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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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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저를 둘러싼 지인들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뉩니다. 생각은 보수적이고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 생각은 보수적인데 인간적으로 싫은 사람, 생각은 진보적인데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 생각이 진보적이고 인간적으로 싫은 사람입니다. 이념, 가치의 문제와 인간의 문제는 항상 일치하지 않거든요.

 

B) 저를 둘러싼 지인들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뉩니다. 생각은 진보적이고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 생각은 진보적인데 인간적으로 싫은 사람, 생각은 보수적인데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 생각이 보수적이고 인간적으로 싫은 사람입니다. 이념, 가치의 문제와 인간의 문제는 항상 일치하지 않거든요. 

 


A와 B는 얼핏 보면 같은 말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묘한 차이가 있다. 바로 정치적인 입장이 다르다는 것. 두번째 문장으로 시작하는 문장에서 세번째 부분을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A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라고 말하고 있고(생각은 진보적인데 인간적으로 좋으니), B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진보라고 말하고 있다(생각은 보수적인데 인간적으로 좋으니).  이 문장 중 하나는 <진보 집권 플랜>에 나오는 조국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 입장에서 바꿔 말한 것이다. 굳이 말 안 해도 알겠지만 당연히 B가 조국이다.

 

절대로 내 손으로 고를 것 같지 않은 제목의 책 <진보 집권 플랜>은 많은 알라디너들의 지지를 받아 1월 서평단 신간도서로 꼽혔다. 이 책을 받아들고 이 상황을 어쩌나라고 한참을 고민했지만, 서평단 활동을 시작한 것이 독서 편식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으므로 용기를 내어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5페이지, 다음에는 20페이지, 그 다음에는 50 여 페이지를 읽어내려가더니 네번째로 책을 잡았을 때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 조국이라는 사람, 생각보다 멋진 사람이었다.

 

제목만 보고는 이 책, 엄청나게 보수 진영을 비판하겠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오해였다. 오히려 이 책은 진보 진영에서 쓴 소리를 내뱉고,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지금까지 주장만 있고 보수의 반대 논리만 펴던 진보진영을 비판하며 진보 진영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진보 스스로가 지난 몇년 간의 일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앞으로의 10년, 20년을 준비하자는 것이다.

 

사회,경제 와 교육 현안에 대한 자아 비판은 더욱 날카롭다. 386세대를 '정치 진보 생활 보수'라고 꼬집으며 정치적으로는 재벌 개혁을 하자며 소리 치면서 정작 자기 자식은 대기업에 취직하기를 바란다고 쓴 소리를 던진다. 교육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서울대를 해체하자고 주장 하면서 유일하게 대학 순위 순위에 들어 있는 지금의 서울대를 대안할 포스트 서울대에 대한 대안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지는 않는다. 진보진영에서 더 현실적인 대안을 내 놓아야 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적 성향이라고 할 것 까지야 없지만 주변에서 '보수'로 구분되어지는 내게 이 책을 읽는 시간은 힘겨운 시간이기도 했지만, 참 그들이 부러운 시간이기도 했다. 진보노선에서 이렇게 긍정적인 자기 비판과 자기 성찰이 이루어지는 동안 보수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최근 나오는 책들만 봐도 그렇다. '진보'진영에 관한 책들은 엄청나게 쏟아지지만  '보수'를 당당히 내걸고 나오는 책은 없다.

 

긍정적인 진보, 건강한 보수는 모두 이 사회에 필요하다. 모두가 떳떳하게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밝힐 수 있고, 색안경을 끼지 않고 보다 건강한 진보 보수간의 토론의 장이 마련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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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다

 이 책의 제목에 공감의 표를 보내지 않을 이가 누가 있을까. 80년생, 00학번대를 보낸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마음 속으로 저 말을 되뇌여 봤으리라. 강준만의 신작이라, 그리고 마음 속 깊이 공감하는 제목이라 읽어보고 싶다.  

