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점에서 본 우주 - 실험 천문학자들이 쓰는 새로운 우주 기록
김준한.강재환 지음 / 시공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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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젊은 실험 천문학자의 남극점 기지 체류 경험담(1부)과 각자의 연구에 대한 소개(2부와 3부)를 담고 있다. 김준한, 강재한 2인은 미국에서 공부하며 2개의 거대 실험천문학 프로젝트에 각각 참여하고 있다. 초장기선 전파 간섭계(Very Long Baseline Interferometry, VLBI)를 이용한 사건 지평선 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과 바이셉3(Background Imaging of Cosmic Extragalactic Polarization 3, BICEP3)이 그것이다. 남극점에서 이러한 관측을 하는 이유는 남극점이 고도가 높고 매우 건조하여 물로 인한 전파의 흡수가 적으므로 전파천문학 연구에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1]. 또한 초장기선 전파 간섭계에서 지구 크기를 사용하여 각분해능(angular resolution)을 줄이려는 시도를 하는데 있어 남극점에서의 관측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 


읽으면서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현재 남극점에서 기지를 유지하며 과학 연구를 하는 나라는 미국 밖에 없다. 전 지구상에서 단 하나의 나라만이 이러한 경제적 여유와 과학에 대한 철학이 있는 것이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한 미국의 대응을 보며 의료 시스템의 후진성을 지적하지만, 그 기저를 파보면 미국의 엘리트주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재능을 크게 존중하는 나라이다. 재능 있는 사람은 커다란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문화, 그것이 이민자들의 나라로서 세계를 리드하는 위치에 오른 비결일 것이다. 반면, 재능이 없는 사람은 사회에서 낙오되기 쉽다. 이러한 문화가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아닌가 한다. 재능은 존중하지만 사회적 약자도 보살피는 너그러움, 이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닐까. 


한편, 최신 천문학 연구에 대한 여러 지식을 얻으며 의문을 풀 수 있어서 매우 유익했다. 사건 지평선 망원경 프로젝트란 블랙홀 사진을 직접 찍으려는 시도이다. 2019년 4월에 있었던 인터넷 기사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이 때 블랙홀의 사진으로 나왔던 이미지가 이것이다.



이 도넛 모양 중심의 검은 부분이 빛이 나오지 않는, 블랙홀의 ‘그림자’라고 한다. 주변의 밝은 부분은 블랙홀 주변을 도는 물질로 인한 복사이다. 은하 중심에는 태양 질량의 십만 배에서 십억 배에 이르는 질량을 갖는 초대질량 블랙홀(supermassive black hole)이 존재하는데, 이 사진은 지구로부터 5천 3백만 광년 떨어져 있는 M87 은하의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을 찍은 것이다. 빛의 속도로 가도 5천 3백만 년이 걸리는 거리이니 사실 상상이 잘 안 가는 거리이다. 이렇게 먼 거리의 영상을 찍고자 하니 초장기선 간섭계니 하는 기법이 나오는 것이다[2].


향후 또 다른 블랙홀 영상이 나올 때 저자의 이름(김준한)을 기억하면 좋겠다. 


책의 3부는 빅뱅으로 탄생한 우주의 잔향이라는 우주배경복사에 관해 연구하는 저자(강재환)의 이야기이다. BICEP3은 이 우주배경복사의 편광(B모드 신호)을 측정하여 우주 초기에 있었다고 논의되는 인플레이션이 실제로 있었는지를 검증하려는 시도이다. 사건 지평선 망원경 연구와 마찬가지로 측정 한계를 계속 향상시키며 연구가 진행되어 왔으며, 3은 3세대 바이셉 망원경을 의미한다. 저자가 우주의 비밀을 담고 있는 ‘추상화’라고 이야기하는 바이셉 측정 결과 그래프를 한 번 보자.



현대 과학은 고독하게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여 ‘유레카’를 외치는 모습과는 이제 거리가 멀다. 물론 아직 혼자서 외로이 종이 위에 계산하는 이론 연구자들도 있겠지만, 과학의 핵심이 실험이라고 할 때, 신문 지면에까지 오르내리는 의미를 갖는 실험은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명(심지어는 수천 명!)의 과학자들이 분업하여 수행하는 것이 이제 낯설지 않다[3]. 이것은 그만큼 현대 과학의 측정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만큼 우리가 우리 주변의 것들은 잘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우리 주변의 삶을 (현재로는) 변화시킬 가능성이 거의 없는 연구--심하게 얘기하면 인간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연구--에 이만큼의 ‘돈’을 쓰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비용이 너무 큰 것은 취소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력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더욱 고결하게 한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여기에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지만, 위의 연구에 바탕이 되는 과학적 사실들이 이해하기 ‘비교적’ 쉽게 다루어진다. 왜 기선(baseline)을 확장하여 간섭을 시키면 각분해능이 좋아지는지(줄어드는지), 우주배경복사의 ‘편광’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등을 연구에 직접 참여한 이들의 ‘육성’을 통해 듣는 즐거움이 있다. 현대 천문학, 더 나아가 현대 과학의 이면에서 어떤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생생한 현장을 엿보는데 이만한 책이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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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극은 사실 사막이다. 연간 강수량이 2 mm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남극점의 눈은 바람을 타고 온 것이 쌓인 것이다. 남극점의 고도는 9301피트(약 2800미터)이다(24~25페이지).  

