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류시화 지음 / 연금술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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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얘기한적이 있는것 같은데 일본문학을 일부러 찾아 읽는 편은 아니다.

이 책은 우연히 보게 됐는데 그림과 글씨가 너무 예쁜지라, 눈요기를 할 요량으로 집어들었다.

보통 책이 힐링이라고 들 얘기 하지만,

비판없이 무조건 읽기만 하면,

다시말해 자신의 느낌이나 감상 없이 무조건 읽기만 한다면,

저자나 역자를 그대로 좇는것이고,

여기까진 간접 경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책의 주파수와 나의 주파수가 만나게 되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때,

다른 사람들이 봤을땐 아무것도 아닌 듯 사소한 것 같아 보이는 것까지 그대로이지만,

저자나 역자의 생각과 일치할 수도, 어긋나거나, 비껴갈 수도 있는 그 때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 스스로 무언가를 느끼고 깨닫게 되는 그것을, '힐링'이라 부를 만하다.

왜냐하면,

책을 읽고 힐링을 느끼는 그 행위를, 스스로 이어갈 수도 있고 중단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장자에 보면,

달인인 목수에게 나무가 다가온다고 하였는데,

나에게도 책이 그렇게 다가올 날이 있을까?

힘 빼고 아무렇지도 않은듯 얘기하고 있어도,

그건 달인도 아니고, 진인이나 다다를 수 있는 경지이니까 꿈도 꾸지 말아야 할까?

 

하이쿠의 언어는 의미보다는 소리, 움직임, 시간, 풍경을 전달하는 수단이었단다.

목적이 훌륭히 이루어졌을때 의미는 자연스럽게 전달된단다.

 

그런 의미의 연장에서,

책의 내용이 아니라,

책을 꾸미고 있는 외형, 표지와 판형과 그림과 글씨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 치유가 되는 느낌이었다.

'책을 이렇게도 예쁘게 디자인 할 수도 있구나'

그동안 난 포장을 겉으로만 그럴듯하게 하여 본모습을 과장시키거나 왜곡시킨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본모습에 긍정적으로 작용을 하는게 아니라,

과장 또는 왜곡, 굴절시킨다는 이상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 선물을 하거나 누구에게 마음을 전할 일이 있을 때도,

포장이 마음을 왜곡시킨다는 이상한 편견을 갖고서는,

원래 것을 벗겨내고 신문지에 둘둘 말아 알맹이만 전하는 기행을 하곤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란 이 책은 예쁜 한권의 그림이 있는 시화집처럼 읽혔다.

 

 

 

 

책 날개 안쪽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라고 일컬어지는  하이쿠는 5ㆍ7ㆍ5의 열일곱 자로 한 줄의 정형시 라고 적혀 있으며,

짧기 때문에 함축적이며, 그래서 독자가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말의 홍수 시대에 자발적으로 말의 절제를 추구하는 문학, 생략과 여백으로 다가가려는 시도, 단 한 줄로 사람의 마음에 감동과 탄성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하이쿠의 세계를 류시화 시인의 감성과 깊이 있는 해설로 읽는다.

라고 되어 있다.

 

내가 하이쿠가 뭔지 모르는 문외한이라는 단서를 달고,

하이쿠의 매력은 독자가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책 날개에도 적혀 있고,

나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 '독특한' 하이쿠를 류시화가 해설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시인이라면, 독자들에게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도록 열린 상상력을 자극하고 안내해야 하지 않았을까?

시인의 감성과 깊이 있는 해설은,

독자들의 주체적이고 자기주도적 하이쿠 감상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부터 시인에 대한 신뢰 지수와  독자의 주체적인 하이쿠 감상 지수는 반비례할 수밖에 없었는 지도 모르겠다.

 

가장 안타까운 생각이 든건, 5ㆍ7ㆍ5 열 일곱 자의 고집이었다.

