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 a True Story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1
페르디난 트 폰쉬라크 지음, 김희상 옮김 / 갤리온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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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1.

일흔 살의 한 남자가 어느날 아침 일평생을 함께 해 온 자기 아내를 도끼로 내리쳐 살해했다. 아내의 머리는 바닥에 닿기도 전에 두 쪽으로 나뉘어졌다. 남자는 그것도 모자랐는지 그녀의 머리에 박힌 도끼를 빼내어 그녀의 몸을 조각조각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지하창고에서 아내의 몸을 잘게 부순 후 그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일층으로 올라와 옷을 갈아 입고 깨끗하게 세수를 했다. 그리고는 거실로 다시 돌아와 냉정한 목소리로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내가 내 아내를 잘게 만들어 놨소. 당장 오시오"

당신은 이 남자(살인자)를 용인할 수 있는가? 당신이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을 맡은 판사라면 남자에게 어떤 형벌을 내릴 것 같은가? 아니, 만약 당신에게 이 남자가 자신의 변호를 의뢰한다면 당신은 그 사건을 맡을 자신이 있는가? 어떻게 그를 변호할 수 있을 것인가? 

사건 2.

남자는 한 여자를 만났고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되었다.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첫날 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가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은 다 최악이었어. 더이상 남자를 믿을 수가 없었어. 맹세해줘. 나만 바라보고 산다고 맹세해줘." 그녀는 광기에 어린 말투로 그에게 다짐을 받았다. 이후 여자는 걸핏하면 남자를 의심하고, 터무니 없는 비난을 쏟아냈고, 심지어 폭력까지 서슴치 않았다. 남자는 여자가 점점 두려워졌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내만을 바라보며 살았고, 그녀의 부탁은 물론 심지어 그녀의 폭력까지도 다 받아줬다. 그렇게 그는 일흔두 살이 될 때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녀의 요구를 모두 다 들어주었다. 그날 아침에도 그녀는 날카로운 비명으로 그에게 창문을 닫지 않았다며 소리쳤다. 남자는 무언가에 홀린듯 지하 창고에 도끼를 가지러 내려갔고 아무말 없이 그 도끼로 아내의 머리를 내리쳤다. 

이 사건을 읽은 당신은 어떤 느낌이 드는가? 사건 1과 똑같은 질문을 해보자. 당신이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을 맡는다면 남자에게 어떤 선고를 내릴 것인가? 이 남자가 당신에게 변호를 의뢰해 온다면 변호할 자신이 있겠는가? 눈치 빠른 사람은 알겠지만 사건 1과 사건 2는 같은 사건이다. 사건 1은 사건이 벌어진 이후 우리가 보는 객관적인 사실들만 늘어 놓은 것이고, 사건 2는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당사자들만이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에 관해 써 놓은 것이다. 사건 1만 보면 우리는 그 살인을 용납할 수 없지만, 사건 2를 보면 어느정도 그의 살인동기에 공감이 간다. 이 살인자를 위해서 우리는 어떤 변호가 가능해진다.

우리 형법은 지은 죄의 책임을 묻는 형법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한 인간이 자신의 행동에 얼마나 책임을 질 수 있는가에 따라 처벌을 한다.
같은 죄라고 해도 그 배경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복잡하다.
_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308쪽 중에서

앞에 언급한 사건은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에 등장하는 가장 첫번째 사건이고, 책에는 저자인 독일의 한 변호사가 자신이 직접 변호했던 11개의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일평생을 함께한 아내를 토막 살인한 남편, 자신의 하나뿐인 남동생을 살해한 누나, 누구보다 사랑하는 여자친구의 등에 칼을 꽂는 남자 등 잔인하고 엽기적이며 사회적 도덕으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잔혹한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변호사는 이들을 위해 법정에 나선다. 어떻게? 살인자들의 일생에 대한 관찰을 통해서!

저자는 재판은 크게 두 가지 차원이 얽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검찰이 제시하는 증거가 유죄 여부를 판단하는데 충분한가이다. 이것은 도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건1과 같은 접근법으로, 객관적인 증거들로 범인을 찾아낼 수 있다. 여기서는 유죄냐 무죄냐 그 가부만이 중요할 뿐이다. 유죄가 확정되면 두번째 차원인 '형량을 얼마로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로 넘어간다. 여기서부터는 범죄가 얼마나 위중한 것인지, 그에 알맞은 형량은 어느 정도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도덕적 판단이 필요한데 여기서는 사건 2와 같은 접근법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인생에서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문제를 가지고 왔는지를 알아야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내를 토막 살인한 남편도, 하나뿐인 남동생을 살해한 누나도, 여자친구의 등에 칼을 꽂은 남자도 모두가 '살인'을 한 것은 분명했지만 그 이면에는 살인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인생 내막이 있었다. 이 책은 절대로 살인자를 두둔하는 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살인자를 어떻게 변호해서 이들이 감형을 얻어냈는지를 보여주는 책도 아니다. 그저 이 책에는 저자인 변호사 보아왔던 11개의 인생이 담겨 있을 뿐이다. 객관적인 증거 자료나 수치가 아닌 단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누가 과연 이들을 살인자라 손가락질 할 수 있는지를...  소설을 읽는 듯 이야기는 쉽게 읽히지만 이 이야기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에 마음은 무거워지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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