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5 - 죽음의 탈출
고미카와 준페이 지음, 김대환 옮김 / 잇북(Itbook)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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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를 앞두고 초년병들과의 반란에 성공하지만 가지는 마음이 그렇게 편하지 못하다. 눈에 띄게 화력 차이가 나는 적을 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의 포탄이 병사와 장교를 가리지 않을 뿐더러 초년병, 고참병을 구별하지도 않기에 가지는 자신만을 믿고 전투에 임한다. 극한의 공포에 미쳐버린 병사도 속출하고 더군다나 정황이 불리하자 소대장이 자결을 해버리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가지는 살아남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항전을 포기한다. 결국 가지를 포함한 160여 명 중 단 4명만이 살아남게 되면서 그들은 가지를 중심으로 필사의 탈출을 시도한다. 심지어는 히로나카 하사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전쟁이 마무리가 되고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했지만 그들은 그 소식을 접하지 못한 채 어디를 가도 소련군이고, 중국인민의 토벌군인 사지를 탈출한다.

 

 오늘도 걸어야 한다. 여태까지 걸은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으냐고 말하고 싶었다. 포기하면 바로 굶어죽게 되겠지만, 그편이 차라리 편할지도 모른다. 희망 같은 건 있을 리가 없다. 없는데 만들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닐까? 그런데도 가지는 일어났다. 이제 와서 포기하느니 그 전쟁터에서 항복하는 게 나았다. 왜 그렇게 하지 않고 도망쳐왔는가. 자기 의지로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p. 128)

 

 자기 의지로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에 미치코가 있는 남만주로 극한의 배고픔과 공포 속에서도 길을 나선다. 하지만 패잔병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많은 장애물이 있고, 그 장애물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펜만을 잡던 손으로 사람을 죽이고, 도둑질을 하며, 여자까지 때린 가지는 자신이 점차 인간이길 포기하는 것 같은 모습에 괴로워한다. 인간적으로 대해주길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실패한 라오후링 광업소의 철장 밖에서 바라보던 중국인 포로와 같아지는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의 탈출>이라는 부제는 다른 편의 부제보다도 내용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동안 일본인이만 일본인의 행태를 증오하는 가지의 모습에 끌렸던지 그동안에는 크게 거부감 같은 것이 없었는데, 전쟁에 지고 나서도 자신들이 받는 부당함을 하소연하는 모습들은 조금 언짢기도 하였다. 지금도 공공연히 군국주의 표방하는 듯 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일본의 수뇌부들과도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나도 당했으니까 너도 당해바란 식의 대응은 옳지 못한 것은 맞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핍박을 받고 있다는 묘사가 조금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는 가지의 모습에서 많은 감동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소용돌이 속에서도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났다. 그럼에도 미치코에게 돌아가는 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그리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제국주의 꼭두각시도 아니고 전쟁의 원흉도 아닌 그저 행복만을 바랬던 한 인간, 가지의 무사귀한을 응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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