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모네이드 할머니
현이랑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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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모네이드와 할머니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의 조합만큼이나 특이한 탐정소설을 만났다. 극중 배경이 되는 도란 마을. 마을이라는 이름처럼 정말 마을이다. 마을 안에 슈퍼도, 병원도, 서점도, 카페도 다 있으니 말이다. 근데, 이 마을 좀 이상하다. 마을 같지만 마을이 아닌... 치매요양 시설이다. 차이가 있다면 치매 병동을 마을로 꾸밀 정도이기에 재력이 있는 (한 달 병원비만 1,000만 원이니)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다. 그리고 마을이지만 사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간호사나 의사, 도우미다. 웨이터 복장을 하고 있지만 의사고, 점원 복장을 하고 있지만 도우미다.

그런 도란 마을에 경증 치매를 앓는 할머니가 입소한다. 엄청 까칠하고 아이들을 귀찮아하고 지팡이를 짚고 레모네이드를 즐겨마시는 할머니. 그리고 또 하나의 인물은 유치원생 꼬마. 모든 것이 풍요롭고 조용하기만 해 보이지만 사실 도란 마을에 사건이 발생한다. 신생아 사체가 봉투에 들어서 발견된 것이다. 근데 뉴스에 나오지도 않고,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지도 않고 숨기기에 급급하다.

레모네이드 할머니 탐정과 그의 조수 꼬마가 함께 사건의 진실을 향해 한걸음 나아간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그리고 진실을 파헤치면서 그 안에 감춰진 추악한 비밀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한다.

치매를 앓는 할머니 탐정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참 신선하다. 사건과 별개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하나 둘 등장한다. 밖에서 볼 땐 모르겠지만, 인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속 이야기를 알게 되면 왠지 모르게 짠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웃는 얼굴 이면의 상처와 아픔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주인공인 레모네이드 할머니와 꼬마 역시 그런 사실에서 비껴날 수 없다.

늙음이란 것은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평범하거나 후줄근하게 보이게 하는 마력이 있다...

여기 노인들에게 명품 옷은 멍청한 젊은 애들에게

내보일 수 있는 마지막 갑옷 같은 것이다.

명품 라벨에 혹하는 자식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이다.

여기서 인간성으로 자식들의 존경을 얻는 부모는 없다.

비리와 마약 그리고 현대판 고려장 같은 모습들... 자식들이 골프 치러 왔다가 잠깐 들러서 효자 흉내 내라고 골프장 옆에 조성된 마을. 한 달에 한 번 자녀 집에 갔다 오면 노인들은 상태가 더욱 악화되는 경우가 다반사. 사회파 소설은 아니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들이 왠지 모르게 가슴을 아프게 한다. 탐정소설이지만 범인을 찾는 것보다 이래저래 얽혀있는 비리와 추악한 사실들에 눈이 더 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유치원생 같지 않은 감성의 꼬마와 츤데레의 매력을 뿜어내는 레모네이드 할머니의 이야기에 한참 빠져들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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