람의 가치를 오로지 돈으로 평가하는 세태 속에서 결국 피해자가 괴물이 되어가는 모습이 참 씁쓸했다. 결국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 각종 비리와 유착이 사건을 어떻게 교묘히 감추는지, 추악한 민낯을 보기만 해도 구토가 치밀어 올랐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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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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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여 삶을 견딥니다.

정보라 작가의 저주 토끼를 흥미롭게 읽었다. 단편 모음집이었는데, 색다른 주제를 특이한 시선에서 그려서 기억에 남았다. 근데, 이 소설은 좀 어려웠다. 마지막 장을 넘기며 나는 이 작품이 왜 어려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우선 현실의 관점에서 작품을 해석하려고 해서 그랬던 것 같다. 뒤로 갈수록 SF적 요소가 선명해지다 보니 어느 정도 이해의 폭을 넓게 봐서 그냥 끄덕여지긴 했다. 그래도 어렵긴 어렵다.

인간에게 고통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살아있는 동안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문제다. 백 세 시대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건강하게 백 세를 살아야 의미가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에게 고통의 문제가 사라진다면 제일 먼저 없어지는 것은 종교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의학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해결할 수 없기에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을 종교에서 찾으려는 것이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책 속에는 종교단체와 제약회사가 얽혀있다. 시작은 제약회사였다. 고통의 문제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한 회사가 계속 신약을 만들어낸다. 문제는 제약회사로부터 빼돌린 내용을 가지고 종교단체로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종교단체의 사이비성과 함께 그에 속한 신도들에게 투약을 하게 되고 상당수의 사람이 죽었다는 내용이 퍼지기 시작한다.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피해 두 아들 태와 한을 데리고 종교단체에 들어가는 어머니 홍. 하지만 그날 이후 홍은 아들들을 만날 수 없게 된다. 이런저런 정보를 통해 아들들을 만나기 위해 잠입하는 홍.

한편, 제약회사의 폭파 사건이 터진다. 사고로 제약회사의 대표 부부와 아들이 사망한다. 다행이라면 그들의 딸인 경은 사고가 일어나기 얼마 전, 자살시도로 병원으로 옮겨진 터라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다. 사건의 범인과 모든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형사 륜과 순이 투입된다. 그리고 잡힌 범인은 태였다. 그는 종교단체 소속이라고 밝혀졌는데, 과거 종교단체에 있었지만 믿지 않는다는 뜻을 전한다. 그가 요구한 것은 자신의 형인 한을 만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태와 달리 종교에 심취해 있는 형 말이다.

책을 읽으며 이 종교단체의 교주는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읽을수록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교주같이 보였던 인물들은 결국 추종자였다. 그리고 밝혀진 교주의 정체에 경악했다. 세상에나...! 정말 예상치 못한 반전 같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동성 간의 결혼과 임신. 고통의 문제 역시 그런 식으로 이해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역시 그래서다.

근데 우리의 현실 속 종교단체 중에도 고행과 고통을 받아들이고 버텨야 한다고 가르치는 종교들이 상당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고통은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 고통이 어떤 의미를 가지냐에 따라 견딤의 정도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장편소설이지만, 단편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은 각 편의 제목과 한자어로 풀어지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져서가 아닐까 싶다.



인간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여 삶을 견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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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의 기술 - 최고의 커리어를 빌드업 하는 직장생활 노하우
김대희 지음 / 라온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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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래 다닌 직장을 나왔다. 이직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여서였을까?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진 건 IMF를 지나면서부터 인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평생직장을 꿈꿨던 것 같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나는 여러 가지 불합리한 처우들과 업무 속에서도 그저 주저앉아서 현실에 안주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몇 번의 이직 기회와 분위기가 있었음에도 밖으로 한 발 내디디는 게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만약 퇴사에 대한 큰 사건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나는 박봉에, 쏟아지는 일 속에 파묻혀서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일주일 밖에 안된 터라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퇴사의 경험이 있는 주위 사람들의 조언대로 우선 한 주를 보내긴 했지만 여전히 고민이 된다. 다행이라면 이 시점에 이 책을 만났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직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이직을 자주 하는 사람은 왠지 책임감, 인내심이 떨어지고 적응력이 없어 보이게 비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야기한다. 오히려 한 직장에 오래 다닌 사람은 자신의 가치와 능력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고 말이다. 이직은 자신의 가치와 콘텐츠를 시장에 내보임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직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단지 연봉만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업무능력과 커리어를 성장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직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우선 틈틈이 자신이 현 직장을 통해 이루어 낸 성과를 측정해 보기를 바란다. 이에 대해 구체적인 수치로 대입해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수정한다. 나 역시 막상 퇴사를 하고 이력서를 다시 써야 하는 상황이 되니 모든 것이 막막했다. 다행히 전 직장에서 업무성과평가에 대한 서류를 매년 작성했던 터라 그를 통해 과거의 내 성과를 유추할 수 있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업무 인수인계 서류를 작성할 때처럼(나는 입사할 때부터 내 업무에 대한 매뉴얼과 인수인계 자료를 틈틈이 만들어뒀다. 차후에 퇴사할 때 상당히 요긴하게 쓰였다.) 미리 내가 이룩한 성과 등을 기록해 둔다면 원하는 회사의 정보가 갑자기 주어졌을 때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건강관리와 인맥관리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인맥 관리에는 내 평판 역시 들어있다. 꾸준한 운동을 통해 체력을 기르는 것 또한 이직을 위해 해야 할 요소이다.