 

 

 

 

 

 증오의 세기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어쩌면 다시 한번 20세기 세계가 재현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지금 이 시간도 지구 반대편에서 자행되는 증오의 발현들 때문 아닐까. 20세기 전쟁의 시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한번 읽어낸 책. 

 

  

 

 

 

 영혼의 역사 

 영혼이라는 것을 역사로 바라볼 수 있을까?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을 자아냈던 책이다. 신화학자인 저자가 신화와 철학으로 풀어낸 이 책은 영혼에 대한 동서양의 다른 사유의 지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철학, 불평등을 말하다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9명의 철학자의 삶과 책으로 다시 꿈꿔보는 새로운 유토피아. 사람들은 왜 자신의 꿈이 현실이 되지 않는지 고민했고, 현재를 사는 사람들은 왜 다시 옛사람들의 철학을 뒤적일 수 밖에 없는지 이 책은 설명하고 있다.

 

 

 

 

 축의 시대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200년까지 세계의 주요 종교와 철학이 탄생한 인류사의 가장 경이로운 시기를 다룬 역사서. 세계적인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이 책에서 인류사의 수수께끼로 불리는 이 놀라운 문화적 평행 현상을 중국, 인도, 근동,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축의 시대 문명 벨트를 횡단하며 재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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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여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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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명 작가와의 만남에 갔을 때 참석자 중 한 사람이 이런 질문을 건넸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서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듯이, 작가도 한 권의 책을 쓰고 어떠한 변화가 없으면 허투루 책을 쓴 것이라 생각합니다. 작가님은 이 한 권의 책을 쓰고 나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매우 발칙한 질문이었지만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독자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한 권의 책과 씨름하며 보내온 작가들. 그들은 책을 쓰는 동안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생각의 변화를 경험하며, 그것들이 어떻게 그들의 삶을 바꾸어 놓을까? 몇 백 페이지를 가득 메운 글자 너머에 보이지 않는 작가들의 이야기가 궁금할 때가 많다.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 촘촘한 플롯 전개, 영화 뺨치는 박진감 넘치는 스크린 전환, 독자들의 뒷통수를 후려치는 치밀한 반전까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작가 기욤 뮈소가 이번에는 <종이 인형>을 통해 한 베스트셀러 작가, 소설 속 주인공, 그리고 그의 책에 열광하는 독자들에 대해 말했다. 이전의 책들이 ‘사랑에 상처 받은 영혼들이 다시 사랑을 통해 치유 받아 사람들의 관계 속으로 들어온다’는 내용을 다루었다면 이번 책은 이전의 책들과 결이 많이 다르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듯이 베스트셀러 작가의 고민과 고뇌, 독자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에 대해 말한다.

소설가는 자기 인생의 집을 허물고 벽돌로 다른 집을, 자기 소설의 집을 짓는다.
_ 밀란 쿤데라

 

