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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터널 진입하는 한국 탈출하는 일본
박상준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불황터널'은 일본 와세다 대학교에 재임 중인, 박상준 교수, 경제학자가 쓴 책이다. 소제목 '진입하는 한국 탈출하는 일본'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일본은 불황터널, 즉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빠져나오는데 성공할 것으로 진단하고, 한국은 자칫 잘못하면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고 냉정하게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며 경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도 일본처럼 결국 부동산 붕괴가 올 것이다'라거나 '한국은 일본과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일본이 오히려 특수한 경우다'라는 양 극단의 입장이 아니라, 어떤 부분은 일본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지만 다른 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나눠서 입장을 정리한다.
한국과 일본은 경제 여건이 다르다. GDP규모, 해외순자산, 정부부채, 기업부채 등이 다르다. 그리고 일본은 디플레이션으로 긴 시간 동안 어려움을 겪었고 한국은 아직은 디플레이션 상황이 아니다. 따라서 일본의 정책들을 그대로 가지고 올 필요는 없다. 그러나,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내용이 있다. 또한 고령화 사회, 저성장 등 이미 한국에서도 진행 중인 여러 문제들을 일본은 이미 경험하였고 그에 대응하여 마련한 정책들도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은 우리도 우리 학습하고 필요에 따라 정책에 활용하여야 한다.
먼저 부동산 관련 이야기를 하면, 일본의 지가는 2000년을 기준으로 할 때 2014년 거의 반토막이 났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도쿄 23개 구(도쿄 23개 인구는 대략 천삼백만 명, 서울 면적과 비슷)는 약 8%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로 저자는 전체적으로 인구가 줄었지만 도쿄 23개 구(도쿄도)는 꾸준히 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도쿄도가 인구가 증가한 이유는 젊은 사람들의 인구 유입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본 전체적으로는 반토막이 났지만 도쿄도는 거의 안 떨어졌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일본이 문제가 된 것은 단순히 낮은 성장률이 때문이 아니었다. 문제는 급격한 성장률 감소였다. 일본은 성장률이 3.6%에서 0.6%로 급감하였다. 그리고 디플레이션과 유동성 함정이 동시에 발생하였다. 유동성 함정에 빠지면 금리 정책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인플레이션은 간단히 물가 상승을 말한다. 다르게 말하면 화폐 하락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디플레이션은 물가하락, 다르게 표현하면 경기침체이다. 물가하락하면 물건을 싸게 사서 좋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디플레이션은 경기침체를 가지고 오는데 이에 대해서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가 되면 생산자에게는 당연히 타격이 크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물건값이 더 내리기를 기대하며 소비를 뒤로 미룬다. 소비가 위축되면 생산자들은 기대한 만큼 물건을 팔 수 없고 결국 가격을 더 내려야만 한다. 생산활동 역시 위축될 것이다. 소비자들은 가격이 더 내리기를 기대하고 다시 소비를 뒤로 미룸으로써 생산을 더 위축시키고 당연히 소득수준도 하락하게 된다. 물가의 하락이 경기침체를 부르고, 경기 침체가 물가를 더욱 하락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더 내려갈 것을 예상함으로 인해 파생되는 효과는 상당하다. 소비자도 생산자도 가격이 내려갈 것을 예상하면 결국 경기침체를 불러 오는 것이다. 이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자기실현적 기대'라고 한다.
다음으로 유동성 함정은 금리 정책이 더 이상 효과가 없는 상황을 말한다. 그렇다면 금리 정책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도 책의 설명을 빌리는 것이 이해하기가 쉽고 정확할 것이다.
"중앙은행은 통화량을 조절함으로써 금리에 영향을 미친다... 통화량이 풍부해지면 금리가 내려가고, 통화량이 줄어들면 금리가 올라간다. 이 원리를 이용해, 중앙은행은 목표 금리를 설정하고, 그 목표금리가 실현되도록 통화량을 조절한다... 그러나 통화량을 아무리 늘려도 금리가 내려가지 않을 수가 있고 금리를 아무리 내려도 소비나 투자 등 총수요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때가 있다. 그렇게 되면 정부는 경기 침체에 대항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 하나를 잃게 되고 경기침체는 마냥 길어질 수 있다."
