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이 '서'가다.
오랫만에 얼굴을 보기로 했던 이가, 갑자기 볼 일이 생겨 OO에 가신다며,
- 이러다가 언제 얼굴 보노?
하고 톡을 보내오셨길래,
- 보고싶지가 않은게지~(,.)
하고 대구를 했다.
그랬더니,
- 서쪽으로 가야하는데, 자꾸 동쪽으로 가네?
하신다.
난 또 질세라,
- 달마가 동쪽으로 가겠다는데, 凡人인 내가 어찌 알겠어요?
못보더라도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잘 살면 되는거죠.
라고 했다.
잠시 후,
- 혜초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내가 알지.
하시길래,
- 왕오천축국전 쓰러 갔겠죠, 뭐~.
아님 말구~(,.)
하고 끝냈어야 하는데,
- 빈스플린 기사 보셨죠?
너무 일만 열심히 하다 젊은 나이에 요절 하는 수가 있으니, 건강도 돌봐가며 잘 사세요.
하는 토를 달았다.
빈스 플린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모르긴 몰라도,
그렇게 자세하고 세세하게 개연성을 심어놓는 사람이라면, 삶도 그렇게 성실하고 진솔할 것 같다.
더구나, 미치 랩 같은 이를 주인공으로 그려내는 그라면...
자신의 건강 관리 또한 철두철미할 거라고 생각했었던 터라,
3년 전부터 전립선암을 앓았고, 47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고 하니...
게다가 나보다 겨우 서너 살 많을 뿐이라고 하니,
걷잡을 수 없는 것이, 만감이 교차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빈스 플린의 것을 서너권 읽은 것 같은데...집에 와서 찾아보니 쉽게 눈에 안 띤다~--;
임기종료
빈스 플린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2008-10-22 쓴 글>
이 책은 분량은 엄청 나지만,한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내려 놓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정치 스릴러'라는 타이틀로 미루어 볼때,우리나라의 지난 대선을 겨냥하여 나온 것 같은데...
난 얼마전 미국의 구제금융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는 과정에서 '상원이 어찌되고 하원이 어찌되고' 하는 현실과 연결시켜 읽으니 더 재미있었다.
사건의 발단은,아무도 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지 않는 상원,하원 의원 들이 암살을 당하고,이 죽음이 대통령의 예산안 통과와 밎물려 정치적으로 이용된다.
이런 킬러가 나오는 내용이다 보니,아무래도 '프레더릭 포사이스'와 비교가 된다.'프레더릭 포사이스'의 작품들은 많은 것을 극도로응축시켜 간결하다면,빈스플린은 자상하다.
좋은 사람 뿐만 아니라 나쁜 놈의 속내도 너무 잘 알고 있고 장면 묘사도 세세하다.때문에,개연성에서는 완벽하고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시각적이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 할 수 없게 만드는 단점이 있다.
좋고 나쁨에 대한 가치관이 성립되지 않은 상태에서...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오루크 하원의원이, 예산안의 자세한 내용을 알고 그대로 통과시키는 것에 반대하였지만,그리하여 서민의 입장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한들...그게 국회의원의 본분인데,그걸 '잘 했다''멋있다'할 수는 없지 않나?
암살자의 경우,감정을 극도로 절제할 줄 아는 것이 좀 멋있기는 하지만,암살을 하는 과정에서 일반인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지만,그렇다고 하여 청부살인업자를 두고 '잘 했다''멋있다'할 수도 없다.
한나라의 대통령이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비서실장에 의해,언론에 의해 움직이는 모습은...내가 가장 어이없어 하면서도 재미있어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그런 대통령을 향하여 감정이입은 되질 않는다.
암튼 미국이라는 나라는 참 복잡하다.
정치형태도 그렇고,군,경,법률체게도 그런 것 같다.FBI나 CIA,NSA...이런 용어들이 복잡한데다가 하나로 통일되지 않아(그러다보니 작가는 계속 부연설명을 한다)혼란스러웠다.
여기서,각 분야별로 힘을 키우기 위해 모종의 암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FBI의 스킵 맥마흔을, 엘리트요원이라고 애기하면서도 자기의 할일만 묵묵히 하는 사람으로 표현한다든지,
CIA의 테러전문요원 케네디를,월등히 높은 아이큐를 이용하여 암살범의 범위를 좁혀가는 사람으로 표현하는 부분 등은,다소 주관적이어서 혼란스러웠다.
