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유명한 그림이나 글씨를 놓고 진ㆍ위를 따지는 일은 종종 있어왔다.

얼마전에는 김홍도의 작품 중 몇몇을 놓고 설전이 벌어졌다.

그림에 문외한인 나는 멍하니 지켜볼 따름이었으나,

그런 와중에 내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 것이 있었는데, 바로 '감정가'라는 직업이었다.

 

'감정가'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몰랐던게 아니라,

'감정가'가 되기 위해 하는 '감정 공부'라는 것이 무척이나 광범위하여 오르기 힘든 나무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연구할 서화작품을 당시 창작 상황과 가깝게 그려보는 것, 똑같이 모사하는 것은 감정 학습의 기본이며,

감정가 스스로 붓글씨나 그림을 흉내 낼 정도는 돼야 다른 사람 작품이 눈에 들어오는 법이란다.

도장도 새길 줄 알고,

작품 표구 방식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 덧붙이길...

서화 감정이 과학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창작의 실천과 재구성을 통한 검증 방식을 적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쯤에서,

언젠가 김제동의 모친이 했다는 '가식도 10년이면 예절로  봐주어야 한다' 는 말이 떠올랐다.
처음엔 가식이었다 하더라도, 몸에 익어 버릇이나 습관이 되어버리면...성격이나 본성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생각이 짧은 내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작품이 '진짜이고 가짜이고' 를 떠나서 진ㆍ위를 논할 정도의 작품이라면, 가치를 인정받기에 충분하지 싶다.

다시말해, 작품이란 것은 남이 베낄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작가 고유의 개성과는 별개로,

예술성과 독창성으로 얘기하는 것일테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인의 고유한 작품일지라도...

전작 '책은 도끼다'의 연장선 상 정도가 아니라, 리바이벌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이고 보면,

예술성과 독창성 내지는 참신성에서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어쩜 '책은 도끼다'가 준 감동이 워낙 대단해서 이 책 '여덟 단어'가 그에 못 미쳐 그런 느낌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는 전작 '책은 도끼다'에 이어 이 책 '여덟 단어'에서도,

'쭉~' 책을 읽고 그림을 보고 음악을 감상하는 방법들을 소개해 주는데,

인생을, 또 삶을 그렇게 살아가는 방법도 있다...하는 안내 정도가 아니라,

모든 이의 인생과 삶이 그가 제시하는 대로 그렇게 살아져야만,

맞춤 인생이고  모범적인 삶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어버리니까,

'삐뚤어지고 말테야~(,.)' 하고 삐딱선을 타고 싶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고개를 치켜 든다, ㅋ~.

 

그러고 보니,

엄마가 아기에게 음식을 씹어서 주는 느낌이다.

대신 삼켜주지 않는게 다행이다, 헐~!

이런 엄마는 아기가 첨 보는 이상하고 신기한 것에 관심을 보이면,

분명, '애비 애비, 지지...'할 것이다.

어찌 그리 잘 아냐고?

내가 그런 엄마였기 때문이 아니고,(난 거의 방임에 가까운 엄마이고~--;)

내가 그런 할머니와 고모들 밑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ㅋ~.

 

그 예로 '책은 도끼다'에서 오주석이 김홍도의 <마상청앵도>라는 그림의 설명을 인용하는데, 감상의 방법까지 제시했었다.

 

그럴 것이다. 인생의 저녁, 저물어가는 노을빛 속에서 작품 제작의 연월일 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화폭에 가득 번진 환한 봄빛이 있고, 내 가슴도 훈훈한 봄빛을 머금고 있는데, 더구나 이 늙은 가슴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따뜻한 가슴이 곁에 있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그림을 그렸을 때 김홍도는 노인이었다. 화폭에 떠도는 해맑은 동심이 그것을 반증한다. 노인은 젊은이보다 봄을 더 많이 생각한다.(책은 도끼다, 330쪽)

 

무릇 감상이란 이렇게 해야한다...는 롤모델마냥 느껴진다.

 

기실, 나는 이 책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과는 좀 다른 얘길 수도 있는 것들을 깨닫고 느꼈다.

그중 '가장'인 것은 지금 현재를 제멋에 겨워 살면 된다는 것과

무엇이 됐든  관심을 갖고 자세히 들여다봐야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직장 생활하는데 있어서, 사람들의 관계, 네트워킹에 있어서 우선 순위를 설정하는 나름의 방법을 설명하면서...

우리에게도 그 우선 순위를 힘주어 얘기하는데, 난 여기서 반대로 힘을 빼는 방법을 읽었다.

직장생활을 하는데 위계질서가 흔들리면 엉망진창이 되겠지만,

바꾸어 말하면 순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여러분이 들고 있는 가방이 명품이 아니에요. 그 가방은 단지 고가품일 뿐이죠. 명품은 클래식입니다. 고가품과 명품을 헷갈리지 말고, 진정한 명품의 세계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여덟 단어, 97쪽)

클래식, 즉 고전에 힘주어 얘기하기 위해 이렇게 얘기한걸 모르진 않지만...

이런 얘기 자체가  나누고 편가르고 하는 우월감과 자만심을 두드러지게 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인문학이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얘기하는 거지만,

'인간'만을 따로 떼어내어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속기를 빼고 골기만 남겨라,

연륜은 사물의 핵심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길, 등

자연에서 본성만을 모두었을때에 남는 게, 인간이고 인문학이고 한게 아닐까?

이걸 느껴야 독서법에 있어서도, 속독이나 다독보다는 정독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 예로,

난 한때, 나처럼 그림에 젬병이어도 비슷하게 그려낼 수 있는 피카소의 후기 그림들을 높이 평가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초창기 그림들을 보고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모르긴 몰라도,

그가 사실과 현상을 뭉개고,

선과 면을 이용하여 최대한 단순하고 간결하게 한 후기 작품들을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초창기 그의 사진으로 찍어낸 듯한 그림 습작 시절이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무엇이 됐든,

기본을 무턱대고 뛰어넘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설사 가능하더라도 부실공사, 사상누각의 지름길임이 자명하다.

 

속기를 빼고 골기만을 남겼을때,

사물의 핵심에 빠르거나 넉넉하게 도달하려고 도달하려고 욕심부려도 탈나지 않는 것은,

자연, 그 중에서도 넉넉한 햇살이 으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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