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돈 PD의 운명, 논리로 풀다 - 운명에 대한 과학적 논리석 해석
이영돈 지음 / 동아일보사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내가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부류가 아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운명론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집안이나 부모를 자신이 택해서 태어날 수 있는게 아닌데,

운명을 초자연적인 힘인양 여기고,

그게 사람에게 작용하여 좌지우지한다고 하면,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특출나게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열심히 묵묵히 노력하는 것 말고는 딴 재주가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의기소침해지기 십상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나이를 이만큼 먹으며 살다보니까 운명론에 의지하여 사주나 관상을 보고 어쩌고 하지 않더라도,

현재 행동거지나 정신상태, 마음가짐을 보면 그 사람이 과거 어떤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지 뻔히 보인다.

이건 내가 신에게 계시나 응답을 받거나 접신의 능력이 있어서도 아니고,

사주나 관상을 보는 특별한 공부를 하거나 주역을 공부한 것도 아니다.

굳이 까닭을 대보라면, 언젠가도 얘기한적이 있는 '부분은 전체를 대표한다'의 '프랙탈이론'쯤 되겠다.

주역64괘의 경우 '화수미제'가 아니라 '건위천'으로 옮아가는 영원한 도돌이인것 처럼 말이다.

어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오늘이라는 '순환' 속에서, 어제와는 다른, 아주 미세하고 미미한 '변화'가 생기는데,

그 순환속에서 변화를 끄집어 읽어내면 되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쌓인 순환 속에서 변화를 읽어내는건,

다시한번 얘기하지만,

신에게 계시나 응답을 받거나 접신의 능력이 아니라, 케이스스터디의 회수를 늘려 대표성을 높이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정확도가 높아진다는 얘기는 바꾸어 말하면, 예측이 어긋날 확률이 줄어든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건 하루 아침에 되는건 아니고,

세월이 흐르면서 케이스스터디가 무한반복되는것 뿐이니까, 경험이나 연륜쯤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삼라만상이라고 하면서,

그 수많은 사람의 체질을 네가지로 분류해낸 사상체질에 의한 처방이나

A, B,O,AB 혈액형에 의한 분류법을 가지고 사람의 성격을 구분짓겠다는 것은,

인간의 다양한 체질이나 섬세한 성격 따위를모호하게 흩트려놓거나 뭉뚱그려놓을 위험이 있으니 주의하여야 겠다.

 

옛날엔 부족장이 정치적 지도자였고 무당이 정신적 지도자였단다.

무당은 닥쳐올 자연재해를 미리 예측해 부족민의 안녕을 도모했으며 예방하고 환자를 치료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고, 더구나 통신매체가 발달하지 않아서 그때그때 정보를 전달할 수 없었던 옛날에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생각되었고,

그리하여 무당과 역술가들이 그 영역을 담당했겠지만,

지금은 과학이 발달하고 통신매체가 발달하여 실시간으로 정보전달이 이루어져서,

그게 자연스런 현상이란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역술가와 무당을 찾는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역술가와 무당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운명이 맞고 안 맞고를 떠나 운명 그 자체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5~6쪽)

그렇다면 오늘날, 역술가와 무당을 찾는 이들의 경우,

현재 행동거지나 정신상태나 마음가짐을 보면 그 사람이 과거 어떤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지 알 수 없고 볼 수 없어서 이들을 찾는 것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행위가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는, 뻔히 내다보이는 자연스런 현상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그것이어서,

역부족이었다는 면죄부가 필요한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그런 면죄부를 주는게 자연인인 사람인것 보다는,

때때로 초자연적인 어떤 힘을 발산하기도 하는 역술가나 무당이었을때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난 이걸 현대인의 외로움에서 답을 찾고 싶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사는 듯 하지만,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얘기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얘기를 하면 들어줄 귀가 없다.

홀로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이다 보니,

자신의 미래를 예측해 어찌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잠시 무장해제하고 쉴 곳을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가 무장해제하고 쉴 수 있는 곳이나 사람이,

우리 주변의 사람이나 자연인것 보다는,

어떤 초자연적인 어떤 힘을 발산하기도 하는 역술가나 무당인것이 낫다고 생각하는게 아닐까?

 

운명이 맞고 안 맞고를 떠나 운명 그 자체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역술가가 제시하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그런 의미에서, 가짜역술가를 양산하는 것도 어쩜 우리 자신들인지도 모르겠다.