'...특수부대원은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을 경멸합니다.정치인과 관료를 싫어해서 그들에게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죠.특수부대원은 효율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법을 훈련받은 사람이며,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정의롭고 합리적인 문제해결책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아주 추악한 일들을 시킵니다.그러면서 그것이 전부 미합중국을 지키기 위한 일이라고 말하죠.특수부대원으로서 우리는 자신이 세상에서 나쁜 놈들을 제거하고 있으며,미국을 지키고 있다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합니다...'
라는 부분은,결국에는 암살자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임을 짐작하겠다.
세상에는 머리로 생각해서만 얻을 수 있는 지식도 있지만,경험이 수반되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것도 있게 마련인데...암살자를 찾아내는 케네디박사의 경우,그녀가 어떻게 머리를 써서 암살자를 찾아냈는지의 과정은 미미하고 어린 아들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부분만 확대 묘사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암튼 너무잘게 잘라주어 씹는 맛이 없었다고 해야하나?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놈인지의 판단은,그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판단은...독자의 몫으로 내버려 둘 수 없었을까?
미국 만의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가정하에 지역을 넓혀보면,독자가 미국만이 아닌 전세계에 있을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라면,
'한사람의 테러리스트는 다른 곳에서는 자유투사일수도 있는 것'이니까...열린 결말이 되어 읽는 이가 스스로 상상하고,읽는 이가 카타르시스를 느꼈음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권력의 이동
빈스 플린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권력의 이동>2010-4-23 쓴글
이 책의 제목만 봤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정치는 생물이다'라는 말이었다.
<정치스릴러 소설>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에,이 소설에서 역동성과 액션,빠른 전개 들을 느껴줘야 할텐데,
나는 이런 모든 것이 충족되었으며 더불어 사람들의 감정이나 심리상태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서 이 소설이 참 좋았다.
그 때문에,
'미국 대통령과 비밀 검찰국의 보안을 위해 백악관의 레이아웃을 조금 바꾸거나 비밀검참국의 작전 중 어떤 부분은 조금 생략하기도 하였다.'
라는 책 앞장의 일러두기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 '빈스플린'의 전작 ,<임기종료>에서 자상하게 살을 발라주는 걸로는 부족해서,잘게 씹어주는 느낌을 받았던 터라...
요번에도 세밀한 묘사 쯤은 기본 옵션이라고 생각했었고,
책 속에 빠져들어 버린다면 책속의 가상현실을 사실로 착각해...
백악관을 상대로 엉뚱한 호기를 부려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만큼 이 책의 상황 설정이나 백악관을 비롯한 비밀검찰국 전반에 대한 묘사가 직접 경험한 누가 묘사한 것처럼 사실적이다.
때문에 남이 자상하게 살을 발라주고 씹다만 걸 마저 씹고 싶지는 않은 나만의 책읽는 방법이 있었는데,
이 책을 정치스릴러 소설로가 아니라,사람의 감정상태나 심리상태를 따라가며 읽는 것이었다.
이 책을 심리 소설로 봐도 좋은 것은,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미국인이건,그들과 대립의 각을 세우고 있는 테러리스트이건...
모두가 트라우마를 치료를 통하여,표면적으로는 자신의 절제력으로 잘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여기서 '백지 한장 차이'라는 말이 생각나는데,
이건 '니편 내편'이나 '좋은 사람 나쁜 놈'같은 판단의 기준이 백지 한장만큼이나 불분명하다는 얘기이다.
다시 말해,미국과 백악관을 무차별 공격하고 죽이는 테러리스트는 무조건 나쁘고,
미국이 어떤 방법으로든 그 테러리스트를 응징하는 것은 괜찮고 한...그렇고 그런 정치 스릴러 소설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의 신념과 소신을 가지고 일을 벌이는 것이고,
때문에 니편 내편이나 선악의 잣대를 가지고 이책을 읽지 않겠다는 내 자신과의 다짐이기도 했다.
이렇게 감정상태를 따라가며 책을 읽다보니,
사건의 인과관계나 개연성을 따지는데 다소 무디어져 버려 그냥 지나갈 뻔 하였는데,책이 묘한데서 삐그덕거린다.
(하긴 분량이 엄청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하지만서도...ㅠ.ㅠ)
그러니 살짝 재미가 반감되는 듯도 하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이리도 완벽하게 빚어낸 작가가 이런 실수를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번역에서의 오류가 아닌가 원서를 뒤져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잠깐 했지만,
내가 믿어 의심치않는 이창식님의 번역이어서 작가 쪽에 무게를 두기로 하였다.
