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다정한 그림책 - 나에게 친절하고 싶은 당신에게
이상희 외 지음, 김경태 사진 / 새의노래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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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계속되는 감기로 소아청소년과를 찾았다. 주말이어서인지, 오늘따라 대기 환자로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겨우겨우 자리를 찾아서 앉자마자 둘째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림책을 가지고 온다. 며칠 전 왔을 때도 읽었던 그림책이다. 아예 내용을 다 외워버릴 정도로 읽고 또 읽은 그 책. 그것도 똑같은 책을 찾아내 두 권 다 들고 오기도 한다.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그림책 3권을 읽어줬는데, 병원에서까지 도합 8권이다. (남편이 읽어준 것도 그 정도 될 것이다. 내가 힘들어지면 남편에게 토스했으니... ㅎ) 글자를 배우고, 글 밥이 많은 책을 읽게 되면서부터 그림책과는 더 이상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엄마가 되니 그림책과 다시 친해져야 했다. 아니 외우고 또 외우는 것을 지나 아예 책 한 권을 똑같이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로까지 유난히 좋아하는 책을 하루에도 수십 번 들고 와서 읽어줘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읽고 반한 책은 반납하고 또 빌려오고를 거듭하다 결국 내 돈 내산을 하기도 했다. 당연히 내 책이 되니 더 자주 읽게 되는 일이 반복된다.(나는 아무리 읽고 싶던 책이라도 사고 나면 언젠가를 위해 책장에 꽂히기 일쑤인데 애들은 다른가 보다.) 처음에는 그저 목소리 흉내에만 집중하며 책을 읽어줬었다. 근데,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나도 모르게 묵직한 뭔가가 툭 내려앉기도 하고, 감정 컨트롤이 안되기도 했다. 그때부터 그림책이 주는, 그림책만이 줄 수 있는 다정함과 감동을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요즘은 어른을 위한 동화책이나 그림책도 종종 등장한다. 아마 그 여운의 맛을 아는 어른들이 많아져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 속에는 참 많은 그림책이 등장한다. 다행이라 해야 할까? 단 한 권도 만난 적이 없던 초면의 책들이다. 이렇게 많은 책이 있었나? 어떻게 한 권도 본 적이 없는 책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림책을 만났다. 다양한 그림책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와닿는 책과 구절들이 참 많지만, 그랬다가는 서평이 아니라 책을 통째로 옮기게 될 것 같아서 그중에서 나 또한 겪었던지라 더 많이 와닿았던 책이 있어서 소개해 본다. "야호! 비다"라는 책이었는데, 처음에는 비다를 바다로 착각했었다;;; 당신은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눈이 오는 날을 대할 때 감정은 어떤가? 눈 오는 날, 다음 날 출근길이 걱정이라면 당신은 나이가 들었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나 역시 그렇다. 눈이 즐겁기보다는 당장 출근 대란을 걱정하니 말이다. 비 오는 날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폭염이 연거푸 계속되는 날이라면 그나마 좀 덜 귀찮긴 하지만, 그럼에도 비 오는 날을 생각하면 이마와 눈가에 주름이 자동으로 생긴다. 옷도, 신발도 젖고, 한 손에는 우산, 한 손에는 유모차를 밀면서 두 아이를 등원시켜야 하기 때문이다(나는 뚜벅이 직장인이었다.). 그렇기에 책 속 할아버지가 비 앞에서 표정관리가 안 되는 이유가 무척 와닿았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달리 아이는 마냥 행복해 보였다. 그런 둘이 길가에서 부딪쳤다. 할아버지는 화를 냈고, 아이는 할아버지가 쓰고 있던 모자를 쓰며 장난을 친다. 그다음 어떻게 되었을까?

백 번 양보해, 최소한 우리 인생에 심술궂을 필요는 없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재미 없어지는 이유는(때론 지나쳐 꼰대로 불리는 이유는)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작은 경험으로

이 넓은 세상의 인과 법칙을 알고 있다고 단정해버립니다.

큰 착각이죠.

책을 읽으며 또 한 장면이 떠올랐다. 큰 아이가 3살이 되었을 땐데, 그날도 비가 참 많이 왔다. 퇴근하고 아이들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원장 선생님을 만났다. 나였으면 물웅덩이에서 첨벙첨벙하지 말라고 야단을 쳤을 텐데, 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부르면서 "우리 같이 웅덩이에서 첨벙해볼까?" 하고 말씀하셨다. 내 생각과 표정을 읽으셨던지, 어차피 장화에 우비니까 첨벙해도 많이 안 젖을 거예요. 이렇게 비 오는 날 아니면 언제 첨벙첨벙 신나게 물장난하겠어요?" 하며 웃으셨다. 그날 이후로 아이의 첨벙 놀이를 조금 더 편안하게 바라본다. 때론 한번 해볼까? 하고 먼저 이야기하기도 한다. 삶의 같은 장면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반응의 정도는 참 다르다.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라면 굳이 심술궂게 대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다르게 보자면, 삶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해 보이는 것도 얽히고설키다 보면 또 다른 결과로 도출된다. 만약 모든 게 인과관계대로만 풀린다면 스포츠를 보는 재미가 사라지지 않을까? 세계 랭킹 1위라고 늘 금메달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인연이라 말하는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수많은 우연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인연을 만들어내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조언을 따라볼까 한다. 내 인생을 다정하게 대해보자. 그 다정함이 내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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