가짜 역술가는 이 짧은 대화를 통해 손님 1의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아픈 사람이 본인이나 자식이 아니라 시부모나 혹은 부모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눈치챘다.ㆍㆍㆍㆍㆍㆍ가짜역술가는 손님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털어놓도록 하기 위해 한마디만 던졌을 뿐이다.ㆍㆍㆍㆍㆍㆍ그 뒤는 손님들의 몫이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걱정을 그 자리에서 솔직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역술가가 제시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상담하는 내내 그들 스스로가 이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ㆍㆍㆍㆍㆍㆍ사실 이들은 자신의 상황을 말하기 전부터 표정과 동작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ㆍㆍㆍㆍㆍㆍ인간이 구사하는 언어에는 '말'뿐만 아니라 표정, 동작까지 포함된다. 작정하고 상대방을 속이려는 의도가 없는 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미세하게 혹은 몹시 솔직하게 드러나게 마련이다.(54~55쪽)

암튼, 이 책에서는 운명이나 사주 외에도 삶에 수많은 변수가 작용한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부모복, 관상 등과 같은 것들이 운명을 좌우하는 변수가 된다(32쪽)는 것이다.

동일한 사주를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각자의 삶이  다른 이유는 이런 것들 때문이란다.

 

기존의 역술가가 쓴 책이 아니라서 그런지,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나 내용이 흥미로웠는데,

그중 쌍둥이의 사주 뽑는 법엔 이런 코멘트가 달렸다.

그것은 쌍둥이의 사주는 뽑는 방법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쌍둥이는 나란히 있지 않고 마주 보는 형상이라 한쪽은 양을, 다른 한쪽은 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한날한시에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라 해도 똑같은 인생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사주라도 부모나 관상 등에 따라 운명이 바뀌고 쌍둥이는 사주를 뽑는 방법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인생을 살 수 없다는 역술가들의 논리,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35쪽)

예를 들면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부모복과 관상도 같을텐데,

그게 운명을 좌우하는 변수로 작용하지 못한다면,

반대로 일란성 쌍둥이들을 역추적하여 유추해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말했던 현재 행동거지나 정신상태나 마음가짐 같은게 달라진 원인을 역추적하다보면,

배우자나 친구, 생활환경, 심지어 버릇 까지도 그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가 되지 않을까?

 

이 책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운명은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운명 안에는 노력(부적을 쓰거나 개명하는 것,제왕절개)도 포함되는데,

때문에 노력을 통해 미래가 바뀌었다면 그것 또한 그 사람의 운명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사주는 바뀌지 않아도 사주를 해석하는 방법은 바뀌기 때문에,

그에 따라 운명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 역술가들의 정설이라고 한다.

이는 '애당초 완벽하게 좋은 사주란 없다'라는 말이기도 한다는데,

때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건,

이후에도 얼마든지 그 기준점이 바뀔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매사에 긍정적이고 유연해야 겠다.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궁합과 관련된 것이었다.

 '네 인생의 20%는 양보해라'라는 뜻에서, '80점이 가장 좋은 궁합'이라는 얘기도 그랬지만,

사주 상의 궁합은 안좋은데, 실제 잘 살 경우 경우의 해석법이 흥미로웠다.

"이분들의 사주에 애정운이 안 좋은 걸로 나왔죠? 그런데 전 배우자와 한 번 이혼한 것으로 액땜을 한 거죠. 그럼 좀 더 나은 인연을 만날 가능성이 있는 거고요. 말 그대로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꼭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개인의 사주 복에 따라 차이가 있거든요. 또 심성의 차이가 있기도 하고요."

"심성의 차이요?"

"이를테면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되돌아보는 거죠."

"그렇다면 궁합은 왜 보는 겁니까?"

"일조의 참고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궁합이 좋게 나오면 좋은가 보다 하고 서로 넉넉한 마음으로 살고, 궁합이 나쁘게 나오면 서로 더 조심하고 노력하는 거죠."(106쪽)

 

이 책을 읽고,

본인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어쩜 운명이나 사주 같은것이 아니라, 매사에 긍정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가 변하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천재지변이나 질병, 원인을 알 수 없는 불행 요소 등 초자연적인 형상으로 일컬어지던 것들을,

과학적으로 예측하고 방지할 수 있게 되었다.

 

논리적으로 예측하고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는 과학을 따를 것인지,

마녀 사냥을 일삼는 미신이나 주술을 믿고 신봉할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겠지만 말이다.

 

다만 한가지,

운명도 그렇고 사주나 관상도 그렇고,

산사람을 위해 만들어진것이지,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홀로 외롭고 고독해서 몸부림치다가,

자신의 나은 미래(홀로가 아닐지도 모르고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를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가 아닌,사주나 관상에 의지하게 되지 말고,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 매사에 긍정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살도록 힘써서,

운명에 지배당하는 사람 말고,

운명 까짓것,

스스로 지배하고 개척하는 사람이 되자, 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