소설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한 젊은 여성과 그녀를 지키는 수호천사의 초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룬 ‘천사 3부작’의 첫 번째 책 <천사들의 동행>과 두 번째 책 <천사들의 기억>이 전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다. 이 책의 작가인 톰 보이드는 하룻밤에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고 톰은 지난날의 가난하고 불행했던 시절을 청산하고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오로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사랑을 믿지 않았던 오로르에게 배신을 당하게 되고 그는 그 충격으로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술과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그동안 인세로 벌어둔 돈까지 모조리 탕진해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다. 그를 삶에서 구원해줄 유일한 길은 천사 3부작의 마지막 3편을 완성하는 것. 하지만 소설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써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하얀 모니터에 깜빡이는 커서만 하염없이 바라볼 뿐 한 글자도 써내려 가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비바람이 몰아치던 한밤중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여성이 그의 집으로 들어왔다. 자신을 ‘빌리’라고 소개한 이 여성은 자신이 방금 톰의 소설 속에서 나온 소설 속 주인공이라고 한다. 천사 3부작의 특별 한정판을 10만부를 만들던 중 인쇄 사고가 있었는데 그 중 톰의 집으로 배달되어 온 책에서 떨어졌다는 것이다. 톰은 믿지 않았지만 빌리는 톰에게 오로르를 되찾고 천사 3부작을 완성하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리고 사랑과 천사 3부작 완성을 위한 이 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기우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자면 이 책은 결코 판타지가 아니다. 책 앞부분을 읽다 이야기의 전개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살짝 실망을 했지만, 오히려 이전의 책들보다 훨씬 사실적인 소설이다. 몇 권의 책을 펴내며 느꼈던 작가로서의 생각들이 곳곳에 묻어나 있고, 어쩌면 자신이 실제로 만나고 경험했던 독자들의 이야기들이 소설 속에 녹아 들어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근본적으로 책이라는 게 뭘까?
종이 위에 일정한 순서에 따라 글자를 배열해 놓은 것에 불과해.
그렇게 글을 쓰고 나서 마침표를 찍는다고 해서 그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내 책상 서랍에는 아직 출간되지 않은 미완성 원고들이 몇 개나 들어 있어. 난 그 원고들이 살아 있는 거라 생각 안 해.
아직 아무도 읽은 사람이 없으니까. 책은 읽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생명을 얻는 거야. 머릿속에 이미지들을 그리면서 주인공들이 살아갈 상상의 세계를 만드는 것, 그렇게 책에 생명을 불어넣는 존재가 바로 독자들이야."
 315쪽 중에서


 

책과 그것을 읽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소설의 중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인쇄 사고로 266페이지 이후가 백지인 ‘천사 3부작’의 한정판 10만 부 중 한 권이 사라지면서 그것을 찾기 위한 톰의 친구들의 활약이 그려지는 데, 이 책은 말리부에서 샌프란시스코, 대서양을 건너 로마까지 그리고 아시아를 거쳐 다시 맨해튼, 결국 긴 여정의 끝인 프랑스에 도착하게 된다. 이 한 권의 책이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며 책이 변화 시킨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데 이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다. 이 중 한국인인 이슬이 등장하는 데 대학생이었던 이슬은 그 책을 들고 한 대학으로 들어가 캠퍼스를 누비고 학교 안 우체국을 통해 그 책을 미국으로 보낸다. (개인적으로는 그 대학이 내 모교였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내 모교를 3페이지에 걸쳐 상세히 묘사해줬다는 사실에 날아갈 만큼 기뻤다) 

 

 

갑자기 천사 3부작의 마지막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한 톰을 의아해하는 절친한 친구 밀로에게 톰은 이렇게 묻는다. "넌 상상의 세계를 누가 만든다고 생각해?" 친구는 톰을 지목하자 톰은 이렇게 말한다. "맞아. 하지만 작가 혼자서는 아니야. 작가는 절반만 할 뿐이야. 나머지 절반은 독자들이 하지." 앞선 3부작의 2권을 완성해주었던 독자들, 그리고 이 이야기의 결말을 함께 마무리하고자 암묵적으로 약속했던 독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물론 새로운 사랑을 위함이기도 했지만) 톰은 다시 펜을 들었고 그 3부작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톰 보이드(그리고 그 뒤에 있는 기욤 뮈소)라는 작가는 '천사 3부작(혹은 이 책 <종이 여자>)'이라는 한 권의 소설을 쓰는 과정을 들려주면서 세상에 책이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독자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어찌보면 너무나 가벼운 이 한 편의 소설이 읽고 난 후 결코 가볍게만 느껴지지 않았던 건 바로 한 권의 소설이 시작되고 끝을 맺으면서 그 안에서 생각이 바뀌고 삶이 변화하는 작가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내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면 기욤 뮈소의 책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소설을 읽을 때 내용에 대한 비평은 할지라도 결코 작가를 폄훼하지 않겠다는 것. 이만하면 책을 이 소설을 읽은 보람이 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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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덕인가>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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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는 산모의 권리인가, 태아의 살 권리를 박탈하는 것인가? 동성애는 성에 대한 자기 권리 인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인류의 반란인가? 배아 복제는 인류에게 건강한 삶을 가져다주는 것인가, 생명 창조라는 신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하는 것인가? 끊임 없는 찬반 토론의 연속과 해결되지 않는 인류의 난제. 그건 이 문제가 '도덕성'에 대한 가치 판단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우리에게 친숙한 저자 마이클 샌델이 이번 책에서는 '공공의 도덕'의 문제를 말한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책이 <정의란 무엇인가>보다 더 먼저 출간된 책이다. 제목도 국내에 소개된 책 표지에 큼지막하게 써 있는 'Why Motality'와는 전혀 다르다.  미국에서는 <Public philosophy>라는 제목으로 2005년에 출간되었다.  

