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기 -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마라
김재일 지음 / 책앤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넷 상에서는 호 ㆍ불호가 명확한 거침없는 성격이지만, 실상에서는 그러지 못했었다.

좋으면 좋다, 싫어도 싫다 감정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뜨뜻미지근한 성격으로 비춰졌을 수도 있다.

내가 넷상에서 호기로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익명성에 기댔기 때문이었지 싶은데,

이 익명성은 대표성이 없는 대신,

가변적이고 유연하여 호 ㆍ불호 어느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느낌보다는 중간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이유에서, 좋은 책을 만나면 좋다고 떠벌릴 수 있었지만, 사람을 향하여선 그럴 수가 없었는데,

한쪽으로 치우쳐서 극단적이라는 말을 들을까 두려웠었다.

그러다보니, 중간이  습관이고 미덕으로 고착되어, 너무 좋을땐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누군가의 4년여 동안의 작업을, 결과물을, 단 며칠만에 후다닥 읽는 것도 그랬지만,

읽고 좋다 어떻다 할 수 있는 깜냥도 아니면서 뭐라고 한다는 것 자체가 이 책에 누가 되지나 않을까 싶어 한참 망설였다.

 

전에 '장르소설 나부랭이'라는 표현이 그랬던 것처럼,

이것도 오해의 소지가 있어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내가 만화책까지 사서 읽는다고 하면 돈이 남아도냐고 하며,

흔히 애들이나 철 없는 어른들의 전유물이라고들 하는데,

이 책은 중국집 배달원들이 드는 철가방이 아니라, 철이 좀 들었거나 들고 싶은 사람들이 읽기에 알맞은,

모처럼 책값이 아깝지 않은 그런 책이다.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읽어도 좋겠고,

아무렇게나 펼쳐서 한꼭지씩 읽어도 좋은 것이,

삶이 지치고 힘든 이들이라면 쉼표를 찍듯,

공감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느낌표를 나눠 갖듯, 무한 위로와 격려가 될 그런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크게 깨달은게 있다.

하나는 선하고 착한 사람일수록,

그 사람이 너무 확고한 신념이랄까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289쪽)

 

이건 나와 내주변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니, 나도 예외일 수는 없는 얘기인데,

'끼리 끼리 어울린다(類類相從)'고 책을 좋아하다보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주변 사람들도 책을 좋아한다.

책이 아니어도 내 나이 또래에 이르면,

자아를 구축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굳건히 하느라 주변에 무언가 방어막을 치게 되는데,

자아를 구축하는 걸로도 모자라서,

책을 통하여 얻은 확고함을 옵션 내지는 덤으로 장착한듯,

웬만해선 끄떡도 않는 것이 신앙이고 신념이라는 방어막이다.

그러니까 책이 신앙이고 신념이 되는 셈이다.

 

책을 통하여 자아를 구축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굳건히 한 사람들의 경우, 웬만해선 일상에 굴곡이 없다.

소신과 신념이 하루 아침에 뒤바뀔 일이 없고 자아가 급물살을 타고 변할 일도 없으므로,

맨날 그날이 그날 같은, 한결 같은 사람이라는 소리와 더불어 선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그 얘긴 확고부동, 초지일관과 동의어지만, 고집불통, 고정관념, 편견과도 같은 의미이다.

 

그러니까, 부조리나 불의를 보면 분개하는게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인듯 보이지만,

선하고 착한 사람이 만들어낸 확고한 가치관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과하여 극단으로 치닫다가는 만신창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여야 한다.

힘에 부치다고 칼자루를 상대에게 뺏기거나 다른사람에게 쥐어주어선 안된다.

그러기 위해선 유연해야 한다.

유연해야 자신이 먼저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사랑에 대해 그동안 내가 기지고 있던 편견을 여실히 무너뜨려주었다.

난 그동안 '사랑한다'는 말에 인색했다.

사랑한다는 말이 내게는 형용사도 , 동사도 아닌, 외계어 정도 였다.

 

그런데, 이 책에선 사랑은 일단은 꿀떡꿀떡 받아먹을 일이란다.

그리고 미리미리 목구멍을 늘려놓아야 한단다.

목구멍이 보통 크지 않고서는 쉽게 삼킬 수 있는 말이 아니란 의미는,

곱절로 더 크게, 기꺼이 돌려줄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겠다.

