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낙서 - 박병철 단상집 우드앤북 단상집 2
박병철 지음 / 우드앤북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사람을 선택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첫눈에 반해서,

또는 얼굴이 예쁘거나 잘생겨서,

어찌하다보니 미운정ㆍ고운정 다 들어서,

등등등...각양각색의 이유가 있지만,

나처럼 남편을, 연습장에 흘려쓴 글씨가 넘 맘에 들어서라는 사람은 보질 못했다.

암튼 난 남편의 글씨체가 정말 맘에 든다.

누군가는 글씨를 뜯어먹고 살것도 아닌데,

왜 그리 글씨체에 환장하냐고 하지만...

글씨체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걸 난 잘 알기 때문이다.

 

나랑 제법 많은 시간을 놀아주던 애인이...시험을 앞두고 공부에 용왕매진하겠단다.

어둠 속에서,

'너는 글씨를 쓰거라, 에민 떡을 썰테니...' 하는 석봉 모친을 닮아,

'시험에 붙을 때까지 절대 집에 드어올 생각 말아라~!'라고 할 재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고,

한가하고 심심한 내 시간들을 떼울 떡을 썰 기술을 전수 받아야겠다.

 

어둠 속에서 떡을 써는 기술은 옛 말이고,

요즘은 글씨 잘 쓰는 자식을 원하면, 서체 정도는 연구해 주시는게 기본이란다.

 

그래서 석봉이처럼 글씨를 써볼까,

공부에 용왕매진한다고 하니 나도 공부라는걸 해볼까,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내가 그동안 '캘리그라피'라는 용어를 몰라서 그랬지,

내가 엄청 흥미로워하는 분야이고,

또 조금만 노력하면 잘 할 자신도 있다.

 

한가하고 심심한 자투리 시간들을 떼울 떡 써는 기술로 이보다 더 딱 맞춤한게 없지 싶을 정도로...

내가 흥미로워 하는 분야다.

 

책 겉날개 앞쪽에,

마음 박병철

캘리그라피스트(Calligraphist, 글씨예술가)라고 되어있다.

 

이 책을 보면서 사석원이 생각났는데,

그림이나 글씨가 예술인건 공통점이지만,

한명은 그림을, 한명은 글씨를 주로 하는,

화풍이나 필체가 각자 다른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연상이 된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미친 색감이라고 표현하는 색감 때문인 것 같다.

색감은 내가 이들에 비해서 쫌(very much) 떨어진다~--;

 

암튼,

캘리그라피를 하든, 흉내를 내든...

내가 좋아하는 꼼지락거리는 걸 하게되는거여서...

심심한데 맞춤인...염전이나 소금밭은 공수받지 않아도 될 듯 하다.^^

 

내가 이 책에, 그리고 캘리그라피라는데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다.

예술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심미안은 갖고 있지 않은고로,

마음이 이끄는대로 보고 즐기는게, 나의 감상법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이 <마음낙서>이고,

이 사람 이름 앞에 붙는 호가 '마음'인가보다.

그리고 '마음을 글씨에 담은 작가'라는 수식어가 보이는데,

그 호와 수식어가 내 마음을 이끌었다.

 

일곱번째 낙서라는 마지막 꼭지는 '글씨이야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그의 캘리그라피에 관한 철학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글씨이야기7.

 

있는 그대로.

나의 글씨는 시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름다운 한글로 우리의 마음을 말했으면 좋겠어요.

글씨에 학문과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을 만져주고 웃고 울리게 한다면

그것으로 예술적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평범하지만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위대한 사람들이 아주 많아요.

나의 글씨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친근하지만 가볍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분이 맘에 든 또 하나의 이유는 '돌맹이'를 가지고 논다는 건데,

나랑 닮아 친근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함부로 애틋하게>리뷰 ; '참을 수 없는 언어의 가벼움'

 

 

 

그의 단상들은 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굳이 차이점을 들라면,

시는 문장부호가 없는데,

그의 글들은 문장부호가 단정히 들어가 박혔다는 거다.

 

요즘은 만능엔터테이너라고 하여,

그림이나 글씨를 하는 사람이라고 하여도...자신의 전문분야 뿐 아니라, 넘나드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만의 서체를 갖고 있는 캘리그라피스트라는 사람이 그림과 색감도 수준급이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글들도 하나같이 훌륭하였다.

 

나의 경우,

그의 글들이 좋은 것은,

절대적인 기준이나 틀을 정해놓고 절대불변의 가치인양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기준을 '나로 비롯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어떻게 정하는지에 따라 입장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가변적인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다보니,

변해야 할게 있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말은 쉽게 하고 있지만,

그 경계와 기준을 정하는 것은 나름 소신이 요구되는 일이고,

그걸 자신만의 색이나 스타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041 용서

 

 

 

ㆍㆍㆍㆍㆍㆍ

용서가 아닌 용서를 하는 것은

내가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인하여 내가

쓰레기가 되어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감춰질 것이라는 착각은

그대의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손바닥 뒤집기 차이입니다

그대가 피해자 될 수 있음을 기억하세요.

