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다.

봄이 기다려지고, 초록이 기다려지는건 아줌 마음일뿐이고,

입춘 추위는 꿔다가도 한다고, 코끝이 맵다.

 

겨우내 죽음과 소멸을 맛봤다면, 이제 봄은 새로운 시작인건가?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모든 세상의 이치와 기운이라는 것은 그 패턴을 갖게 마련인데,

그 패턴이 영원한 도돌이처럼 보이지만,

간혹 비끼거나 어긋나 보일 때도 있다는걸,

냉담가계의 퇴계를 엿보면서 깨달았다.

 

그럴때, 한걸음 떨어져서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세상은 더 큰 원을 그리면서 도돌이더라.

이치와 기운은 그대로이더라.

그걸 어려운 말로 하게 되면, '프렉탈'이론 쯤 되려나?

 

 

 과학하고 앉아있네 - 전2권
 원종우.이정모.이명현 지음 /

 동아시아 / 2015년 1월

 

 

 

 

그리고 '과학하고 앉아있네'를 읽었다.

과학하고 앉아있네, 이책에선 이 '관점'에 대한 부분을, 점 더 명확하고 쉽게 얘기한다.

 

 

 

 

 

 

 

원종우-x,y,z축으로 해서 3차원으로 말이죠?

이명현-x,y,z축으로 하고, 그 0점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우주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거였는데, 상대성이론이 나오면서는 어떤 기준점이 중요한 것이지 0점이 중요한 건 아니게 되었어요. 예를 들자면 팽창을 하는데, 이 팽창은 서로가 팽창을 하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이렇게 앉아 있지만, 우주 공간이 팽창한다는 얘기는 나는 가만히 있는데 이 바닥이 점점 커지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가만히 있지만 서로가 멀어지잖아요. 그래서 서로가 멀어진다는 개념이 중요해져요. 그러면 나를 기준으로 보면 내가 정지해 있고, 모든 게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사람을 중심으로 보면 그 사람은 가만히 있다고 생각하고 나머지가 멀어진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되면 중심이 어디냐, 기준점이 어디냐 하는 문제가 생기지만 그건 관측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죠. 그러니까 절대적인 기준점이 없다는 식의 패러다임으로 팽창 우주, 빅뱅 우주론이 나오면서 바뀌어버렸죠.

원종우-그러니까 좌표라는 것이 절대적인 의미는 없어진 것이죠.(2권, 106~107쪽)

 

 

 

 

 

그러니까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고, 필요도 없고,

기준이라는 것도 '비롯함'이냐, 말미암음'이냐 하는 방향성을 정할 때나 필요한 것이 된다.

 

절대적인 것이 없다는 깨달음은 '신'의 존재를 곰곰이 생각하게도 하지만,

세상에 인간만이 우월하다는 인간 우월주의를 깨뜨려주었으며,

아울러 자연 앞에, 우주 만물 앞에, 인간이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깨닫게도 해주어,

내 자신을 낮추고 겸손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이걸 깨달아야, 스티븐 호킹 박사의 "세티 프로젝트 하지 말자, 외계인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라는 말이, 맥락이 있는 얘기라는 걸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젊었을때부터 외계지적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 굉장히 긍정적으로 사고하던 사람이란다. 호킹박사의 생각은 우리 이런 생물학적 몸뚱이를 갖고 있는 인간이란 종은 얼마나 존속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 회의를 가졌고, 조만간 우리는 기계, 로봇, 사이보그, 이런 것들한테 우리 종의 아이덴티티를 뺏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그렇다면 우리가 선수를 치자. 우리가 자발적으로 기계인간이 되자는 그런거, ㅋ~.

 

근데, 이런 얘기의 맥락을 알게 되면,

그동안 열광하면서 읽었던 책들,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 시리즈 라던가, 테드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따위가 심드렁해지니 주의할 필요는 있겠다.

 

다시 얘기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입춘대길이라고 해서,

새로운 시작에서 죽음으로의 도돌이인 프랙탈 이론을 떠올린 것은 차치하고 라도,

퇴계를 떠올린 이유가 있었다.

그가 '활인심방'등 양생에 힘쓴 사람이어서 이기도 하지만,

그동안은 매화를 엄청 좋아해서, 매화와 연애를 했다고 표현될 정도였다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어제 어느 편지글에선가는 '매화'처럼 날도 따뜻해지기전에, 홀로 두드러지면 목숨을 연명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천지분간을 못하는 것으로 얘기하고 있어서였다.

 

어찌보면 비겁해보이기까지한 그 목숨보존의 방법이,그러니까 퇴계의 장수 비결이었던게다.

두드러지지 않는것.

 

또 한가지 43세에 '주자대전'을 손에 넣게 되자, 관직에서 물러나서 낙향했다고 되어 있는데,

그러면서 이상하 님이 해설을 붙이시길,

43세면 그때 나이로는 중년이 아니라, 노년으로 접어든다고 하는걸 보고, 쫌 충격을 받았었다.

43세를 지난지 두해나 지났으니, 난 할매여도 꼬부랑 할매인 셈이다, ㅋ~.

 

근데 충격은 잠시,

관점, 즉 기준을 바꾸니까 이내 느긋하고 넉넉해진다.

 

이제는 자체발광이나 낭중지추 따위는 꿈꾸지 않는다.

그나마 얼마안되는, 내가 가졌던 색깔의 채도와 명도를 낮추어 주변과의 조화를 꿈꿔 본다.

색깔 자체가 독특해서 채도와 명도만으론 조화가 어림도 없다 싶을땐,

색을 흐릿하고 희미하게 다 빼고 보는 거다.

 

그래도 얼마든지, 좋고 충분하다.

 

입춘이다.

고은 시인은 '머슴 대길이'라는 시를 오늘을 위해서 썼나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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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슴 대길이

                 --고은--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

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멱 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 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리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 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 오듯 읽었지요.

어린아이 세상에 눈 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대길이 아저씨더러는

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요.

살구꽃 핀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홑적삼 큰아기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하고

지게 작대기 뉘어 놓고 먼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

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소리 들었지요.

 

찬 겨울 눈 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었지요.

그가 말했지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불빛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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