사랑은 그래서 직접 해보아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사랑은 연습도 필요한,

일종의 행동 강령이다.

 

만화책이니까 그림에 대한 얘기도 해야겠지만,

그림만 언급하기엔 만화의 내용들도, 그 옆의 시같기도 하고 산문같기도 한 글귀들도 참 좋았다.

이 글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라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하여,

이 사람을 명명하는게 제한이 될까봐 유려가 될 정도이다.

내공이 깊다.

 

그렇다고 사람이 아는게 많고 내공이 깊다고 하여, 그런 언어나 화법, 문체를 구사하는건 반대이다.

오히려 아는게 많고 내공이 깊을수록,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그건 나이와 동의어는 아니다.

요즘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 한 친구가 나온다.

얼굴이 잘 생긴것도 아니고, 목소리가 (내가 듣기에 좋기는 하지만) 옥타브를 넘나드는 신의 헤택을 받은 목소리도 아니다.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물기 먹은 목소리는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듯 했고,

그 사연과 경험들이 자양분이 되어 곡을 자기만의 색깔로 해석해 내는데,

아무리 어려운 노래도 그를 통해서 나오면 더 이상 어렵지 않은 것이,

쉽고 친근하고 가깝게 들리는 게 그의 해석의 매력이다.

 

 

이 책도 그렇다.

불교라는게 종교이고 철학이다 보니, 얼마든지 딱딱하고 어려워질 수 있을텐데,

그림체부터가 동글동글하고 정겹다.

그렇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57쪽의 스님 얼굴은 달마대사의 그것처럼 禪적인데, 그게 보기에 따라선 해학적으로도 보인다.

 

이 정도에서 끝내도 부족하지 않았을텐데,

글의 중간중간에 '홍성지'의 그림이 들어가,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실은 일러스트 또한 좋았다.

일러스트 자체만 놓고 봤을때는 내용과 겉돌지도 않았다.

그런데 만화책 중간 중간에 이런 일러스트를 넣어,

다른 느낌의 그림이 이중으로 들어간것이 좀 과한 느낌이었다.

펴낸이랑 성이 같은 것에서 해답을 찾아보아야 하려나~(,.)

 

'아함경'은 석가모니의 언행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것 같지 않아보이는 부처님과 스님들의 수행법에 대해서 언급한다.

'세상을 전부 물질로만 볼 수 있겠는가?'하는 부처님 말씀은 정신적인 영역 또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말이란다.

이렇게 몸과 마음, 물질과 정신이 상반되는 대구 관계를 이루며,

우리가 몸을 위하여 입으로 먹는 양식 말고, 마음의 양식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마음의 양식'을 언급하면서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중산층 개념을 비교한 내용은 많은 걸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나라는 

30평 이상의 자기 명의 아파트,

통장 잔고가 1억 이상,

월수입이 500만원,

자동차는 2000cc급 이상,

일년에 한번 이상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여유 이상의 것을 누리고 살 수 있는 자.

같은 것들이었다면,

 

프랑스는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있는가?

의사소통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외국어를 1개 이상 할 수 있는가?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는가?

남들과 다른 맛을 내는 요리를 할 줄 아는가?

사회문제에 대한 공적인 문보를 의연히 견딜 수 있는가?

약자를 도유며 꾸준한 봉사활동을 하는가?

같은 것들이었다.

 

4년여에 걸쳐 느끼고 깨달은 걸 응축시켜 표현해 낸 것이기 때문에 나 또한 읽으면서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많은 생각들을 하나로 요약해보자면,

'고정관념과 편견, 선입견에서 벗어나서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생각하자'는 거다.

 

그리고 이 책이 주려는 깨달음과는 다른 깨달음일지도 모르는데,

두 번째 화살을 맞는 걸 두려워 하지 말자는 것이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도록 노력을 할 수는 있지만,

날아오는 화살이 두려워 전쟁터에 나가지 않는다는 것보다는,

경험을 통해 몸으로 느끼고 깨닫는게 훨씬 나으니까 말이다.

 

'잘못을 하는 건 인간의 몫이고, 용서를 하는 건 신의 몫'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좀 홀가분해지지 않으려나?

아닌가? 아님 말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