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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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엔 청개구리 한마리가 사는 것 같다.

누가 참견하거나 시키지 않으면 알아서 잘하던 일들이고 순리적으로 그렇게 되어져야 마땅한 일들인데도,

참견하거나 시킨다 싶으면 정반대로 해놓고 나몰라라 하고 싶어지니 말이다.

이런 내가 고분고분해지는 때가 있는데, 책에 관해서 추천을 받았을 때다.

책에 관해선, 귀가 얇은 정도가 아니라 팔랑귀여서...누가 좋다더라 하면 일단 들이고 보는데,

그게 아무리 믿을만한 소식통이어도 '일단 보류'하고 보는 종류가 있는데 '일본 소설'되시겠다.

 

다른 이들은 우리와 정서가 비슷해서 쉽게들 감정이입을 한다는데, 난 어쩐 일에선지 영 불편하고 마뜩잖았다.

그래서 완전 애정하는 신형철 님이 강추할때도 못들은척 꿋꿋하게 버텼는데,

요번엔 뒤늦게 듣고 있는 팟 캐스트 '빨간 책방'에서 이동진 님과 이다혜 님이 침을 튀기며 추천하는 것이다.

 

'빨간 책방'에서 이 책이 언급된 것은 좀 오래 전인듯,

이다혜 님은 한번 읽은 후 다시 읽고 싶은데 절판이라고 하고 있었고,

그러다보니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고 하셨다.

이동진 님은 가지고 있으니 빌려줄 수는 있으나 책은 누구에게도 빌려주지 않는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대목에서 그만 홀딱 넘어가고 말았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사람들이 왜 열광했는지 짐작은 하겠으나,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었다.

기대치는 희소성에 비례하는 원칙이 적용되는듯,

책이 재출간되어 손쉽게 구할 수 있으니 그렇다고 자위하는 수밖에~--;

 

 

'환상의 빛'이라는 표제작과 '밤벚꽃' '박쥐' '침대차'이렇게 모두 4편의 중단편이 소개되고 있는데, 

언뜻 보기엔 삶의 간난신고를 담담한 어조로 그리고 있는 듯도 보이고, 

나이듦과 죽음이 책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인듯 여겨지기도 한다.

감수성과 필력이 대단하다보니, 화려한 수사를 거추장스러워 하는 나도 어느순간 감정이입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아름답다 못해 애잔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 책으로부터 한발자국 떨어져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바라보려고 하니,

다시말해, 감정을 될 수 있는 대로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바라보려 하니,

아름다운건 바다나 벚꽃 따위의 풍경이나 배경을 묘사하는 필력이고,

애잔한 건 그런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나이먹고 죽어가는 일들, 삶의 간난신고라는 걸 깨닫겠다.

 

<환상의 빛>은 결혼하고 첫아이를 낳은지 세달만에 남편이 자살해버린 유미코가 주인공이자 화자이다.

유미코는 재혼을 해서 해변 마을로 거처를 옮기고 새남편과 그럭저럭 평화롭게 살면서도 죽어버린 전남편에게 계속 말을 건다.

유미코의 그것이 죽은 전남편을 향한다고는 하지만 일종의 습관같은 것일뿐,

남들이 봤을땐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 내지는 혼잣말에 가깝다.

 

소설은 유미코가 남편을 잃은지 칠 년, 지금의 남편을 만나 해변 마을로 시집 온지 만 삼 년이 되는 어느 봄날,

그동안 사람들에게 들었던 '환상의 빛'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어느샌가 그녀가 직접 느끼게 되는 '환상의 빛'을 얘기하며 끝을 맺는, 양괄식 구조이다.

첫 부분을 잊지말고 잘 기억해뒀다가 끝부분과 연결시키면 유미코의 심경 변화를 짐작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읽으면 서럽다 못해 섬뜩하고 오싹하기까지 하다.

 

ㆍㆍㆍㆍㆍㆍ커다란 물고기 떼가 바다 밑바닥에서 솟아올라 파도 사이로 등지느러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지만, 그건 사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작은 파도가 모인 것에 지나지 않답니다. 눈에는 비치지 않지만 때때로 저렇게 해면에서 빛이 날뛰는 때가 있는데, 잔물결의 일부분만을 일제히 비추는 거랍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사람의 마음을 속인다, 고 아버님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대체 사람의 어떤 마음을 속이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그러고 보면 저도 어쩌다 그 빛나는 잔물결을 넋을 잃고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11쪽)

 

 

"사람은 혼이 빠져나가면 죽고 싶어지는 법이야."