 

책의 내용은 영문 제목 답게 '도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기 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화자되고 여전히 매듭지어지지 않은 수많은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다룬다. 1부는 그에 대한 예들로 그 논란의 핵심을 설명하고 있는데 경제, 사회, 교육, 종교, 정치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벌어지고 있는 윤리 논쟁을 담았다.  

 

복권과 도박이 과연 공공서비스인가에 대한 문제, 소수집단 우대정책이 소수인종 특혜인지 아니면 정당한 역차별인지에 대한 문제,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존엄사에 대한 문제, 정치인의 거짓말을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 전쟁과 핵전쟁에 대한 문제까지 우리가 교과서나 각종 신문 기사 등을 통해 끊임 없이 들어왔던 이야기를 다시금 정리해 실어 놓았다. 

 

특별하게 이 책이 새로운 논리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해묵은 문제이며, 수없이 들어왔던 양쪽의 논리다. 중고등학교 때 윤리 교과서를 통해 봐왔던 내용들로 가득하다. 다만 이 책을 통해 몇년 만에 이와같은 문제를 다시 한번 접하고,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갖을 수 있어 읽는 시간은 꽤 의미 있었다.  

 

사례로 가득한 1부는 읽기 재미있지만, 2부와 3부로 넘어가면서 윤리의 역사, 지나치게 미국적인 색채 때문에 읽기 힘들거나 지루했던 건 사실이다. 샌델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읽어볼만하지만, 그의 책을 접하는 독자라면 이 책보다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먼저 읽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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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 a True Story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1
페르디난 트 폰쉬라크 지음, 김희상 옮김 / 갤리온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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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1.

일흔 살의 한 남자가 어느날 아침 일평생을 함께 해 온 자기 아내를 도끼로 내리쳐 살해했다. 아내의 머리는 바닥에 닿기도 전에 두 쪽으로 나뉘어졌다. 남자는 그것도 모자랐는지 그녀의 머리에 박힌 도끼를 빼내어 그녀의 몸을 조각조각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지하창고에서 아내의 몸을 잘게 부순 후 그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일층으로 올라와 옷을 갈아 입고 깨끗하게 세수를 했다. 그리고는 거실로 다시 돌아와 냉정한 목소리로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내가 내 아내를 잘게 만들어 놨소. 당장 오시오"

당신은 이 남자(살인자)를 용인할 수 있는가? 당신이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을 맡은 판사라면 남자에게 어떤 형벌을 내릴 것 같은가? 아니, 만약 당신에게 이 남자가 자신의 변호를 의뢰한다면 당신은 그 사건을 맡을 자신이 있는가? 어떻게 그를 변호할 수 있을 것인가? 

사건 2.

