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몰락 2 블랙펜 클럽 34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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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 'Fall of Giants'를 우리말로 '거인들의 몰락'으로 번역해 놓았는데,

2권까지 다읽은 지금 드는 생각은 '제(대)국들의 멸망'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 중에 거인이라 불리울 정도로 굵직한 거물들도 있긴 하지만,

몰락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살아남아 성장하는 사람도 있어서, 

제목으로 삼을만큼 일반화시키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싶은 반면,

Giant의 의미를 나라로 확장시키게 되면,

하나 같이 강대국이라 불리우던 나라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어떻게 쇠락하고 멸망하여 가는지 하는 과정을 보는데 무리가 없는듯 여겨져서 이다.

 

암튼 한세기 전의 일들인데,

오늘날의 현실이 묘하게 오버랩되어서,

읽는 내내 분노를 삭히고 열을 식히느라고,

책을 제법 오래 붙들고 있었다.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를 '제국'이라고 한단다.

내가 Giant를 제국이라고 해석한 것은 영국은 국왕이, 러시아는 짜르가 다스린 나라였지만,

그런 나라들 말고도 오스트리아나 독일, 프랑스 또한 그런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식민지를 거느리고 지배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그런 강대한 제국들을 멸망시킨 요인은 편견과 선입견, 독선, 망상 등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실제 힘을 가늠할 수도 없으면서,

헛된 상상이나 자존심을 내세워,

사람들을 오지로 내몰고 있는데,

 

자본주의 국가라서 돈 앞에 평등하다면 할말이 없지만,

자신이 선택하여 태어날 수도 없는 신분 체계나 남녀 성별 따위로 그리한다는 것은 한참 잘못된 것이고,

바로 그런 요인들이 제국들을 쇠락시킨 요인이지 싶다.

 

"이 나라 모든 남자에게는 원칙적으로 병역의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할지 말지 결정을 내릴 때는 모두가 참여하지 못합니다."ㆍㆍㆍㆍㆍㆍ"오만 명의 사상자 가운데 이만 명은 죽었습니다."ㆍㆍㆍㆍㆍㆍ

"누가 잘못했다는 게 아닙니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전쟁을 벌이자는 결정을 내릴 때 참여 못한 사람들이 전쟁터에 나가 학살당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겁니다."ㆍㆍㆍㆍㆍㆍ"또다시 우리가 전쟁에 나갈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모든 사람의 찬성 없이는 안 될 겁니다."(27쪽)

 

역사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어서 다소 복잡하지만, 적당히 통속적이어서 잘 읽힌다.

하지만 그런 통속적인 설정마저도 하나의 장치이지, 그냥 재미를 위한 것은 아니다.

 

이 책에는 두 명의 여자가 주요 등장인물로 나오는데,

피츠허버트 백작의 동생 '모드'와 빌리 윌리엄스의 누나 '에설'이다.

러시아에서 온 피츠허버트 백작의 아내 비 같은 경우는 다소 소극적이고 전형적인 인물로 묘사되는데 반해,

모드와 에설은 그런 의미에서 남녀 평등과 계급철폐를 부르짖게 되는 적극적인 여성으로 나온다.

물론 모드와 에설 사이에도 신분 차이 등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말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나중에 에설과 결혼하게 되는 버니의 경우,

'직관이 뛰어나다기보다는 이지적이었다.(132)' 라고 묘사될 정도의 인물인데도,

자신이 추대될 줄 알았던 자리에 아내 에설이 추대되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세기 전의 일이라면 이마저도 파격적일 수 있겠다~--;

 

지난 토머스 하아디의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를 읽으면서 영국사를 공부해서 영국에 대해서는 좀 나은데,

러시아가 지뢰밭이었다, 하나도 아는게 없었다.

 

책 속에서 뜨문 뜨문 레닌을 만나게 됐는데, 매력적이었다.

폼만 잡고 행동으로 옮기지도 않는 책속의 수많은 거물들의 탁상공론보다는,

다혈질이고 드세더라도 무엇인가 실행하려는 레닌 같은 인물이 훨씬 멋지게 느껴졌다.

 

그런데, 레닌은 나같은 소음인이 봐야만 매력적인 것이지 실상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켄폴릿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사혁명위원회로 이름을 바꾼 투쟁위원회는 트로츠키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에 압도당했다. 그는 큰 코에 이마가 넓고 테 없는 안경 너머로 툭 튀어나온 눈이 노려보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잘생기지 않은 남자였지만, 매력적이고 설득력이 있었다. 레닌이 소리를 지르고 약자를 괴롭힐 때 트로츠키는 설득하고 달랬다. 그리고리는 트로츠키가 레닌만큼이나 억세지만 그걸 더 잘 숨기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360쪽)

암튼 레닌을 자세히 알고싶어 '러시아 혁명사'라도 읽어 보고 싶게 만드는데,

그전에 우리나라의 역사를 아는게 먼저이지 싶다가도,

읽다보면 현실과 비교되어 눈물 날 것만 같다.

편안한 만족감이 그리고리의 온몸을 휘감았다. 전선에 있을 때 그가 꿈꾸던 광경이었다. 작은 방, 음식이 있는 식탁, 아기, 카타리나. ㆍㆍㆍㆍㆍㆍ" 이런 게 얻기 힘들면 안 되는데."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겨 말했다.

"무슨 말이에요?"

"당신이나 나나 멀쩡하고 튼튼한 몸으로 열심히 일하잖아요. 내가 원하는 건 이게 다예요. 방, 먹을 것, 하루 일이 끝나면 쉬는 것. 매일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해요."(51쪽)

책 속에서 한세기 전의 일을 묘사한 부분인데 오늘날의 현실이 오버랩 되어 어쩌지 못하겠는 걸 보면 말이다.

음식이 있는 식탁, 아기, 하루 일이 끝나면 쉬는 것...따위는 얻기 힘들면 안 되는데,

청년실업이니 조기명퇴니 해서 인구론이니 사오정이니 하는 신조어가 생겨나는 요즘 우리의 세태를 보면,

역사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세상은 영원한 도돌인가 보다.

 

역사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세상은 영원히 되풀이 되는 것이라면,

제국을 쇠락시킨 바로 그 요인으로 오늘날의 우리를 몰락시킬 것이니,

명심하고 경계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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