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함정 -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물리학자들
자비네 호젠펠더 지음, 배지은 옮김 / 해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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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자물리학에 대한 '사회학적' 보고서 비슷하게 읽힌다. 저자가 가지고 있는 질문--입자물리학은 왜 답보상태인가? 입자물리학자들을 그동안 잘 인도했다고 생각됐던 '아름다움', '자연스러움'이라는 '미학적' 개념이 이제는 오히려 진보를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 등--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세계최고의 물리학자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직접 입자물리학을 전공한 저자는 이러한 인터뷰 전후에, 입자물리학의 현황에 대한 설명과 본인의 물음을 더하여 잘 작성된 비판적 현황 보고서를 만들었다. 


물리학자들(일반적으로는 과학자들)도 사람이고, 동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유행을 좇는다. 동료들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동료들이 논문 게재와 연구비 수여를 심사하기 때문이다. 비주류의 경우에는 이러한 측면에서 당연히 불리하다. 자원이 한정된 사회에서는 경쟁이 치열해진다. 성향상 그 사회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고 싶어하는 과학자도 있고, 조용히 자기가 관심을 갖는 부분을 연구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과학자도 있다. 한 분야가 답보상태일 때, 진정한 돌파구가 어디에서 나올지는 사실 확실치 않다. 모든 과학분야에서, '대형연구', '첨단연구'를 지원하는 동시에 작을지라도 비주류적 연구를 지원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 책을 읽으면, 입자물리학자들이 왜 그렇게 '자연스러움', '대칭'으로 특징 지어지는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책 속 구절들:

  힉스 보손은 힉스 보손이 속한 유형의 입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알려진 입자이며, 다른 기본 입자들은 영향을 받지 않는 기이한 수학적 문제를 겪는다. 양자 요동이 힉스 보손의 질량에 엄청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양자 요동의 영향은 매우 작지만, 힉스 입자와 관련해서는 관측된 질량보다 훨씬 더 큰 질량을 유발한다. 약 10^14배 더 크다. 이건 터무니없을 만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틀린 값이다.

  힉스 질량에 관한 수학의 오류는 쉽게 처리할 수 있다. 이론을 수정해 항을 하나 빼서 그 차이 값을 관측된 질량에 맞추면 된다. 이론을 이렇게 수정할 수 있는 이유는 항들을 개별적으로 측정할 수 없고 단지 그 차이 값만을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려면 양자 요동의 기여를 정확히는 아니라도 거의 다 상쇄되도록 빼는 항을 선택해야 한다.

  이 섬세한 상쇄를 하려면, 양자 요동에 의한 결과값과 열네 자리까지 동일하고 열다섯 번째 자리에서 차이 나는 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렇게 가까운 숫자 두 개가 우연히 생겨날 확률은 대단히 희박하다. 예를 들어 종이에 열다섯 자리 숫자를 전부 적어서 커다란 그릇에 넣고 두 장 뽑는다고 상상해보자. 이렇게 뽑은 두 숫자가 앞 열네 자리는 완전히 동일하고 마지막 한 자릿수만 다르다면, 뭔가 내막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종이가 제대로 안 섞였거나 누가 속임수를 쓰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힉스 질량을 바로잡는 데 필요한 두 개의 큰 수도 그 차이가 너무 작아서, 물리학자들은 뭔가 내막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법칙은 큰 그릇에 종이를 넣고 제비를 뽑는 것과는 다른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자연법칙뿐이고, 그 법칙의 가능성을 알려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힉스 보손의 질량에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은 느낌일 뿐이지 사실은 아니다.

  물리학자들은 설명이 필요한 숫자를 ‘미세 조정된fine-tuned’ 숫자라고 하고, 미세 조정이 되지않은 숫자가 포함된 이론을 ‘자연스럽다natural’고 한다. 또한 1에 가까운 숫자들만 사용하는 이론을 자연스러운 이론이라고 묘사한다. 

  …

  초대칭이론에서는 양자 요동이 힉스 질량에 과도하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막아주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상당히 개선된다. 초대칭은 미세 조정할 필요 없이 양자 요동의 영향을 강제로 상쇄시키고, 그 대신 초대칭 입자들의 질량에서 기인하는 미미한 영향만 남긴다. 모든 질량이 자연스럽다고 가정하면 힉스 질량보다 그렇게 크지 않은 에너지에서 첫 초대칭 입자들이 보여야 한다. 만일 초대칭 입자들이 힉스보다 훨씬 무겁다면, 초대칭 입자들보다 더 작은 힉스 질량을 구하기 위해 미세 조정된 항들에 의해 초대칭 입자의 영향이 상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초대칭이 탄생한 주요 이유 중 하나가 그 미세 조정을 피하는 것이기 때문에, 초대칭을 미세 조정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것으로 보인다. (2장, 67~69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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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1-01-18 2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에 있고 아직 안 읽었는데 인터뷰 형식이군요. 끈이론은 혓물만 켜는 것 같아서.. 끈이론은 검증하기가 힘들다라고 아인슈타인의 전쟁을 쓴 작가가 말미에 비슷한 말을 하더라구요...

blueyonder 2021-01-18 21:58   좋아요 0 | URL
인터뷰가 전부는 아니고요, 어찌보면 논의를 이끌어가는 양념 정도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유명한, 정말 유명한 물리학자들이 뭐라고 하는지 듣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입자물리학의 현 상황을 짚는 ‘사회학적’ 증언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끈이론 연구자들이 하는 주장에 대한 비판도 이 책이 다루는 주제 중 하나라고 얘기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생각만큼 많이 나오거나 세지는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