(그래도 그렇지...이창식님이 누구인가?
당신이 먼저 재밌게 읽으시고 우리에게 또 우리정서에 맞게 리라이트해 옛날 얘기를 들려주시듯 번역해 주셨던 분이 아니었나?)
이 책에 다소 생소한 단어가 등장하는데,'스웨트셔츠,스웨트 팬츠'라는 용어이다.
우리말로 땀복(운동복) 정도 되시겠다.
처음 대통령의 옷장을 이용하려 할때,우리의 훌륭한 '밀트 애덤스'(-은퇴한 백악관 경비원)께서 영부인의 옷장이 또 있다고 얘기하고,
거기서 옷을 가져오는 걸로 되어 있는데,뒷부분에는 계속 대통령의 옷을 빌려입었다고 얘기한다.
대통령이 입던 웨스트포인트 스웨트 셔츠라고 했다가,(428쪽)
검정색 스웨트 슈트(434쪽)라고 했다가 오락가락이다.
이것 말고도 몇가지 더 오락가락하는게 있다.
그렇다고 마냥 감정선을 따라 읽어갈 수가 없었던 건,
'간간히 달빛이 희미하게 비치다 말았다.'
감정이란 건 없는 듯이 담담히 써내려간 문장들만 나열되어 있다면 좋을텐데,
'체포하다가 발각되느니 제거해버리는 게 낫다.'
다소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문장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이 미국인이라고 하여,
'미국이란 나라는 절대선이고 다른나라는 죄다 나쁜놈'이란 사고를 강요하고 있다기 보다는,정신적인 반어법을 썼다고 생각하고 싶다.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 사람이 겪었던 트라우마가 치료되거나 희석되는 게 아니고,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트라우마를 들쑤시고 들춰 내서 사건과 결부시켜 버무려낸다.
여자친구를 죽인 범인에 대해 복수를 꿈꾸는 미치 랩의 그런 폭력성을 잘 살려 인간병기로 길들인다거나,
성폭행 당했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여기자의 경우,
그걸 잘 살려 테러리스트와 얽어낸 품이나,구해준 미치랩과의 러브라인의 형성 또한 그럴 듯 했으며,
은퇴한 백악관 경비원 밀트 애덤스의 경우,
나이로 인한 잦은 화장실 행을 사건 속에서 경험으로 승화시켜 결정적인 사건해결이 실마리로 만드는 등 이다.
"다른사람들은 몇 살이 되기 전에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싶다거나,중국 여행을 하고 싶다거나,아이를 갖고 싶다는 따위의 소망이 있는데,내겐 그런 것들이 없어요.그 대신 나는 마흔 살이 되기 전에 파라 하루트와 아지즈를 죽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죠."(61쪽)
이 부분에서 미치 랩의 폭력성에 분노한다기보다는,그의 트라우마를 알고 있어 서글펐다.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빚어내는 솜씨에도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었는데,
79세의 토머스 스탠드필드를 사람을 단번에 간파해 내는 사람으로 묘사해 내는 게 참 적절하다.
113쪽의 '범인들의 비뚤어진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
188쪽의 '위대한 지도자는 어려운 상황에서 두각을 드러낸다.위기에 맞섬으로서 빛을 발하는 것이다.'
같은 표현은,79년이라는 세월을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살아온 토머스 스탠드필드니까 가능한 판단이니까 말이다.
전형적인 미국인의 사고방식 답게 얘기는 끝나 버리지만,
생각없이 쏴대는 총알만큼이나 시원하게 끝나 주시지만,
여기서 생각도 같이 스톱을 해버려야지,생각이 꼬리를 물면 파장이 커질 수도 있다.
권력의 이동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분히 중의적이지 싶은데,
대통령에서 부통령으로 잠깐 옮아갔다 온것이 될 수도 있고,
그러면서 테러리스트들에게 잠깐 넘어갔다가 온 것이 될 수도 있지만,
이 사나흘의 천하에서 CIA,FBI,군장성,법무부 등의 권력 다툼도 볼만하다.
내 생각에는 에필로그에서 미치랩이 끝내 라피크 아지즈를 처단하는 걸로 미루어,
어떤 힘이 있으면 그에 동조하는 힘과 반대하는 힘이 있게 마련이고...
이 모두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하지만,이건 어디까지나 이상일 뿐이고,
일상에서는 거기서 한쪽으로 조금만 쏠리게 되더라도 힘의 크기와 방향이 변하는 삶의 연속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