[2] 우리가 인터넷 등에서 보는 우주 사진은 사실 실제 눈으로 보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사용하는 파장 대역만 해도 가시광이 아닌 적외선이나 전파인 경우가 많고, 이런 것들을 알고리즘을 거쳐 처리한 다음에 나오는 영상들을 우리는 본다. 

[3] 중력파의 검출을 시도하는 LIGO의 저자 리스트 사이트: <https://dcc.ligo.org/cgi-bin/DocDB/ListAuth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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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 평전 보리 인문학 1
한명기 지음 / 보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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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과 현실, 이상과 실제란 모든 인간이 처한 현실일 것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상을 위해 목숨을 거는 개인은 칭송 받을 수 있지만, 국가가 이상을 위해 온 백성을 거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이상을 얘기하는 것은 통쾌하고 선명하지만, 세상은 이상만으로 살 수는 없다는 지혜를 다시금 깨닫는다. "김상헌이 남한산성에서 곧바로 귀향한 것은 지조 높은 행동이었지만 그 또한 최명길이 열었던 문을 통해 나갔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이식이 했던 말이다. 


모두 현실에만 치우친다면 짐승들과 다름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지 않고 이상만 외친다면 그것도 참 난망한 일이다. 균형감, 전략적 사고가 더욱 필요한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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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쥐의 윤회 - 도올소설집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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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소설집‘이라는데, 그의 내면과 관심사, 주변사를 반영한 거의 수필처럼 읽힌다. 이 글을 읽고 그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의 지식, 언설, 사명감 등을 엿보는 데 부족함이 없다. 도올 개인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 그의 다른 책을 더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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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제651호 : 2020.03.10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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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특집호이다. 특히 방역에 대해 쓴 기사가 인상 깊었다. 방역은 과학이 아니라 정책과 정치의 영역이라는 것. 과학은 확실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불확실성 속에서 제한된 자원을 활용해야 하는 방역 대책은 정치가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직도 있는데, 지금은 특정 지역사회 전파가 이미 시작되었으니 정말 아무 실효성이 없는 이야기이고, 감염병 전파 초기이던 1월 말에도 여전히 유효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무증상 상태에서 전염성이 강해 중국에서 입국하던 우리 국민들만으로도 방역망이 뚫리던 상황이었는데,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를 했더라도 시간의 문제이지 결국 전염병은 퍼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전염성이 무증상에서 그렇게 강하다는 것이 확실치 않았으며, 체온 체크로 감염자를 상당히 걸러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더더욱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라는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외교적, 경제적으로 봐도 전면 입국금지는 해가 크기 때문에 득과 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당시 결정이 합리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 지금 그렇게 보이진 않지만, 초기에 전면 입국금지를 시행했다면 전염병 유행을 막을 수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설사 그럴지라도, 그것은 사후에 불확실성이 제거된 후 내리는 과학적 판단일 뿐이다. 당시의 불확실성 속에서 내렸던 정책적 판단은 여전히 옳고 합리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후의 과학적 판단을 통해서 우리는 향후의 대책에 대한 교훈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새누리당 계열 사람들(ex. 황교안)은 예전 메르스 사태 때부터 ‘전문가들’에게 결정을 맡겨 놓았고 지금도 그래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는 빠져야 한다는 것이다. 일견 그럴 듯한 주장이지만, 만약 방역을 전문가 집단(ex. 의사)에게만 맡겨 놓으면 이들은 당연히 감염원을 차단하자는 ‘과학적’ 주장만을 할 것이다. 제한된 자원 및 사회, 경제적 사항은 이들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들은 이런 고려를 하도록 훈련 받지 않았다. 결국, 최종 정책은 불확실성 속에서 정부와 정치가가 여러 전문가들의 조언을 놓고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맞다. 방역 대책은 정치의 영역이다. 과학이 만능이라는 생각을 버리자. “방역은 과학과 정치의 조화다”가 좀 더 올바른 개념이다. 


“축구장에서는 메시가 최대한 자유롭게 플레이하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다고 메시가 전술을 정하고 선발 명단을 짠다면, 그 팀은 뭔가 이상하게 굴러가는 거죠.” 서울대 보건대학원 역학자인 황승식 교수의 말이다. 


<시사인>에서 코로나19 특별 페이지를 만들었다. 관련 기사와 여러 유용한 정보가 있다. 한 번 방문해 보시기 바란다.


https://covid19.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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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정묘, 병자호란 시대에 관한 한명기 교수의 역사책들을 모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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