"ㆍㆍㆍㆍㆍㆍ?"(79쪽)

 

대체 무슨 생각에서 다미오 씨가 그런 말을 했는지, 그 후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저는 확실히 이 세상에는 사람의 혼을 빼가는 병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체력이라든가 정신력이라든가 하는 그런 표면적인 게 아닌 좀 더 깊은 곳에 있는 중요한 혼을 빼앗아가는 병을, 사람은 자신 안에 키우고 있는 게 아닐까. 절실하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ㆍㆍㆍㆍㆍㆍ바람과 해님이 섞이며 갑자기 저렇게 바다 한쪽이 빛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쩌면 당신도 그날 밤 레일 저편에서 저것과 비슷한 빛을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시선을 주고 있으니 잔물결의 빛과 함께 상쾌한 소리까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이제 그곳만은 바다가 아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부드럽고 평온한 일각처럼 생각되어 흔들흔들 다가가고 싶어집니다.(81~82쪽)

 

언뜻 보기엔, '왜 죽었을까?'하고 계속 되뇌는 것으로, 예고되지 않은 죽음을 애도하고 안타까워 하는 듯 보이지만,

내가 보기엔 죽음과 삶의 폭폭함을 대비시켜서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마냥 자기자신을 방어하고 정당화하는 듯 했다.

 

"그래도 어렸을 때와 비교하면 전 결혼하고 나서 훨씬 더 행복해졌어요."(18쪽)

어렸을때부터 알고 지냈고, 죽고 못살게 사랑하는 사이라지만,

갓 결혼한 가장에게 '가난'이 중압감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배려하지 않는다.

상대방은 고려치 않고 자신의 행복만을 중요시 한다.

 

전 남편은 자살하기 열흘쯤 전 자전거를 도둑맞자 '나도 훔치지' 하며 자전거를 훔친 일이 있었는데,

자살한 그날, 출퇴근용으로 쓰던 자전거를 어찌하고 선로를 따라 걸었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 후로도 자전거의 행방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모두 고만고만하게 가난한 상황이었고,

그래서 가난이 두드러지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지고는 있지만,

유미코의 전남편은 다소 무리해서 산 자전거를 도둑맞고 훔친 자전거를 또 도둑 맞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또 다시 훔치러 나섰지만 허탕을 치고 터벅터벅 돌아오는 길이었을 수도 있다.

커피 한잔 값이 없어 외상을 한 사람이라면,

집으로 돌아올 차비가 없어 선로를 되짚어 걷다가 만난 사고일 수도는 있을 것이고,

 

집에서 자기만을 바라보는 아내와 아이가 있고, 그들을 향하여 계속 크게 작게 돈이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가난한 가장이 중압감으로 택한 자살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극단적이긴 해도) 죽음은 선택이 아니라 당면이었을 수도 있을텐데,

유미코는 '왜 죽었을까?'하고 계속 되뇌는 것으로 자신의 짐작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환상의 빛'의 앞부분을 읽을때만 해도 나이듦과 죽음을 삶과 대비시키는 것이, 삶의 간난신고를 두드러지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사람을 속이기도 하고 사람의 혼을 빼가기도 하는 '환상의 빛'이란,

(소설의 처음에서 유미코는 사람의 어떤 마음을 속이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일상의 희망이나 행복 따위는 자기가 맘 먹는 것과는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

과거 속에 퍼질러 안주하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허상의 빛이 아닐까 싶었었다. 

 

<밤벚꽃>에서는 젊어서 남편과 이혼하고 분신 같은 아들이 죽어도,

아들의 1주기보다 자신의 나이듦을 서러워하는 아야코라는 화자가 나오는데,

자신을 아껴주시던 시아버지에게도 '제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참을 수 있을거예요'라고 말하던,

젊은 시절부터 자기 자신의 감정을 제일 앞이 두는 철부지같은 여자였다.

 

<박쥐>에서는 학창시절 가깝게 지냈던 친구가 죽었다는데도,

왜 죽었는지 궁금했지만 쫒아가 묻는 적극성은 발휘하지 못하고,

자기식대로 자기마음 편할대로 생각한다.

둘이 같이 있었던 순간에 각인되었던 박쥐들과 지금의 애인을 그 당시의 여학생에게 오버랩시키는 방식으로 조의를 표할 뿐이다.

 

<침대차>는 또 어떠한가?

 

네 편의 소설들이 나이듦과 죽음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산 사람은 살아지게 된다는 삶의 비루함과 구차함에 대해서 담담하게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이야기와 삶은, 산 사람 위주로 쓰여지는 역사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선악이나 잘ㆍ잘못 따위의 가치 판단을 하지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선악이나 인과응보의 고루한 가치관에 길들여진 나의 관점에서 봤을땐,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도 없었고, 그러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암튼,

삶과 죽음이나 부와 가난은 경계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의 완충지대가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반면,

행복이나 불행은 경계를 중심으로 한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놓고 바라봐야 하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얘기하고 있다.

현실이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음을, 타인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맘 먹기 나름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걸 잘못 해석하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누구는 코끼리의 코만을, 누구는 코끼리의 이빨을, 또 누군 코끼리의 다리를, 또 누군 코끼리의 꼬리를 만지면서...

코끼리라고 할 수도 있고, 개구리라고 우길 수도 있으니,

눈 감고 손의 감각만을 이용하여 자기 입맛에 맞게 각색하고 재단한뒤 '코끼리'라고 우기는건 아닌지, 돌이키고 되뇌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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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7 22: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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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1 09: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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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7 22: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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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1 09: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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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0 15: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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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1 09: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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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0 16: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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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1 1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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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1 13: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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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1 14: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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