즉, 대한민국에서는 한국은행이 중앙은행인데, 한국은행에서 돈을 풀면 금리가 내려가고 이에 따라 소비나 투자가 늘어나야 되는데, 유동성 함정에 걸리면 이런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즉,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잃게 되는 것이다. 기준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것이 대표적인 금리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아는 것처럼 기준금리를 제로금리, 더 나아가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다. 은행에 돈을 예치하면 은행이 고객에게 이자를 지급해야 되는데, 마이너스 금리라고 하면 고객이 은행에 돈을 맡기며 오히려 이자도 은행에 지급해야 되는 걸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기준금리라는 용어 자체가 중앙은행과 시중은행 간의 금리를 말하기 때문에, 원래는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았는데 기준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면 돈을 맡기고도 수수료를 지불해야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돈을 중앙은행에 맡길 이유가 없어지게 되고 시중은행은 대출을 확대하고 투자, 소비를 늘리려고 하게 된다. 이렇게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것은 사실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디플레이션을 경험한 일본 국민들은 앞으로도 물가가 계속 내려가리라는 디플레이션 기대를 하게 된다. 결국, 이런 기대는 '자기실현적 기대' 작용으로 실제로 더 깊은 디플레이션을 유발하게 된다. 따라서, 이 디플레이션 기대를 인플레이션 기대로 전환해야 되는데 마이너스 금리라는 정책을 통해 일본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일본 국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를 들은 일본 국민들은 '이제야 디플레이션에서 인플레이션으로 전환될 수 있구나'라는 기대를 하게 되고 이러한 기대는 실제로 인플레이션을 불러 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물가 상승이라고 했는데 디플레이션이 나쁘다고 인플레이션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가끔 인터넷에서, 슈퍼에서 과자 하나 사기 위해 한 박스의 지폐를 들고 가는 사진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과도한 물가상승,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 혼란이다. 오늘 양말 하나 가격이 백만 원이었는데 내일 가보니 이백만 원으로 오르는 식으로 걷잡을 수 없이 물가가 상승할 수 있다. 이런 상황 또한 통제해야 한다. 따라서 적절한 인플레이션을 유지해야 하는데, 보통 2%의 물가 상승률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디플레이션과 유동성 함정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로 하고, 그렇다면 왜 이런 상황이 일본에 발생했는지 알아봐야 한다.
디플레이션과 유동성 함정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로 하고, 그렇다면 왜 이런 상황이 일본에 발생했는지 알아봐야 한다. 원인에 따라 처방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책에서는 일본의 오랜 논의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며 말하고 있다.
"장기침체의 원인에 대한 오랜 탐색과 논쟁의 결론은 총공급도 문제였고 총수요도 문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해서는 그 중 더 큰 문제가 무엇인지,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결해 나서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해야 했다. 총수요를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 확장적인 재정, 금융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반면에 총공급 부문을 정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 생산성이 낮은 기업이 퇴출되고 경쟁력 있는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순위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총수요파의 승리였다. 우선 총수요가 부족하지 않았다면 잠재GDP가 마이너스일 수가 없다. 총공급이 제대로 늘지 않았다고는 하나, 총수요는 총공급보다도 더 부족했던 것이다. 그리고 생산성 증가율의 하락도 일정부분 수요의 하락에 원인이 있었다는 것 역시 논문을 통해 실증되었다. 따라서 정부정책에 대한 영향력에서도 총수요파가 더 큰 힘을 발휘했다."
즉, 총수요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그에 따른 처방의 하나로 양적완화 정책을 도입한 것이다. 그렇지만, 불황터널 책 전반에 걸쳐서 말하고 있듯이 일본은 총수요와 관련하여 양적완화, 투자와 소비 활성화 유도, 재정정책 등을 도입하였고 총공급과 관련하여 생산성이 낮은 기업을 퇴출하고 여성인력의 증가를 유도하며 외국에서 우수한 인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등 총수요와 총공급을 개선하기 위해 수 많은 정책을 도입하고 실행하였다.
일본과 한국의 다른 점 중 하나는 바로, 엔화는 세계적으로 안전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엔화가 절하되면 수출 경쟁력이 좋아져서 경제 회복에 유리하지만, 2008년과 같은 금융 위기 상황에서는 엔화 절상을 동반하기 때문에 경제 회복에 걸림돌이 된다. 그래서 2000대 중반 일본은 경제 회복을 하려는 듯 했으나 2008년 위기로 인해 다시 주춤거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불황터널의 저자는 일본과 한국의 비슷한 점 또한 열거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우리 역시 일본식 장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인구구조, 노동력의 감소, 경제성장률, 잠재GDP, 인플레이션율, 저금리, 주택시장 침체 등의 움직임이 1990년대 초,중반의 일본과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의 일본보다 나은 점도 있기 때문에 일본처럼 연평균 성장률이 0%대에 머물 만큼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부실채권과 기업의 부채비율이 낮고 무엇보다 GDP대비 정부부채의 비율이 낮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일본식 장기불황에 진입하고 있는가? GDP 갭이 수년간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고, 성장률의 하락추세가 뚜렷하다. 노동력인구는 곧 감소하기 시작할 것이고 생산성 증가율은 이미 떨어지고 있다. 연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는데 거기에 더해 현재의 고용환경도 안정적이지 않으니 소비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가계의 부채는 이미 GDP의 80% 선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에 금리를 더 내린다고 해도 주택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이 모든 요인들은 우리나라도 일본식 '장기불황 터널'에 진입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우리나라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고 경고한다. 디플레이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조심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당장 양적완화 같은 정책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당분간은 저금리를 유지하며 적절한 통화가 공급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과거의 영광을 쫓기보다는 현실을 인정하라고 조언한다. 5%, 6% 같은 성장률을 쫓으려고 하지 말고 저성장 시대에 어떻게 내실을 다지며 일자리를 창출할지 건설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