남자는 한 여자를 만났고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되었다.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첫날 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가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은 다 최악이었어. 더이상 남자를 믿을 수가 없었어. 맹세해줘. 나만 바라보고 산다고 맹세해줘." 그녀는 광기에 어린 말투로 그에게 다짐을 받았다. 이후 여자는 걸핏하면 남자를 의심하고, 터무니 없는 비난을 쏟아냈고, 심지어 폭력까지 서슴치 않았다. 남자는 여자가 점점 두려워졌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내만을 바라보며 살았고, 그녀의 부탁은 물론 심지어 그녀의 폭력까지도 다 받아줬다. 그렇게 그는 일흔두 살이 될 때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녀의 요구를 모두 다 들어주었다. 그날 아침에도 그녀는 날카로운 비명으로 그에게 창문을 닫지 않았다며 소리쳤다. 남자는 무언가에 홀린듯 지하 창고에 도끼를 가지러 내려갔고 아무말 없이 그 도끼로 아내의 머리를 내리쳤다. 

이 사건을 읽은 당신은 어떤 느낌이 드는가? 사건 1과 똑같은 질문을 해보자. 당신이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을 맡는다면 남자에게 어떤 선고를 내릴 것인가? 이 남자가 당신에게 변호를 의뢰해 온다면 변호할 자신이 있겠는가? 눈치 빠른 사람은 알겠지만 사건 1과 사건 2는 같은 사건이다. 사건 1은 사건이 벌어진 이후 우리가 보는 객관적인 사실들만 늘어 놓은 것이고, 사건 2는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당사자들만이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에 관해 써 놓은 것이다. 사건 1만 보면 우리는 그 살인을 용납할 수 없지만, 사건 2를 보면 어느정도 그의 살인동기에 공감이 간다. 이 살인자를 위해서 우리는 어떤 변호가 가능해진다.

우리 형법은 지은 죄의 책임을 묻는 형법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한 인간이 자신의 행동에 얼마나 책임을 질 수 있는가에 따라 처벌을 한다.
같은 죄라고 해도 그 배경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복잡하다.
_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308쪽 중에서

앞에 언급한 사건은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에 등장하는 가장 첫번째 사건이고, 책에는 저자인 독일의 한 변호사가 자신이 직접 변호했던 11개의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일평생을 함께한 아내를 토막 살인한 남편, 자신의 하나뿐인 남동생을 살해한 누나, 누구보다 사랑하는 여자친구의 등에 칼을 꽂는 남자 등 잔인하고 엽기적이며 사회적 도덕으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잔혹한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변호사는 이들을 위해 법정에 나선다. 어떻게? 살인자들의 일생에 대한 관찰을 통해서!

저자는 재판은 크게 두 가지 차원이 얽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검찰이 제시하는 증거가 유죄 여부를 판단하는데 충분한가이다. 이것은 도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건1과 같은 접근법으로, 객관적인 증거들로 범인을 찾아낼 수 있다. 여기서는 유죄냐 무죄냐 그 가부만이 중요할 뿐이다. 유죄가 확정되면 두번째 차원인 '형량을 얼마로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로 넘어간다. 여기서부터는 범죄가 얼마나 위중한 것인지, 그에 알맞은 형량은 어느 정도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도덕적 판단이 필요한데 여기서는 사건 2와 같은 접근법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인생에서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문제를 가지고 왔는지를 알아야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내를 토막 살인한 남편도, 하나뿐인 남동생을 살해한 누나도, 여자친구의 등에 칼을 꽂은 남자도 모두가 '살인'을 한 것은 분명했지만 그 이면에는 살인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인생 내막이 있었다. 이 책은 절대로 살인자를 두둔하는 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살인자를 어떻게 변호해서 이들이 감형을 얻어냈는지를 보여주는 책도 아니다. 그저 이 책에는 저자인 변호사 보아왔던 11개의 인생이 담겨 있을 뿐이다. 객관적인 증거 자료나 수치가 아닌 단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누가 과연 이들을 살인자라 손가락질 할 수 있는지를...  소설을 읽는 듯 이야기는 쉽게 읽히지만 이 이야기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에 마음은 무거워지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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