 

 

 

 

 

 

 

 

 

 

 

 

'044 이런 사람', '045 막걸리 같은 사람'은 자연 사석원의 '막걸리연가'를 연상시켰다.

사석원은 거의 술을 혼자 마신다는데,

그의 글을 읽다보면 술이 독이 아니라 약인듯 여겨지는 것이 주선(酒仙)이 따로 없지 싶은데,

이분도 만만치 않다.

'162 아무도 없는 날'이 그 절정이다.

아무도 없는 날

 

혼자 술마시지 않는 방법,

술병과 건배하기

 

 

 

 

'월하독작'을 읊은 이백이 울고 갈 것 같다.

 

글씨체를 가지고 논할 깜냥은 안되고,

그림과 글 들 다 맘에 들었는데,

유독 좋았던 그림은 이거다.

 

해님은 쨍쨍한데,

마음에 비가 와 우산을 받쳐든 그림.

 

 

 

'그 사람이 웃었어요'도 좋았다.

 

 

반면, 딴지를 걸고 싶었던 글과 그림도 있는데,

 

059 멍멍!

 

나의 힘든 이야기를

너와 나누고 싶은 건

해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야.

들어주고 맞장구쳐주는 위로일 뿐,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쥐꼬리만한 마음이 필요할 뿐.

 

 

 

제목과 글과 그림이 어째 어울리지 않는다...싶은건 나만의 생각일까?

 

제목은 '멍멍'이고,

마음을 '쥐꼬리'에 비유했다.

 

086 중이염

 

내 귀에 번개,

스르륵 스르륵 파도가 밀려온다.

불편하다. 괴롭다. 집중이 무너진다.

당연한 것들이 깨지고 저항을 한다.

생활에 파고들어 거추장스럽게 한다.

아. 모든 아픔은 당사자만 아는 것,

이 작은 고통도 당해봐야 아는 것이다.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모든 아픔들에게 미안하다.(140쪽)

 

 

095 환하게

 

겉으로만 웃지 마요.

진짜 웃음은 자기 안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것.

마음까지 마저 웃어요. 그러면 좋잖아요.

그대가 더 아름답잖아요.(152쪽)

 

 

097 오직 그대를

 

나는 그대의

질투를 알고

낭비를 알고

위선을 알아도

그래도 그대 곁에 있겠습니다.

 

사랑하니까.(154쪽)

 

106 하하하

 

오, 자네의 얼굴이

분홍빛이네.

사랑이 시작됐군.

아름다워.

 

 

 

183쪽의 '삐짐'은 문맥 상 맞춤법이 틀린 것 같다.

153 마음의 여백

 

여백이란 비움과 같아.

사람을 대할 때도

한 번에 많은 걸 원하기보다는

기회와 시간을 줘야 해.

기다릴 줄 알아야 해.

그것이 사람에 대한 비움이야.

사람에게 거는 큰 기대는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

마음을 비우고 채우는 것 또한

자신을 위한 것이지.

믿고 기다리는 마음의 여백이 필요해.

그것이 곧 너를 풍요롭게 하는 거야.

여백과 비움이 이와 같다면,

적당한 여백과 비움은 필수불가결이다.

어쩜,

여백은 여유와 동의어인지도,

비움은 넉넉함이랑 동의어인지도 모르겠다.

 

라면에서 인생으로 발상전환도 신선하다.

생각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 짬뽕공 같다.

 

라면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라면 봉지에 적혀있는 끓이는 방법을 정확하게 잘 지켜서 끓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배고플 때 끓여 먹는 라면'이란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난 '자다가도 번쩍'이라고 할 정도로 과일이 좋다.

눈 감고 골라도 맛난 과일을 고를 자신이 있다고 자부했었다.

오늘 아침 과일가게 앞을 지나다가 장만한 과일은,

물에서 건져낸 것 마냥 깨지고 상하고 멍들고

게다가 맛이 없었다.

'사과 같은 내 얼굴 이쁘기도 하지요'라는 노래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며 스스로 자위를 해야 할지,

아님, 배가 고프지 않을때 먹는 라면 같은 것이어서 그런거라며 '거봐라, 쌤통~!'해야 할지 모르겠다.

 

박병철은 글씨는 마음을 대변한다고 하는데,

난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글씨로 미루어 육신과 더불어 영혼까지도 짐작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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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9-12 20:59   좋아요 0 | URL
글씨로 육신과 더불어 영혼까지 짐작할 수 있다는 믿음, 어느 정도 수긍돼요. 제 글씨체의 변천사도 그려지고요. 페이퍼로 쓸 거리가 하나 생긴 것 같아요. 나무꾼님의 글씨체가 오롯이 담겨 있는 메모는 제 책상 유리판 아래 자리하고 있지요.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져요.^^

순오기 2012-09-12 22:59   좋아요 0 | URL
아주아주 오랜만에 양철나무꾼님 리뷰를 꼼꼼하게 두 편 읽었어요.
그래서 장바구니에 담았다는 얘기고요.^^
벌써 가을이 코앞에 왔어요!!

2012-09-12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19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