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한입 - 박찬일의 시간이 머무는 밥상
박찬일 지음 / 창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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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노중훈의 여행의 맛'을 듣는데,

'박찬일의 맛'코너에서 신년 벽두인데도 불구하고 스파게티를 소개한다고 하길래,

허를 찌르는 메뉴선택에 낄낄거리고 웃었었다.

 

박찬일 하면,

여러가지 타이틀로 불릴 수 있지만,

뭐니 뭐니해도 이탈리아 음식을 하는 요리사이다.

그 이탈리아  음식을 요리 하는데,

우리나라 식재료를 사용했는지 어쨌는지,

어떤 식으로 우리 입맛에 맞게 재탄생시켰는지, 는 차치할 문제다.

그렇게 본다면 그가 이탈리아의 대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스파게티'를 소개하는건 어쩜 당연지사인지도 모르겠다.

일주일에 하루 쉬는 그는, 그 시간에 타자를 쳐야 하기 때문에 집에서 요리를 할 시간이 없단다.

그런 그가 오직 단 하나의 요리를 하는데, 그게, 딸아이의 요청으로 만드는 풍성한 쏘스의 토마토쏘스 스파게티라는 걸 보면 말이다.

 

요번 책은 '뜨거운 한입'인데,

실은 '백년식당'과 며칠 간격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와서 내용이 빈약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띠지를 통해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박찬일의 든든하고 맛있는 문장들' 이라며,

인생이 차가우니 밥은 뜨거워야 한다고 역설하길래,

설레발이 아닌가 싶었고,

그렇게 의심을 할게 아니라 직접 읽어보자 하고 집어들게 되었다.

 

그런데, 책의 내용이 빈약하지 않을까 싶었던건 역시나 나의 기우에 지나지 않았고,

스마트폰의 NFC기능을 이용해서 '더북'이라는 앱을 내려받으면,

박찬일이 직접추천하고 시연한 10가지 이탈리아 요리 동영상을 볼 수 있었다.

 

동영상을 통하여 박찬일의 요리사로서의 소신을 엿볼 수 있었던게,

신선하고 좋았다.

'알리오올리오 뻬뻬론치노 스파게티'를 시연하는데, 재료 선별하는 과정부터 남다르다.

'알리오'는 마늘, '올리오'는 올리브 오일, '뻬뻬론치노'는 매운 고추의 일종이란다.

마늘 망태기에 코를 박고 숨을 들이마시는 저 모습을 보다가 '흡~'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손에 모자이크 설정이라도 하면,

흡사 장미꽃 향기에 취해있는 모습이다, ㅋ~.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만져보고 그리고 맛보고,

온몸의 감관과 촉수를 열어 느끼려고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애인과의 열애장면도 아니고,

금테를 두른 마늘도 아니고,

이태리 요리에서 마늘의 쓰임을 설명하는 중이다.

 

이태리 요리에 마늘은 대부분 들어가지만, 많은 양이 들어가지는 않는단다.

마늘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다른 재료의 맛을 가리기 때문에,

재료를 은근히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는 말을 흘리면서,

좋은 요리사는 재료를 사는 과정에서부터 참여한다고 하면서,

이탈리아엔 깐마늘이 없다고 딱 한마디 한다.

 

요즘은 누군가 다 해준걸 쓰게 된다.

기계화되고 분업화되어, 요리는 편해지지만 재료에서 멀어지게 된다.

 

언젠가도 얘기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난 글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수식이 화려한 것 보다는 소박하고 수더분한걸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박찬일의 미문은 넘치는 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박찬일이 쉽게 이해가 가는 것은 이태리 요리(=양식)라고 해서 럭셔리한 재료를 쓰거나,

어려운 조리법을 구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소박하고 수더분한걸 좋아한다는 건 바꾸어 말하면, 길들여진 것에 익숙하다는 얘기다.

그가 소개하는 재료나 조리법이,

우리 땅에서 나고 우리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여서 그런 것도 있고,

그가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만져보고 맛본 그 경험과 느낌을 현실감 있고 구체적으로 형상화시켜 전달하는 재주가 뛰어나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고, 먹어보지 못했어도 충분히 공감을 하겠는 이유이다.

 

길가에 막 파프리카색 양귀비꽃이 피어날 게절이었지만, 알프스는 아직 뼈마디를 허옇게 드러내고 있었다. 눈썹 위로는 아예 하얀 지붕을 이고 줄지어 선 봉우리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흰 지붕 위에 토마토쏘스를 뿌린 듯 붉은 저녁 햇빛이 물들어가고 있었다.(20쪽)

경치를 묘사하는데,

색상의 선명한 대비만을 통하여...이렇게 친근하면서도 발랄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라면을 다시 먹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컵라면이 처음 나왔을 무렵부터,

대입 공부를 하며 컵라면을 너무 많이 먹었던 터라,

한동안 라면의 스프 냄새만 맡아도 입맛을 잃었었다.

 

라면의 종류가 버라이어티 해지면서, 다시 라면을 찾게 되었는데,

라면을 끓일때 될 수 있으면 바닥이 얇은 냄비가 좋다.

