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드롭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데니스 루헤인은 내가 참 좋아하는 작가이다.

읽으면 재미있고 즐겁다기 보다는, 진한 감동이 밀려온다.

미국 작가이고,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곳도 미국의 보스톤으로 나와는 동떨어진 곳인데도 불구하고,

깊게 몰입하고 감정이입하여,

마음 한켠이 아련하고 안쓰러워 어쩌지 못하게 만들어 놓는다.

 

소설이라는게 플롯이나 설정, 캐릭터 묘사등만을 따라가다보면 얼마든지 낯설어질 수 있지만,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다보면,

다른 것들은 소설을 이해하는데 보조적인 수단에 지나지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플롯이나 설정, 캐릭터 묘사 따위는 나라마다 지방색 마다, 또는 개인의 문체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겠지만,

등장인물의 감정선이라는건 일정한 패턴을 그리게 마련일 것이고,

이건 바꾸어 얘기하면,

쓸쓸하고 외로움을 표현하는 방법은 나라마다 지방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누구는 쓸쓸하고 외로움을 느끼는 그 상황에서, 혼자여서 단출하니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테니 말이다.

 

사람 사는 세상, 더하고 덜하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쓸쓸하고 외롭기로 따지면 다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성공한 사람은 과거를 감출 수 있지만, 낙오자는 바로 그 과거 속에 익사하지 않기 위해 여생을 발버둥 칠 수밖에 없다'

말에 대입시켜보자면,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일수도 있고, 감정표현을 잘 안하는 사람일수도 있고, 자제력이 뛰어나서 잘 참는 사람일수도 있지만, 매정한 사람일수도 있다는 말도 된다.

바꾸어 말하면, 감정의 기복이 없는 듯 보이고 감정표현을 잘 안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삶에서 성공한게 아니라,

감정 컨트롤에 성공한 것일 뿐이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난 이 책에 나오는 바텐더 밥에게 금세 감정이입할 수 있었는데,

쉽게 길들지 못하는 거나, 한번 길들인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나, 하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들이,

또 다른 날 보고 있는 듯 꼭 닮아서였다.

밥에게는 다행이었다. 그는 바텐더 일을 좋아했으며, 당연하게도 예전의 거친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올해는, 28일이 플래츠 거리의 쓰레기 버리는 날이다. 이른 아침 사람들은 습관처럼 쓰레기통을 갓길에 내놓고 쓰레기차가 가져가도록 했다. 밥은 인도를 따라 걸었다. 사람들이 내버린 물건들. 재미있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장난감들은 너무 쉽게 망가졌다. 어떤 물건들은 아무 문제없이 작동하면서도 교체되는 운명을 겪어야 했다.ㆍㆍㆍㆍㆍㆍ밥은 쓰레기 더미를 볼 때마다 폭력에 가까운 탐욕을 느껴야 했다. 애초에 금했어야 할 음식을 먹고 똥을 싸지른 느낌.

밥은 특유의 외로움, 그리고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상대와 5분 이상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갈 능력의 부재 탓에 이런 의례적인 일에서 조차 남달랐다.(19~20쪽)

난 전자제품의 사용설명서를 읽는게 취미라고 할 정도로 새로 나오는 제품들에 관심을 보이지만,

반면 길들여진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이건 사물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규칙이어서 한번 믿어버린 사람은 팥으로 메주를 쑤어도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고, 배신을 당해도 웬만하면 나의 안목이라며 감수하는 성향으로 발전하였다.


너무 행복하면 마냥 좋아할게 아니라,

최고 정점을 찍고 이제 추락할 일만 남았다는 예시이니, 대비할 줄도 알게 되었다.

행복은 마브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반면에 깨진 행복은 두 팔로 감싸 안을 가치가 있다. 늘 함께 보듬어 안아주기 때문이다.(78쪽)

 

그런 의미에서,

밥은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는 상대에게 5분이상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갈 능력의 부재를 가졌다고 표현되어지지만,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일상적인 대화가 되지 않아서 '배신 당할 필요가 없는' 개와의 관계에서는, 밥이 먼저 무장해제하고 경계를 허물고 소통하고 공감하려고 손내밀고 다가간다.