책 마지막 장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면접과 연봉협상 등에 대한 실제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정말 이직을 준비하는 직장인들에게 아주 유용할 것 같다. 이직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가치를 알고, 내 커리어를 빌드업 해보자. 여전히 나를 필요로 하는 직장이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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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에게 말을 걸다
김교빈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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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친하지 않음에도 틈틈이 명화에 대한 소개 책들을 통해 이제는 조금 익숙한 그림들이 생겼다. 요즘은 단지 명화에 대한 소개뿐 아니라, 그림을 통한 치유처럼 여러 가지 감정들을 다독이는 책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현직 중등교사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인생사 속 굵직한 상처들을 여실히 드러낸다. 책을 읽는 내내 큰 아픔 속에서도 의연히 삶을 살아냈구나! 하는 놀라움이 들었다.

책 속에는 우리가 익숙하게 마주했던 그림들이 등장한다. 원작을 싣기 힘든 경우, 저자가 그린 모작이 담겨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와닿았던 내용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여류 화가인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였고 또 하나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이야기였다. 프리다 칼로는 아마 개인사 때문에 더 유명한 작가일 것이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았던 터라 한 쪽 다리가 짧은 그녀는 큰 교통사고로 30여 차례의 수술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나타낼 줄 아는 당당한 작가였다. 그의 삶에는 디에고 리베라가 자리 잡고 있다. 유명한 화가였던 그는 프리다의 작품을 세상에 내보이고, 여러 미술적 조언을 해주는 멘토였다. 한편으로는, 타고난 바람기 때문에 프리다에게 큰 상처를 입힌 장본인이기도 했다. 여성이라는 입장에서 보자면 디에고 리베라는 악연일 수 있지만, 화가로써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과 삶의 이야기는 내게 또 다른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기도하는 손에 얽힌 이야기 또한 가슴을 울렸다. 가난했지만 예술가를 꿈꾸던 뒤러와 그의 친구는 먼저 돈을 버는 사람이 친구의 뒷바라지를 하기로 했다. 뒤러의 친구가 먼저 취직을 하게 되고 그의 뒷발이지 덕분에 뒤러는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뒤러가 그림을 통해 명성을 쌓자, 뒤러는 친구가 그랬듯 친구를 미술학교에 보내고자 했지만 친구는 험한 육체노동으로 손이 굳어 더 이상 화가의 꿈을 꿀 수 없게 된다. 그런 친구의 손을 그림으로 남기게 된 뒤러. 아마 이 내용을 몰랐다면 그림을 보면서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이 그림에 얽힌 사연을 마주하고 나니 내 삶에도 뒤러의 친구처럼 오롯이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던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삶은 그들의 희생과 관심을 먹고 자랐던 것 말이다.

저자는 책의 곳곳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낸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의 그 일이 내게 독이 아닌 득이 되었다고 말이다. 여전히 아프고 힘든 기억임에도 그 일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웅크리고 있었을 것 같다는 저자의 고백은 고통을 이겨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삶에는 흔히 희로애락이 있다고 한다. 폭풍 없이 잔잔한 배항해는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심한 폭풍우를 만났을 때 삶의 진면목이 발견된다. 거센 풍랑 같은 인생의 여정 속에서 배멀미를 이겨낼 정도의 마음 체력이 있다면 삶을 살아가는 게 한결 수월할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여운이 되어 맴돈다. 부디 어떤 고난 속에서도 의연하게 이겨낼 수 있는 자존감이 내게도 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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