하이쿠가 5ㆍ7ㆍ5의 열 일곱 자의 정형시라고 하여 우리말로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도,

지나친 생략으로 뜻이 모호해져 가면서까지  5ㆍ7ㆍ5의 열 일곱 자를 고집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렇다고 류시화의 글(해설)이 부족하거나 겉돈다는 건 결코 아니다.

책 뒤의 '한줄하이쿠/출전'과 '참고서적'과 '국내 하이쿠 관련 책들'만 보아도 알 수 있겠지만,

그가 자료를 수집하는데만도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고 또 정말 열심히 공부하였으리라고는 짐작할 수 있다.

하이쿠 시인들과 그 하이쿠 시인의 특징을 잘 집어내 설명하고 있고,

'언어의 정원에서 읽는 열일곱 자의 시-하이쿠의 이해'는 한편의 논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다.

그것만으로도 한권의 책이다.

 

근데 아쉬운 생각이 드는건 어쩔 수 없다.

중구난방으로 너무 쫙 펼쳐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그 많은 하이쿠를 어떤 기준으로든 묶고 분류를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비슷한 느낌의 하이쿠는 비슷한 느낌의 하이쿠 끼리 묶어 비교와 대조를 통해,

특징을 두드러지게 한다든지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어떤 것의 있음'을 표현하기 위한 '없음'처럼 말이다.(602쪽)

그냥 이렇게 저렇게 붓가는대로 쓰다보니까 문득 생각나는 것을 끄집어 내는 식으로 쓰여진데다가,

책의 윗부분엔 하이쿠, 밑부분엔 류시화의 해설이 있는데,

그게 꼭 하이쿠의 내용과 같이 가는 느낌이 들지도 않아 어긋나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소칸'의 하이쿠가 맘에 들었는데,

소박함, 아니 지지리 궁상을 지지리 궁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류시화는 인생의 고통을 극복하는 노력에서라고 표현하였지만, 내 생각에는)

달관한 자만이 얘기할 수 있는 해학으로 표현해 낸 것이 멋지다.

 

달에 손잡이를 달면 얼마나 멋진 부채가 될까  /소칸 (32쪽)

 

근데 난 '산토카'와 호사이'의 자유율 하이쿠가 더 좋은 걸 보면,

하이쿠만의 매력을 모르거나 글자수나 계어에 얽매이는 게 싫은 자유로운 영혼인가 보다, ㅋ~.

 

힘주고 또 힘주어 힘이라고 쓴다/ 산토카(541쪽)

 

기침이 멎지 않는다 등 두드려 줄 손이 없다/산토카(547쪽)

 

이렇게 좋은 달을 혼자서 보고 잔다/호사이(580쪽)

 

책의 외형이 맘에 들어 시작하게 되었으나, 이 책을 읽은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요즘은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로 인해서,

메일, 문자 메시지, 카카오 톡, 트위터 등 말과 글자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다.

개중에는 읽지도 않고 삭제되는 것도 상당수이지만,

읽는 사람에게 쓸모없는 그런 것이라고 해서,

보낼 때 수고롭지 않고 정보이용료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어서는 곤란하겠으나,

오래 생각하고 극도로 응축시킨다는 것은 말과 글을 아낀다는 것이고,

오지랖이 넓어 흘러넘치는 게 아니라, 가볍고 단출하여 한결 홀쭉해진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우린, 아니 나는 너무 아쉬운 걸 모르고 헤프게 살아왔던것 같다.

고팠던 적도, 아팠던 적도, 보고팠던 적도, 못가져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고,

세뇌이고 최면일수도 있지만,

내 자신에게 비겁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인색하지는 않았다.

 

이 참에 나도 한줄로 된 하이쿠를 쓰듯,

줄이고 가볍게 하고 단출하게 하여, 그리하여 홀쭉하게 살아야 겠다.

 

힘빼고 살다보면,

달인인 목수에게 나무가 다가오듯 그렇게,

나에게도 책이 그렇게 다가올 날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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