먼저 개를 향하여 무장해제할 수 있게 된 밥은 사람을 향하여도 경계를 허물고 다가갈 수 있게 된다.

밥도 나디아가 어딘가 무심하다는 정도는 알았다. 자기 집에서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 개를 만났건만 나디아는 그 사실에 놀라지도 흥미로워하지도 않았다.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이 지상에 있는 누구나 어느 정도씩은 무심하지 않던가? 오히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을 게다.(87~88쪽)

 

비로소 '두근두근'이라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 때문에 지금 '두근두근'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 있을 때도 그랬고 마음 속에 있을 때도 그랬고, 지금처럼 서로 닿을 만큼 가까이 있을 때도(한 번도 접촉은 없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공개 장소에서 전화를 사용했던가요? 다들 부스에 들어가 문을 닫고 최대한 속삭이듯 말했죠. 지금은? 지금은 공중화장실에서 대변을 보면서도 떠들어 대요. 도무지 이해 못 하겠어요."

  나디아가 웃었다.

  "왜요?"

  그녀가 사과의 표시로 한 손을 들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 흥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제대로 이해하는지조차 모르겠는걸요. 어쨌든 공중전화가 내 흉터하고 무슨 상관이죠?"

  "아무도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누구 할 것 없이 자기 얘기만 씨불이느라 몸살을 앓죠. 아, 미안해요. 숙녀 앞에서 몹쓸 단어를 썼나 봅니다."

  그녀가 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계속해 봐요."

  그가 한 손을 귀 옆으로 올리다가 불현듯 깨닫고 얼른 내렸다.

  "누구나 상대한테 얘기하고 싶어해요. 뭐든 자기 얘기를 하고 또 하고, 하고 또 하는 거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정체를 보여 줄 때가 되면, 찔끔 움츠리고 말아요, 나디아.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러니까 더 많이 떠들어 위장하는 겁니다. 해명이 불가능한 일을 해명하려는 거예요. 그 다음엔 다른 사람에 대해 심하게 떠들어 대죠. 도대체 말이 됩니까?"

(138~139쪽)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해 주는 남자를 위해 화장을 한다는 말이 이런 연유에서 탄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ㆍㆍㆍㆍㆍㆍ커피 한 잔 하는데 나를 바라보더라고. 정말로 나를 보고 있었어."

"나도 당신을 봐."

롬지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보는 건, 당신과 비슷한 일부뿐이야. 에반드로, 내 최고의 매력이 아니라. 미안. 하지만 그 사람? 그 사람은

달라. 나를 볼 때면 늘 최고의 나를 찾아내거든."(219쪽)

 

그런 의미에서 요즘 '이경원'이라는 사람의 '첫눈에 반하지마라'를 읽고 있는데,

난 '골상학'책인줄 알고 집어들었는데 '나에게 맞는 배우자 찾는 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첫눈에 반하는' 그 사랑의 유효기간은 3개월에서 1년이니,

이것저것 신중하게 살펴서 나에게 맞는 배우자를 찾아라, 뭐 그런 얘기이다.

그러면서 '인생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있다.'라고 끝맺고 있다.

 

그런데, 내 개인적인 생각은 이 사람이랑은 약간 다르다.

이것저것 신중하게 살피느라고 첫눈에 반하는,

즉 마음이 시키는대로, 감성에 의해 움직이는 그런 사랑 한번 못해보고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고 한들,

그리 행복한 인생이겠느냐 하는 것이다.

차라리 마음이 시키는 대로, 첫눈에 반하는 불같은 사랑이라도 한번 해보는 것이 후회없는 삶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스포일러를 핑계로 제쳐 두고,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이라는 것과,

그런 외롭고 쓸쓸한 우리들은 나와 공통점을 지닌 상대에게서 매력을 느끼게 되는지 어떤지는 차치해 두고,

보통의, 평범한 나에게서 최고의 매력을 찾아내 주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면 난 그 사람을 위해 기꺼이 화장을 하겠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