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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
지승호 지음 / 오픈하우스 / 2016년 4월
평점 :
난 환자들에게 말을 시키지만, 환자가 하는 대답의 내용은 주의깊게 듣지 않는다.
그들이 내가 묻는 것에 호응을 적절하게 하는지 따위를 살피면서,
그들이 하는 말의 행간을 듣고, 뉘앙스를 감지해 낸다고 해야 할까?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아픈 곳이나 아픈 증상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다고 생각하는 곳이나 아프다고 생각하는 증상들을 얘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때문에 입으로 하는 말보다는 몸으로 드러나는 행동들 오히려 정직하다는걸 간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이 말을 할때 호응을 하고 적당한 추임새를 넣어 주고 하는 것은,
아픈 곳에만 집중하려는 환자들의 주의를 분산시켜 슈도 사인을 잡아내기 위해서다.
허리를 예로 들어 보자면,
무거운 것을 들거나 잠을 잘못 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허리를 삐끗하지도 않았는데 허리가 아프다고 할 경우,
일단 허리 주변 근육들을 살펴보는게 먼저이긴 하지만,
무거운 걸 들지는 않았어도 당기거나 밀다가 허리와 어깨에 넓게 펼쳐져 있는 광배근이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또 허리 주변 근육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허리주변의 뼈나 신경 따위의 문제 일 수도 있고,
흉ㆍ복부 내장기관의 문제일 수도 있으며,
심리적이거나 정신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또는 무게중심이 흔들려서 허리가 아플 수도 있으며,
턱관절이 안좋은,턱관절염이나 부정교합이라고 불리우는 경우도 허리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며,
여성의 경우 빈혈과 허혈로 인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이 책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 같은 경우가 그런 것 같다.
그의 말대로 먼저 <글쓰기의 힘>의 글들을 뼈대를 삼아 살을 붙였다.
그래서인지 글들이 어렵지도 않고, 돌려말하지도 않는 것이,
이 책을 읽고나면 그가 누굴 좋아하고 누굴 존경하는지 알 수 있겠고,
그가 오랜 세월에 걸쳐 한우물을 팠다는 것을,
(물론 그가 책에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훤히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음으로 그의 열정이나 그동안의 꾸준함 따위를 알겠지만,
최대한 그의 색깔을 배제했기 때문에,
그동안 나도 읽었던 글쓰기 관련 서적 속의 내용들이 두드러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김규항은 "글쓰기 책을 읽는다고 해서 글을 잘 쓸 수 있거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건 느린 독서, 고독한 사색, 인간의 이면에 대한 관심 같은 것들이다. 그것을 대체할 방법은 없다."고 말합니다.(183쪽)
그동안 글쓰기 비법하면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글을 안 쓰고 못 써도 좋으니,
행간을 읽는 '느린 독서'와
깊이와 넓이를 두루 갖춰 고독하게 느껴질지라도 마다 않는 '사색',
그리고 쓸쓸하고 외롭더라도 보여주는 것만이 보여지는 이면 너머의 그것을 간과하지 않아야 되겠다.
그러려면 너무 많은 책과 너무 많은 사람에게로 범위를 넓히는게 불가능 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다.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줬다.
또 한가지,
허지웅 기자는 자신의 글쓰기 원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일 신경 많이 쓰는 건 글 자체의 운율감이다. 단문과 중문은 담고 있는 정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서로 쓰임이 전혀 다르다. 그 둘을 적절하게 운용하여 읽는 사람이 운율감을 느끼고 지치지 않게 한다. 그러려면 퇴고 과정에서 원고를 입으로 소리 내어 읽는 게 중요하다. 내가 의도한 호흡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더부어 웬만한 비문은 이때 다 잡힌다. 소리 내어 읽는 것만큼 좋은 교정 도구는 없다."(187쪽)
텔레비전에 나오는 허지웅을 보면서, 또 그의 책을 읽으면서,
아무리 강한 척하는 그이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보고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구절은,
야구선수 테드 윌리엄스의 <타격의 과학>을 인용하며,
목수가 연장 탓하냐는 말이 있지만, 초특급 목수는 연장을 탓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글쓰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 하다못해 마음에 드는 필기구, 마음에 드는 책상,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기 위한 노력이 그래서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갖추는 것, 일단 앉아서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요.(194쪽)
라고 한 구절이다.
대화를 잘 하는 사람은 말을 하기보다는 잘 듣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 책 속에서는 '잘 참는 사람' 이라고 한다.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것'을 가지고 '사람의 품성을 상징하는 표상'이라고 까지 하는데,
좀 과하다 싶기도 하지만,
그동안 그의 저작들을 보면 토를 달 수는 없겠다.
하지만, 이 모두는 인터뷰어인 그에게 적용되는 것이겠고,
일상에서는,
적어도 일반적인 관계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좋다고 다독 다독 해주고 싶다.
잘 듣는 사람도 좋고, 잘 참는 사람도 좋지만,
그러다가 만성체증으로 고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도,
다른 사람에게 크게 잘못을 하거나 해를 입히기에는,
그의 글이 화려한 문체나 능란한 수사를 구사하지는 않으나,
소통하고 공감하기에 적당한 온기를 지녔으니까 말이다.
인터뷰를 하려는 사람만이 아니고,
좋은 인간 관계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더라도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온갖 유명한 작법서를 요약,발췌한 이 책 한권이면 충분하겠다.
이 책을 통하여 알게 된 사실 하나,
나보다 한살 많은 걸로 알고 있는,
알라딘 서재 이곳에도 둥지를 틀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
구본준 기자가 고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부디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