봉지에 나온 조리법대로 시간과 물의 양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라면을 4등분으로 잘라서 넣는데,

그러면 미식가임을 자처하는 울아들은 맛이 없다면서 툴툴거린다.

목을 타고 '스르르~' 넘어오는 식감이 없단다.

 

그걸 이 책에선 이렇게 얘기한다.

"빠바로띠가 말이우, 인생이 살 만한 건 때가 되면 밥상에 앉아 무언가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수."

ㆍㆍㆍㆍㆍㆍ

스스루(후루룩), 일본은 국수를 소리 내어 먹는다. 그것으로 입술의 육감적인 쾌감을 얻는다. 저 사누끼 사람들이 국수가 놓인 탁자에서 목구멍까지 우동 면발이 단 한번도 끊어지지 않도록 '스스루'하는 것을 진미로 치는 건 그런 이유다. 입술에서 얻는 쾌감이 식도로 이어지는 탐미다.(43쪽)

울아들이 말하는 그 식감이라는 것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되리라 누가 알았겠는가 말이다.

음식은 경험이기는 하지만,

그 경험을 뒷받침해줄만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 지식들이 그저 '~다 카더라.'하는 선에서 끝나고 말지,

음식과 버무려져 하나의 사연으로 재탄생하게 되는지는,

그 지식이 얼마나 탄탄한가에 달려있는 것 같다.

요리만 계속 하는게 아니라,

꾸준히 공부도 해야 하는 까닭이다.

 

 

암튼 이 책에 나오는 여러가지 재료와 요리법 중에 제일 좋았던 것은 '연등천 45번집 기 여사 기절 전말기'이다.

스무살에 시집와서 30년을 지켜온 '아짐'이 여전히 이 집에서 안주를 만든다. 그이의 부엌은 마법 같다. 포장마차이니 변변한 설비도 없고, 냉장시설도 빈약하다. 그러나 오직 30년을 지켜온 그이의 솜씨와 물을 물어보면 실례인 싱싱한 해물이 마법의 재료다.

  이집에는 먹는 법이 있다. 입 다물고 주는 대로 먹는 게 고수고, 먹고 싶은 걸 줄줄이 외는 건 중수다. 제일 하수는 '이거 물 좋아요?'하고 되묻는 이다. 그러면 아짐은 딱 한마디 하신다.

  "물 안 좋으믄 저 개천(연등천)에다 확 버려야쓰것네."

ㆍㆍㆍㆍㆍㆍ

아짐의 요리 배열은 미슐랭 스타 쉐프 뺨도 쳐버린다.(59쪽)

명함도 못내민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봤어도, 뺨을 친다는 얘기가 이렇게 어울리게 들리긴 처음이다.

입담이 걸쭉하고 구수하다.

 

음식은 혀의 기억을 불러오고, 그것은 충동이 되기도 한단다. (200쪽)

그걸 박찬일 식으로 표현해 보자면 언젠가의 책 제목이기도 했던 '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일텐데,

난 이말에 딴지를 걸고 싶어진다.

'맛의 대부분은 추억이다'라고, ㅋ~.

 

맛을 이루는 것은 대부분, 아니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추억과 연관된 것이 아닐까?

 

물론 이 책에도 촌놈인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럭셔리한 요리가 나오는데,

그게 '어란'이다.

'어란'은 요리의 재료로는 나랑 이질감이 들지만,

대신 요리에 대한 철학이 나랑 같아서 애정하고 몰입할 수 있었다, ㅋ~.

 

원래 원재료가 특미가 있다면, 요리는 간단할수록 좋다. 송로버섯은 그저 저며서 빠스따나 전채요리에 얹는 것이 요리의 전부고, 캐비어도 아무런 가공 없이 호밀빵에 얹거나 달걀 위에 얹어 먹는다. 그것이 절품(絶品)에 대한 예의다.(240쪽)

 

박찬일과 나의 차이라고 할 것 같으면,

난 원재료의 특미를 알아차리고 말고 할 겨를도 없이 모든 요리를 초간단하게 한다는 것이다, ㅋ~.

 

또 한가지, 버섯류는 좋아해서 웬만하면 다 먹어보려고 하는데,

저 송로버섯은 '한니발'의 마지막 만찬 장면에 등장해서,

묘한 선입견으로 먹지 못하는 음식이다.

 

개인적으로,

편식을 심하게 하는데,

조개도 잘 먹고, 밀가루도 잘 먹고, 이탈리아 음식의 재료가 되는 것들은 잘 먹는다.

육류는 안 먹어도 달걀은 잘 먹는다.

그러니 조개로 조개탕을 끓이고,

밀가루로 파전을 굽고

달걀로 몽글몽글 달걀찜을 만들어서,

이탈리아 음식의 재료를 갖고,

양철나무꾼표, 추억의 역사를 새로 쓰겠다, 뭐 그런 얘기다.

 

사람과 사람 사이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데, 입으로 할 수 있는게 세가지란다.

대화를 나누고,

따뜻한 음식을 나눠먹고,

나머지 하나는 상상에 맡기겠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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