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였던 그 발랄한 아가씨는 어디 갔을까
류민해 지음, 임익종 그림 / 한권의책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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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나같은 숨은 '즐찾'이 여럿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이이의 글의 숨은 즐찾이었으니 말이다.

굳이 댓글을 달거나 즐찾을 공개로 설정하지 않은 이유는,

언젠가부터 이곳의 지명도, 호감도라는게...

글이나 책이랑 관련된 어떤 것이라기 보다는 발품이랑 관련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댓글을 달거나 덧글을 달거나 공개로 즐찾을 설정하는 등,

열심히 발품을 팔고다니면서 블로그 활동을 하게 되면,

내 서재의 지명도, 호감도, 다시 말해 '인기도'가 올라가게 되고...

그리하여 거품이 형성된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였다.

다시말해, 이곳에서 상위에 링크된 서재나 책의 경우,

정말로 그럴만한 경우도 있지만,

그냥 본인이 발품을 많이 팔고 열심히 활동을 한 경우는 제외하고,

대형 서점이나 마케팅 전략이 개입하여 상위에 링크된 경우,

재수없으면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작전세력에 말려드는 것이 된다.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때는 그저 소소한 삶의 기록이고,

깜박깜박하는 기억을 잡아두고 싶은 것이 될 수도 있고,
또 취미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네크워크를 형성하고 싶은 것이 될 수도 있지만,

알라딘이라는 업체의 입장에선,

이곳에 올라오는 리뷰와 페이퍼는 책이라는 상품의 상품평의 다름아니다.

이 개개인들의 소소한 삶의 기록의 장에,

대형서점이나 마케팅 전략, 그밖의 영업을 부추기는 행위들이 거품으로 작용하는걸 깨닫게된 그 즈음부터,

알라딘서재에서의 공개 마실 놀이를 자제하게 되었다.

 

'나였던 그 발랄한 아가씨는 어디갔을까'라는 책 제목은 우려이고 오버였다.
발랄한 아가씨는 책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었는데,

경쾌 발랄하면 웅숭깊지를 말아야 하는데, 웅숭깊기까지 하다.

내가 병들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마저 병든 눈으로바라보지 말자. 남편의 의견을 지지하지는 못해도 무시하진 말자. 그런 결론을 내리기까지 남편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을까? (58쪽)

다시말해, 이땅의 전업주부-그들이 겪는 삶을 삶의 굴곡을, 경쾌 발랄한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

돌뿌리에 걸려 넘어졌다고 해서 퍼질러 앉아있지 않고,

그 돌뿌리를 파내고 패인자리를 매운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서인지, 책은 많이 겹쳤다.

눈에 띄는 책은 '고등어를 금하노라'와 '루쉰의 편지' 두권이었다.

'고등어를 금하노라'의 경우 원 책의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이이의 깨달음이 내겐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면 이런 깊이와 넓이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교육도 있고 이런 가족도 있는데, 친구의 전화 한 통화에 눈이 빨개져서 가나다라를 가르치던 내가 어라나 한심하던지.(119쪽)

'루쉰의 편지'도 너무 멋지다.

갖고 싶어 찾아보니 절판이다.

중고로 한두권 나와있는것 같은데 원 가격보다 더 비싸다.

친구한테 얘기했더니, 자기는 봤다고 입을 '싸악~' 닦는다, 내 원~--;

 

세상 사람들의 질타와 조롱 속에서도 루쉰과 쉬광핑은 생에 단 하나뿐인 사랑을 얻었다. 그들의 사랑이 멋지고 아름답게 마무리되려면 차가운 세상사람들의 비난과 장애물에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라고 외치며 현해탄 푸른 물에라도 풍덩 뛰어들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순간적인 충동에 휩쓸린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라, 목숨을 건 진정한 사랑이었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살았다. 자살하지도 죽을병에 걸리지도 않고, 주변의 비난과 손가락질을 묵묵히 감수하며 구질구질하게 살아남았다. 살면서 함께 삶을 만들었다. 상대의 감정을 확인하는데 시간을 소모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는 편지를 주고 받았다.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에는 상대를 배려한 충고와 조국에 대한 걱정과 혁명에 대한 신념, 자신의 내밀한 고민이 쓰여 있다. 서로 공감하고 격려하며 나란히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극적인 사랑일수록 장애물이 많아야 하고 그것들을 넘으면서 받는 고통이 클수록 진실한 사랑이 증명된다는 믿음은 얼마나 아침드라마식 사고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나눌 것은, 밀고 당기면서 얻는 감정적 승리나 서프라이즈 이벤트 따위가 아니라 공감하고 격려하고 함께하는 인생 그 자체에 있다. (280~281쪽)

내가 감동을 하게 된것은 루쉰과 쉬광핑의 엄청난 나이차이도, 주변에 이슈가 될만한 사랑 얘기도 아니었다.

이둘은 적어도 사랑을 애들 장난으로 생각하지 않고, 어른들의 사랑을 했다는 것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지지고 볶고 산다는 것이랑 이음동의어인지도 모르겠다.

상대의 감정을 확인하느라 시간을 소모하지 않고,

주변의 비난과 손가락질, 그밖의 고난들과 맞서 싸우는데,

서로 공감하고 격려하는 것으로,

그 소통의 방법으로 택한 것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는 편지'라는 것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난 이런 것이 좋은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어렵지 않고 경쾌발랄하되,

상대방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것.

나도 안다. 당장 책 몇 권 읽고 글 몇 줄 끄적인다고 해서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어꺠를 으쓱해 본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 타인의 개입에 연연하거나 내가 만든 상자에 스스로 갇혀 무기력하게 한숨 쉬는 건 이제 그만 . 좋아하는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육아와 글쓰기를 같이 할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어제와 다른 내가 될 수만 있다면, 조금 더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는 내가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렇게 얘기하는 그녀이지만,

그녀의 꿈을, 육아와 글쓰기를 같이 할 수 있는 삶을 응원한다.

LET'S CHEER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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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3 18: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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